순수하다는 게 과연 좋은 건가?
만약 천진한 사람이 악의 생각을 갖게 된다면?
오히려 순수하기보다 좋은 신념을 갖는 게 중요하다.
선의의 생각을 갖고 필요에 따라 악의의 신념과도 손을 잡아 아름다운 사회를 개혁한다면?
세상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로 차있다. 그리고 그 신념이 좋던 나쁘던 그런 사람들이 이 사회를 구성하고 만들어간다.
순수한 사람들은 때가 묻지 않았지만, 선의 신념도 악의 신념도 가질 수 있기에 더 위험할 수 있다.
선의 신념을 갖고 악과 함께하면 악인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순수한 상태에서 악의 신념을 가지면 악인이 되는 것이다.
기억하면 예전에 참 착했던 친구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못된 나쁜 친구가 되어 있다.
악은 한번 손을 잡으면 좀처럼 놓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남들을 짓밟고 이기고 빼앗아 살기 때문에 놓으면 생존에 문제 되기 때문이다.
반면, 선은 쉽게 손이 놓아진다. 마찬가지로 당장은 나 자신이 중요하다 보니 남을 위한 배려나 희생에 여유가 없다 생각하기 때문에 선행이 주저된다.
그런데 절대악이 있다. 뼛속까지 악한 사람, 악인론이 얘기하는 절대악인.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넘어서 남들에 고통과 괴로움에 쾌락을 느끼는 사람. 그를 진정 악인이라 부른다.
단순히 나쁜 유혹을 못 이기고 못된 짓을 했다고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악의 신념을 자신의 삶의 모토로 받아들여 신앙과 같은 맹신으로 절대적 가치로 삼고, 온갖 악행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 사람.
악행을 위해 법도 지켜가며 더 잔인한 악의 실현을 위해 선행도 꾸준히 한다.
우리는 착하고 순한 사람을 만나면 그 선함과 순수함에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한편으로 누구든 어떤 악의적 의도에 쉽게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이는 그냥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지 선의의 신념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선의의 신념을 가진 사람은 악의 신념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니 이미 순수한 상태가 아닌 선의가 들어선 상태이다.
그래서 순수한 사람과 선의의 신념의 사람은 구별돼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라도 악인은 아니다. 물론, 나쁜 짓을 하고 법을 어길 수도 있지만 악의 신념이 들어찬 악인 하고는 구별돼야 한다.
절대악인은 정말 단순한 악행으로 즐거워하지 않는다.
깊은 신념 속에 우러나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것에 진정한 보람을 느낀다.
먼저 누군가의 어떤 악행을 보면 그게 진심으로 뼛속까지 생각한 타고난 악행인지를 봐야 한다.
대부분은 무심코 또는 장난기 어린 마음이 많지만 정말 악마 같은 무서운 신념으로 악행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될 때가 있다.
나도 그렇고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또는 이번만이라는 생각에 나쁜 짓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악인이 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악의 신념으로 사는 사람이 악인인 것이다.
나는 여태껏 살면서 정말 몸서리치는 소름 끼치는 악인을 딱 두 명 보았다.
그들은 정말 악의 신념이 신앙으로 가득 차 어떠한 교화도 어려운 상태이고 사회적 격리만이 답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처음엔 그저 순수한 사람이었다 선한 신념이 들어선 착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빈 도화지의 순수한 사람. 악한 사람은 선함이 변질되거나 악의 영향을 받아 나올 수 있지만 진정한 악인은 악의 신념으로 탄생된다.
보헤미론이 지금껏 악인론을 설명한 것은 우리가 순수한 사람, 착한 사람들을 보면 더욱 살피고 보호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회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움직이고 올바르지 않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 잘못된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