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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쿤 Aug 03. 2019

너희 아닌 우리의 두 번째 기록 1

D+800, D+3

다시 육아일기다. 


홋카이도를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정열적이었지만 걱정하지 않은 몇 번의 밤이 지나고 선 어느 날이었다. 와이프와 같이 와인 한잔 후 그녀가 조용히 자리를 비운 뒤 돌아오면서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렇다. 둘째였다. 도하 때 꽤 어려 번의 시도 끝에 임신을 했기 때문에, 예상보다는 빠르게 둘째가 생겼다. 도하가 한참 너무너무 이쁠 때였고 - 물론 지금도 이쁘지만 - 우리 나이로 40대가 넘어서 아이가 나오는 게 부담됐던 나는 기쁜 마음이 더 컸다. 와이프는 많은 기쁨과 약간의 걱정과 투정 - 이제 좀 술 좀 먹어볼렸더니! - 이 있었다. 


태명은 상콤이, 이름은 로하는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그리고선 시간이 흘렀다. 흐르는 시간 동안 도하는 훨씬 더 많이 컸고, 우리는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도하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고, 개미를 미친 듯이 밟아 죽였다. 매일 같이 길 고양이를 만나러 가자고 하면 정말 좋아하고, 나가서 길고양이를 만나는 날엔 정말 환하게 웃는다. 두꺼비 울음소리를 내면서 걷는 것을 좋아하고, 정말 열정적으로 뛰어다니고, 아주 느리지만 말이 조금씩 늘고 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첫 변기 응아를 하기도 했으며 슬슬 기저귀 때는 연습을 시작하기도 했다. 중간에 재충전 휴가로 15일 동안 푸껫을 다녀오기도 했다.

푸켓 가족여행

그러던 중 상콤이가 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참 기뻤다. 아들이더라도 좋았겠지만 딸이니 아들/딸 한 명씩 낳는 큰 행운이 온 것이다. 


9개월 하고 2주 6일 동안 도하도 우리도 많이 변하고 더 많이 행복했으며 여러 가지 면에서 인내의 시간들이 지났다.

막달 스튜디오 촬영 - 도하가 이뻐서 또 낚였다...

상콤이가 나올 막달즈음, 도하를 어떻게 키웠는지를 '네가 아닌 우리를 위한 기록'을 봤는데, 정말그 육아 일기는 보물과 같았다. 사람의 기억은 정말 무쓸모 해서, 기록하지 않으면 말 같지도 않은 생각들만 가득하다. 기억은 파편화되고 기억상의 숫자를 맞춘다는 건 체 절반도 되지 않는다. 상세한 기록이 상콤이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 같아 너무 기쁘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기록을 남긴 것은 나에게, 와이프에게, 그리고 도하와 로하에게 정말로 큰 가치로 돌아올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2019년 7월 31일, 임신 38주 6일 도하의 어린이집 방학에 독박 육아 / 도하 외할머니 구출을 위해서 내가 휴가를 쓴 날 이였다. 전날 와이프는 숨이 안 쉬어지는 고통으로 잠을 한숨도 못 자서 완전히 멘탈이 나간 상태였고, 아침에 나를 보자마자 펑펑 울었다. 이날 아침부터 도하는 엄청나게 생떼를 부리면서 틈만 나면 나를 때려서 훈육을 해야 했고, 나는 너무너무 화가 나서 도하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어떻게 점심시간이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기분이 좋은 않은 날이었다. 점심이 지나고, 정기검진을 받으러 산부인과에 갔다. 담당의께 전날의 상황을 설명드렸다. 이때 의사 선생님께서 상황을 듣더니 오늘 유도분만을 하는 것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잠시의 고민을 했지만 유도분만을 하기로 결정하고, 장모님에게 도하를 부탁하였고,  3시 30분에 와이프는 분만실로 입원을 하였다. 4시경쯤 장모님이 오셔서 나도 분만실로 들어갔다. 유도 분만 약물을 맞은 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산통이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출산의 참기 힘든 고통은 둘째라고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았다. 


5시 30분경엔 슬슬 고통이 커져서 무통 시술(주사 맡기 전에 주사 바늘을 척주에 놓는 것)을 시작했고, 6시 30분경에 소리를 지를 만큼 큰 산통이 오기 시작하였고, 무통 주사를 넣었다. 55분까지 효과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자고 하셨는데, 10분쯤 지나니 그전보다 약간 통증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55분, 간호사가 자궁이 전부 열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출산준비를 시작했고, 7시 1분 로하의 머리가 나온 뒤 7시 3분 로하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순산이었다. 도하 때 아침 5시부터 산통을 느끼기 시작해서 8시경에 극심한 산통을 느낀 후 6시간 넘게 출산을 했던 것과 다르게 2시간 만에 순산을 하였다.


태어난 순간에 느낀 것은 발가락이 엄청 긴 아기였고, 나중에 보니 머리카락이 정말 많고 길더라. 아직은 누구 닮았는지는 모르겠고, 붉은 홍조가 눈에 뜬다. 

상콤이 - 로하

상콤이가 태어나고 상실감이 있을까 봐 도하에게 더 잘해주기로 매일 마음먹는다. 아무래도 와이프가 상콤이를 케어해야 하니, 내가 도하를 더 많이 챙겨줄 생각이다. 2일 + 13일간의 입원 - 조리원 생활 동안에도 최대한 내가 도하와 함께 했던 아침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도하는 입원 첫날은 내가 도하랑 잤고, 입원 둘째날은 어머님네 댁에서 잤다. 퇴원날은 정말 정신이 없었는데 급작스럽게 아이를 낳았으니 산후 조리원으로 준비물도 챙기고, 자동차 고장난것도 챙기고, 퇴원 수속 밟고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로하는 처음으로 차를 탄 날이였는데, 정말 심하게 울었다. 바구니 카시트가 불편했던것 같은데, 이게 각도가 어떤지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도하는 오늘 금요일이여서 트니 트니를 갔는데, 밥도 안먹고;; 트니 트니에선 신나게 놀았다아.. 내일 부터는 정말 식사 전 2시간 전에는 간식을 주지 말아야지 싶다. 최근 한 2-3주간 식사를 너무 안하는 듯 싶어 걱정이다.

세상 즐거운 트니트니 수업

자, 이제 이렇게 나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육아 일기를 시작한다. 행복하고 좋은 기억과 힘들고 아프고 짜증 나는 모든 기억들을 꾹꾹 담아 기록하면 그 기록이 보석이 되리라 믿는다. 게으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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