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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로드 3 | 원나라 도교사원 영락궁의 천장화

by 고훈민


중국인들은 해돋이와 해넘이 무렵 하늘에 분홍빛 노을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장관이나, 보석과 같은 사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광채를 묘사할 때 하광만도(霞光万道, xiá guāng wàn dào)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노을빛이 만 갈래로 퍼져 나간다’는 뜻의 이 관용구는 자연 경관의 장엄함과 보물의 찬란함을 동시에 형용하는 고전적 수사로, 청말 문인 문강(文康, 1796–1853)이 지은 장편소설 아녀영웅전(儿女英雄传)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산시성 시안(陕西省 西安)의 종루 천장에 그려진 만운문(万云纹)



중국 천년의 수도 산시성 시안(陕西省 西安)의 종루 천장에 그려진 만운문(万云纹) 역시 이러한 하광만도의 시각적 인상을 떠올리게 한다.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는 구름과 빛의 문양은 마치 노을과 광휘가 소용돌이치듯 확산되는 장면을 연상시키며, 오늘날에도 강렬한 시각적 효과로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만 이 천장화는 종루가 지어진 명대의 유물이 아니라 1950년대 대규모 보수 공사 과정에서 새롭게 더해진 장식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방사형 광휘 도상, 곧 만운문이나 하광만도라 불릴 수 있는 형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기원을 더 깊이 거슬러 올라가면, 산시성(陕西省) 동쪽에 인접한 산시성 윈청(山西省 运城)에 위치한 도교 사원 영락궁(永樂宮, Yǒnglè Gōng)에 이르게 된다. 영락궁은 칭기즈 칸의 손자 귀위크 칸(Güyük Khan) 재위 시기인 1247년에 착공되어, 원 제국 마지막 황제 토곤 테무르(Toqon Temür) 재위 18년인 1358년에 완공된 대규모 도관으로, 약 110년에 걸친 장대한 공사 기간 속에서 원 왕조의 성립과 쇠망을 함께 겪은 드문 원대 건축 유산이다.



삼청궁의 전경. 앞쪽부터 용호전(龍虎殿), 삼청전(三淸殿), 순양전(純陽殿), 중양전(重陽殿)


영락궁의 본래 이름은 대순양만수궁(大純陽萬壽宮)으로, 도교 팔선(八仙) 가운데 가장 널리 숭배되는 여동빈(呂洞賓, Lǚ Dòngbīn)을 주신으로 모신 사원이다. 여동빈은 당나라 말기의 전설적인 학자이자 시인으로, 장안 인근 종남산(终南山)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으며 220년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의 호가 순양자(純陽子)였기 때문에 사원의 명칭에도 ‘순양(純陽)’이라는 칭호가 포함되었다. 원래 사원은 여동빈의 탄생지로 전해지는 예성현 영락진(芮城縣 永樂鎮)에 있었으나, 황하 삼문협(三門峽) 댐 건설로 수몰이 예상되면서 1959년부터 약 6년에 걸쳐 예성현 북쪽의 현재 위치로 통째로 이전되었다.



영락궁 삼청전의 조원도(朝元圖)


영락궁을 유명하게 만든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그 내부를 장식한 화려한 벽화들이다. 특히 삼청전의 조원도(朝元圖)는 천지의 여러 신들이 도교의 최고 존신에게 조현하는 장엄한 장면을 묘사한 대작으로, 인물상의 높이가 약 2미터에 이르며 모두 286위의 신격이 장대한 행렬을 이루고 있다. 또한 순양전과 중양전의 벽화에는 각각 여동빈(呂洞賓)과 왕중양(王重陽)의 전설과 수행담이 연속 서사로 그려져 있다. 이러한 도상과 인물 형상은 오랫동안 수많은 미술사학도와 예술가들의 주요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최근에는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중국 게임 「검은신화: 오공」의 캐릭터 디자인 과정에서도 참고 자료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주목하고자 하는 대상은 벽화보다는 그 벽화들을 감싸고 있는 삼청전(三淸殿)의 공간 구조, 특히 천장 중앙에 설치된 조정(藻井, 자오징)이다. 삼청전은 일명 무극전(無極殿)이라 불리며, 태청(太淸)·옥청(玉淸)·상청(上淸)으로 의인화된 도교 우주론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존재들인 '삼청천존(三淸天尊)'을 봉안한 영락궁의 본전이다. 이 전각의 천장에는 서양 건축 용어로 케이슨 천장(caisson ceiling), 한국어로는 '보개닫집'이라 불리는 격자형 돌출 구조가 설치되어 있다. 원형·사각형·팔각형의 기하학적 틀이 중층으로 겹쳐지며 중앙으로 갈수록 위로 솟아오르는 이 형식은, 황제의 옥좌나 불·도교 존상의 좌상 위처럼 가장 신성하고 권위 있는 자리 위에만 허용되던 구조였다.



삼청전의 내부 모습


삼청전에는 모두 여섯 개의 조정이 배치되어 있다. 바깥쪽 세 조정의 중심에는 금박을 입힌 용 조각이 놓여 있으며, 그 가운데 중앙 조정은 팔각형 성구(星構, xīnggòu) 구조로 이루어진 가장 복잡하고 화려한 형식으로, 황제가 삼청천존에게 예를 올릴 때 서는 위치의 바로 위에 해당하는 공간적·상징적 중심을 이룬다. 반면 삼청천존이 모셔진 내실 상부의 세 조정은 규모와 장식이 훨씬 절제되어 있고, 그 중심에는 용 대신 방사형의 추상적 문양이 자리한다.


그런데 왜 우주의 최고 원리를 의인화한 삼청천존이 위치한 내실의 조정보다 바깥쪽의 내실이 더 화려하고 복잡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외부의 조정이 위치한 자리가 전통적으로 황제가 삼청천존에게 예를 올릴 때 서게 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영락궁은 기본적으로 원나라 황제의 장수를 기원하는 곳이었다. 영락궁 건립을 주관한 도교의 전진파(全眞派)가 정치적으로 황실에 복속되어 있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내곽을 절제하고 외곽을 강조하는 공간 구성은 전진파가 황제 권위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건축적으로 표명한 결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본당 외측의 중심부 조정의 화려한 조각과 내실 조정의 광망문


내실 조정 광망문의 복원도



이 내실 조정 중앙에 그려진 방사형 소용돌이 무늬를 '광망문(光芒纹)'이라 일컫는다. 바깥 조정에 배치된 용 조각이 황제의 현세적 권위와 정치적 위계를 시각적으로 표상하는 장치라면, 내실 조정의 중심을 차지한 광망문은 형체를 갖지 않는 기운과 빛, 우주 생성의 근원적 에너지를 시각화한 도상에 가깝다.


베이징 고궁박물관의 고건축 전문가 왕중계(王仲杰, Wáng Zhòngjié)는 영락궁 조정의 광망문이 요·금대 북방 건축 장식에 나타나는 방사형 광휘 도상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고 지적하였다. 응현 목탑(应县木塔), 숭복사(崇福寺), 봉국사(奉国寺) 등 요대 건축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광망문과의 비교를 통해, 영락궁의 조정 채화가 중원 전통과 북방 기하 장식의 정수를 결합한 결과임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방사형 광휘 문양은 이후 명대에 이르러 청화백자 장식에도 계승되어, 지난 글에서 살펴본 명대 초기 청화 자기 타일의 문양으로도 전해진다.



대영박물관 소장 청화바닥 타일 (https://www.britishmuseum.org/collection/object/A_1993-1027-1-2)



그러나 광망문이라는 명칭은 과연 타당할 것일까? 광망문을 품고있는 ‘조정(藻井)’이라는 명칭에서 조(藻)는 본래 수초를 뜻하는 글자로, 이를 직역하면 ‘수초로 장식된 우물’이라는 의미가 된다. 전통 목조건축에서 화재는 가장 두려운 재앙이었기 때문에, 천장의 최고점에 우물(井, jǐng)의 형상을 두고 연꽃과 연잎, 물새와 같은 수생 도상을 배치하여 물의 기운으로 불의 기운을 제압하고 공간을 보호하고자 하는 주술적 관념이 이 구조에 투영되었다.


광망문(光芒纹)이라는 명칭에는 ‘빛 광(光)’ 자가 들어가 있어 흔히 찬란한 광휘의 도상으로 이해되지만, 조정(藻井)의 구조와 상징 체계를 함께 놓고 보면 이 문양은 역동적으로 분출하는 빛이라기보다, 고요한 물 위에 비친 빛의 떨림에 더 가까운 형상으로 읽을 수 있다.조정의 중심에 펼쳐진 방사형 문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광선이 아니라, 깊고 고요한 수면 위에 비친 빛이 미세하게 퍼져 나가며 일렁이는 흔적에 가깝다.


이때 물과 빛은 서로 대립하는 실체가 아니라, 동일한 기(氣)가 서로 다른 상태로 드러난 두 국면으로 이해된다. 도교, 특히 전진파(全眞派)가 중시한 내단 수련과 관조의 전통 속에서, 삼청천존의 감실 위에 놓인 광망문은 바로 그러한 내적 수양의 상태, 수면처럼 고요해진 심성 위에 도의 빛이 잔잔히 비추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응축한 도상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이전을 위해 해체중인 삼청전의 모습



역사의 아이러니는 영락궁의 대규모 이전이 완료된 뒤에도 원래의 터가 끝내 물에 잠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1962년 3월 삼문하(三門峽) 저수지 건설이 본격화된 지 1년여가 지나자, 퇴적물이 예상치를 훨씬 초과하며 웨이허(渭河) 하류 양안의 농경지가 침수되었다. 이에 산시성 출신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들은 저수량을 중단하고 방류를 통해 퇴적물을 씻어낼 것을 공동으로 건의하였고, 그 결과 수위 운용 방식이 조정되면서 영락진 일대는 대규모 수몰을 면하게 되었다.


더욱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영락궁의 이전·복원 사업이 완료된 이듬해인 1966년, 전통 문화와 종교, 고건축과 벽화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한 문화대혁명의 격변이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우상과 미신, 봉건 잔재를 타파한다는 구호 아래 수많은 사원과 유물, 회화와 조각이 훼손되던 시기를 떠올리면, 막 건국된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이 소련에서 트럭을 빌려가며 영락궁의 해체와 이전, 복원에 역량을 집중했다는 사실은 안도감과 함께 약간의 실소를 자아낸다.


불을 막기 위해 우물과 수기의 형상을 천장에 올렸던 도교 사원의 조정은 수몰을 피하기 위해 해체와 이전을 겪었고, 제국의 시대와 혁명의 시대를 차례로 통과해 오늘에 이르렀다. 광망문에 남아 있는 방사형의 문양은 여전히 빛으로 읽힐 수도 있고, 물의 흔들림으로 읽힐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격변과 단절의 역사 속에서도 변형되지 않은 채 보존되어, 한 시대가 자연과 우주 질서를 어떻게 형상화했는지를 지금도 천장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자료:"산시성 루이청에 있는 영락궁의 원나라 천장과 격자형 천장에 대한 연구"

https://www.sohu.com/a/524486282_121124384


영락궁 이전 과정에 대한 소개 : 最震撼的元代壁画,就藏在山西的这座道观里https://www.lifeweek.com.cn/h5/article/detail.do?artId=241201


영락궁 건설에 얽힌 원대의 정치적 맥락:

https://finance.sina.com.cn/jjxw/2022-04-29/doc-imcwiwst4646287.shtml


영락궁화의 다채로운 색채 감상하기: 왕중계의 기원과 발전 분석

https://news.bjd.com.cn/2022/11/05/10210664.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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