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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Feb 01. 2016

괜찮아, 사랑이야..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죄책감 편

잠은 좀 잤나요?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오늘은 비가 올것 같아요. 겨우 추운 날씨가 누그러졌는데 비 오고 나면 다시 추워질까봐 걱정이네요.

큰 아이들이 개학을 한 엄마들도 계실테고 저처럼 긴 겨울방학에 지쳐가는 워킹맘도 계실테고..

날이 추워지면 어린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 생각이 납니다. 아기가 감기라도 걸려 칭얼거리면 가뜩이나 힘든 육아가 배는 힘들어질텐데... 아픈아기도 케어하는 엄마도 마음이 얼마나 고단할까 싶어 마음이 아려요.


요즘 저는 직장에서 한참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연일 늦어지는 퇴근에 방학까지 맞물려서 아이들

저녁이 가장 큰 숙제가 되어버렸어요. 국이고 반찬이고 제 손으로 못한지가 한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럴때 동네에 반찬가게가 없었다면 어쩔뻔 했는지.. 다행이 조미료도 많이 안쓰시고 손맛도 좋은 반찬가게 사장님을 알게 되서 제가 큰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 온 반찬의 반복에 아이들이 찡그릴때는 저도 어쩔수 없이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치켜듭니다.

그 미안한 마음에 나의 고단한 하루가 얹혀서 마음이 무거운 날 질풍노도가 무언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우리 큰놈이 구부정하고 불량스럽게(?)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제 마음의 파도는 더욱 거세집니다.

"핸드폰 그만해"

"아, 내가 알아서 한다구!!!"

ㅡㅡ;;;;;;;;

마치 내가 건드리길 기다린것처럼 언성을 올리는 열 네살짜리를 보자마자 제 머릿속은 마치 쓰나미가 쓸고 지나간것과 같은 상태가 되었고 저도 모르게 성큼성큼 걸어간 제 손에 들려진 아이의 핸드폰은 배터리까지 분리된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액정의 파편이 바닥에 튀어있었고 던진 주제에 무슨 충격을 받았는지 제 네번째 손가락은 구부려지지도 펴지지도 않는 통증과 함께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 저 녀석이 열네살이었으니 망정이지 열여덟 또는 스물네살이었으면 오늘 나 신상에 무슨일이 있어도 있었겠다 싶은 두려움을 일게 하는 분노가 가득한 아들아이의 눈이 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눈빛은 두렵고 공포스럽고 또 너무 아팠습니다.

아이의 상처는 흡사 적에게 상처를 드러낸 늑대와도 같아서 날카롭게 이를 벼르며 엄마를 바라보지만 아이의 눈빛은 너무 아파서 당장이라도 피를 왈칵 쏟아낼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널부러진 핸드폰처럼 저의 마음도 아이의 마음도 돌이킬수 없이 깨져 널부러져 버렸다는걸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밤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이 아팠습니다.

내가 정말 이대로 속절없이 미친년이 되는건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안되고 상담을 받아도 안되고...

난 정말 구제불능이구나...나같은건 엄마도 아니다.  끝도 없는 자책이 저를 밤새 짓누르고 두려움에 잠식당한채 저는 그렇게 울고 또 울었습니다.

많은 날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내가 자책에 빠졌던 그 수많은 날들...

처음에는 아마 그 죄책감도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유를 제때 못줘서 아이를 울렸을수도 있겠고

아이의 기저귀를 제때 봐주지 못해서 엉덩이가 빨개진 날도 있었을겁니다.

저처럼 덜렁이 엄마는 목욕을 시키다 미끄러져 아이를 물에 빠뜨린 날도 있었을 테지요.

저에게도 그런 수많은 시행착오의 순간.. 늪처럼 빠져들던 자책의 시간들이 죄책감이라는 씨앗을 제 가슴에 심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죄책감은 우리가 절망을 느끼는 순간 얼마나 쑥쑥 자라는지 아시나요?

강낭콩만한 그 감정에게서 싹이 트고 줄기가 생기고 가지를 뻗어 큰 아름드리 나무가 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좌절이 절망이 이 녀석의 양분이 되고 우리의 죄책감은 끝내 열매가 되어 이 가지에

하나 둘씩 걸리기 시작합니다.

우리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을때의 마음 하나.

우리 아이 엉덩이를 때려줬을때 마음 하나

잠에 취해 우는 아이 소리를 미처 듣지 못해 배고픔에 울게 만들었을때의 마음 하나

일이 늦어져 어린이집에 제일 늦게 데리러 가던 날의 마음 하나


그렇게 열린 열매가 가지를 휘고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리려고 해도 죄책감은 우리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이 마음은 급기야 아이와 배제된 어떤 나의 마음까지도 옭아매기 위해 가지를 뻗칩니다.

모든것이 내 탓만 같은 마음.

모든것이 나만 아니면 될거 같은 그 불안하고도 초라한 기분.

우린 육아를 하며 얼마나 많은 순간을 "미안해"하며 지내고 있나요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하지 말아요, 엄마 잘못이 아니예요.

아이를 키우며 우리가 수많은 미안함을 고백하던 그 순간들,

정말 우리가 잘못해서 우리의 과오가 만든 일은 몇번이나 있었을까요?

아이에게 위험이 닥치거나 혹은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거나 그런 일들을, 사소한 나의 실수를

모두 내탓으로 돌리며 자꾸 내 의식의 가지에 아픈 죄책감을 걸어놓지 말아요.

그건 그저 사고였을뿐이고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내가 아니었어도 일어날 일이었을 거예요.


대신 놀랐을 아팠을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배고팠구나, 아팠겠구나, 무서웠겠구나.. 엄마 여기 있어...

그 속삭임만으로도 아이는 세상에 두려울것이 없어요.

당신은 아이의 태산같은 언덕이고 그 세상의 전부입니다.

이토록 대단한 당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죄책감은 고운 그대 마음에서 내려놓도록 하세요.


오늘도 빛나는 당신,

엄마라는 이름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고 사랑받기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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