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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쿤 Jul 02. 2017

네가 아닌 우리를 위한 기록 13

D+39

육아 남자

금요일은..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낮에는 오래간만에 고등학교 절친인 호경이 캐나다에서 와서 한 4-5년 만에 봤다. 그 덕분에 아침부터 좀 정신이 없는 하루였다.


친구를 잠시 보고 들어와서 도하를 한참 보고.... 덕분에 일은 거의 못했는데-출산 휴가 중이지만 원격근무를 계속하고 있다.- 와이프와 장모님이 코스트코를 간 사이 도하랑 열심히 놀아주기도 하고 원격 근무도 하고 그런 시간을 보냈다. 도하가 보채서 잠시 소파에서 안고 있는데...


시원하게 똥을 쌌는데 뭔가 뜨끈뜨끈한 느낌이!?!! 살짝 들어보니 기저귀 옆으로 샜다!


옷을 잽싸게 벗고 옷으로 도하를 쓱쓱 닦은 다음에 잽싸게 화장실로 가서 도하를 물로 씻겼다. 혼자 '아아 아빠 다됨!' 하면서 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갈려는 찰나 이번에는 오줌 발사!!!! 막 갈아입힌 옷까지 모두 다 적시고.. 우하하.. 다시 옷을 갈아 입히고 나서야 똥오줌 파티가 끝났다.


상황이 얼마나 웃기던지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게 정말로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상당히 즐거웠다.

떵어줌 파티 후 즐거운 도하

그리고선 도하는 아주 신난 상태로 잘 있다가 엄마 오기 전에 한번 더 모유 유축해 놓은 것을 잔뜩(150?) 먹고 기분 좋게 있었다.


그리고선 밤이 되었다.


낮의 똥오줌 쇼의 여운 때문에 나의 기분이 매우 업된 상태인데 도하 목욕까지 잘 시키고 왠지 오늘은 도하가 잘  잠들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렇게 생각하면서 와이프를 재웠다. 와이프는 아토피가 심해져서 너무 가려워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는데, 도하는 수유한 지 한 시간도 안돼서 도하가 울기 시작했다. 잽싸게 내려가서 유축해 놓은 100ml를 먹였는데.... 계속 울었다.


다시 유축해놓은 45ml를 데워서 먹였다. 그러던 중 겨우 잠이든 와이프는 다 깨버렸다. 휴...


그래도 145ml 나 먹였으니 와이프가 2시간 정도 저 자길 빌면서 도하를 보고 있는데, 50분 동안 계속 칭얼거렸다. 그리고 50분이 지나선 달래지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결국 와이프가 깨서 수유를 시작했고.... 난 진짜 멘붕... 휴... 뭐랄까 아픈 와이프도 걱정인데 도하가 겨우 5주가 넘어가는 시점이었는데 모유를 150ml를 먹고서도 이렇게 안 자면 어째야 하나 싶기도 하고... 내 몸은 진짜 피곤한데, 와이프는 더 힘들 거고 도하는 캐어 수준을 넘어선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별별 생각이 다드는 밤이었다.


그렇게 한참 생각해 놓고선 또 잠들어선 기절... 3시에 기절해서 거의 아침 10시까지  한 번을 안꺠고 기절해 버렸으니 와이프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휴


아침에는 한참을 도하의 현재 상태에 대한 글들을 읽었는데, 도하가 이상한 것은 아니 지면 평균치에는 벋어 나는 것 같긴 하다. 그게 도하의 태생적 성향의 문제인 것인지 우리 육아의 문제인 것인지, 아니면 아무런 문제도 아닌 그냥 나의 망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아마도 망상인 것 같다..) 이렇게 멘붕 되는 순간이 도하를 키우면서 적게 왔으면 한다.


일요일 아침에 좀 더 체계적인 수면교육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한참을 찾아봤다. 흠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지만 안눕법, 퍼버법 등을 고민하고 있다. 일단 와이프와 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를 잘 자게 하는 게 진짜 중요한 이슈인 것 같다.


내 어렸을 때로 한정하면 나는 잘 자는 아이였다. 아버지가 엄했기 때문에 진짜 특이한 일을 빼곤 9시에는 잠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수면 의식도 없었고, 수면 교육도 없었겠지만 아버지 성격 상 아이를 자립심 넘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수면 교육이 이뤄진 게 아닐까 싶다.


많이 공부해서 와이프와 장모님께 알려드리고, 6주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최대한 패턴화 된 생활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진짜 엄마 좀 그만 괴롭혀 도하야!

아이와 계속 씨름을 하면서 크게 느끼는 것이 있다. 아무래도 나의 일과 관련된 일이다 보니 더 집중해서 보다 보니 뭔가 남다른 깨달음? 생각이 생겨난 것 같다.


사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몸과 마음 둘 다에 상당한 고통이 뒤따른다.


몸은 뭐 아이를 케어하다 보면 잘 못 자고, 안 쓰는 근육을 사용하니 얼마나 피곤하겠나, 그 피곤함이야 2-3년 정도 지나면 누구나 다 어느 정도로 해소된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적인 부분은 그렇지도 않다. 일정 부분 자신을 희생해야 하며, 그 희생은 자존감이 크고 자아실현 욕구가 크면 클수록 더 큰 고통을 수반한다.


그런데도 왜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걸까. 종족 번식의 본능이라고 말하기에는 수많은 본능들을 짓누르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너무 쉬운 설명이다.


아이가 배냇짓을 하면 피곤이 사라진다고들 한다. 진짜? 나 만큼 육아에 전념하는 남자도 별로 없을 테고, 와이프만큼 헌신적인 엄마도 없을 텐데 둘 다 피곤이 사라지진 않는다.  -작은 보상 정도?- 근데 이것 가지고 아기를 낳으라고 하고, 둘째를 낳는다고?


그런 이야기는 정말 미혼자, 혹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부부들에게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이자, 나만 망할 수 없다 너네도 죽어봐라.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또 둘째를 낳고, 아이를 낳으라고 권유한다. 다들 병신들이 아닌데? 왜 저럴까...?  아이를 30일 좀 넘게 키워보면서, 내가 알게 된 작은 대답은 바로 '성취감'이다.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것이 종족 번영의 본능이라면 아이를 키우는 것을 즐겁게 하는 것은 성취감이다. 오롯이 나의 책임인 하나의 존재가 커가는 것은 엄청난 성취감을 준다. 뭐랄까 RPG 게임에서 나의 캐릭터가 성장해 나가는 성취감과는 전혀 다른, 나와 다른 인격체가 성장한다는 것은 엄청난 성취감으로 다가온다.


이 것은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 보내면 모성/부성이 생기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나 입양 역시 출산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연구 결과에 부합한다.  


그렇게 도하는 오늘도 자라고, 나는 오늘도 일이나 게임에서는 전혀 얻지 못한 성취감을 느낀다.

D+2 -> D+39 : 폭풍성장은 성취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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