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엄마도 칭찬과 격려가 목마르다.
폭풍 다이어트를 하는 요즘...
연일 폭염에 시작한 다이어트... 극도로 불어난 체중은 심지어 만삭때의 몸무게를 기록했고, 땅에 추락한 내 자존감도 자존감이지만, 내 건강은 심각할 만큼 악화되었다.
류마티즘, 손목터널증후군, 원인을 알수 없는 하혈과 두통, 피부소양증...
그리고 나의 체중증가의 1등공신 갑상선 기능저하.
심지어 생전없던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고, 간수치도 높다고 해서(술도 안먹는데 ㅜㅜ) 이래저래 살을 뺄 결심을 하게 되었다.
다이어트라는게 늘 그렇듯 꾸준한 운동과 식이요법말곤 답이 없다.
진부하지만 그게 진리다.
운동은 그저 도울뿐;;;; 결국 배고픔은 피해갈수 없는 필수 불가결이다. 게다가 난 식탐이 많다.
최악의 식습관으로 꼽자면 안먹을때는 사나흘씩 굶다가 먹기 시작하면 토하도록 먹고, 또 굶고.....
그러니 위와 장은 늘 엉망진창으로 시달린다. 그런데도 이런 나쁜 습관은 썩 고쳐지지 않았다.
운동이라곤 평생 담을 쌓고 살았던 나는 굳은 결심과 함께 다이어트 밴드에서 운동코칭을 받아가며 식이조절과 유산소 2시간 근력 1시간정도의 운동을 하고 있다.
헌데 어제 밤 둘째가 말했다.
"다이어트 그만하면 안돼?"
"왜?"
"운동한다고 맨날 나 버려놓고.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엄마는 왜 엄마 맘대로만 해?"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운동을 나가기전 아이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매일 갑상선 약을 먹는 엄마를 알고 있기에 이런 반응은 생각지 못했다.
"뭘 엄마 맘대로 해... 엄마 아픈거 얘기 했잖아. 의사선생님이 꼭 체중 줄여야한다고 이야기했다고..."
"그럼 난?"
"넌 뭐"
"그럼 난 매일 이렇게 놔둬도 돼? 엄마는 오면 또 운동하고 씻고 그럼 난 잠드는데..."
"너도 엄마가 같이 어디 가자 그럼 니 친구들하고 약속있을때 같이 안가잖아. 엄마도 엄마 사정이 있고 더구나
엄마가 아픈거 알면서...어떻게 그렇게 말해?"
한참 실랑이를 하다보니 내가 애랑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열두살.....아침에도 저보다 먼저 나가는 엄마가 다 저녁에야 보는 엄마가 저녁을 주자마자 나가서는 두어시간 후에야 들어오니 제 녀석은 잘 시간이고 서운할 만도 하다.
"그럼 걷기 안하고 엄마 줄넘기 1500개할께. 너 자전거 타고 공원까지 같이 가서 넌 자전거 타고 엄만 줄넘기
하자. 그럼 같이 있을수 있잖아"
"그건 같이 있는게 아니잖아. 혼자 자전거 타고 엄만 혼자 운동하고...난 같이 하고 싶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루 온종일 너희들 생각을 하고, 너희는 하루 온종일 너희들 생각을 하고, 그럼 난......
난 누가 내 생각해 주니.....대체 난 뭐지? 이 집에서 대체 내 존재는 뭐야....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그런건가? 너희는 나한테 서운할때 서슴없이 엄마 싫다고 하면서 왜 니들 필요할때만 이렇게 내 원망을 하니?
안다. 어른답지 못한 생각이란걸, 엄마답지 못했다는것도...
하지만 이따금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이토록 서운해지는건 나도 어쩔수가 없었다.
특히 아이들이 둘 다 사춘기에 들어가며 내 자존은 더 낮아지는 듯 했다. 엄마가 하는 모든 것은 마치 자식의 당연한 권리인양 당당하고, 낳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험한 세상 내어놓았으니 책임지는게 당연하다는 식의 태도는 자식된 도리 따위는 개나 줘버린지 오래고, 그 어떤것도 너는 엄마이니 감당하라는 태도와 서슴없이 엄마가 싫다고 말하는 그 태도가 괘씸했다.
왜 나만 애면글면 너희에게 연연하고 너희 눈치를 보고 살아야하는지 묻고 싶었다. 한수 더 떠 남편 마저도 당신이 아이들에게 단호하지 못하고 짜증내고 잔소리하니 아이들이 더 기고만장하고 엄마를 우습게 보는거라는 입바른 훈수를 두어 당신 정말 "남.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밤...
생전 아이에게 큰소리 한번 안내던 후배가 중1 아들 뺨을 때렸다며 울었다.
편식심한 아이에게 김치를 먹으라고 했다가 아이가 방문을 꽝 닫고 돌아서며 욕을 했다고 한다.
그 순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의 뺨에 빨간 손자국이 나있고, 그 손자국은
마치 자기 뺨을 때린것처럼 멍했다고 했다.
우린 웃으며 그랬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만 그러면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구나 할텐데 북한도 못쳐들어오는거
보면 전국의 중딩은 다 싸가지가 없나봐...그러니 힘내자 하고 자위했다.
"언니는 더 외롭겠다. 딸내미 정말 언니 살처럼 붙어다녔는데...."
"응 외롭다. 정말 많이 외로워 나...."
그래 외로웠다. 가을바람이 선듯선듯 부는 밤 두시간을 땀흘리며 걸을때, 서늘한 바람이 땀범벅이 된 나를 스쳐갈때 아 가을이다 하면서 좋아하다가, 문득 그 바람이 가슴을 스치면 외로워졌다.
마음이 서걱거렸다. 난 뭐지? 하는 생각이 들때마다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퇴근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을 치우고 제 녀석들 옷을 빨고 교복을 다리고, 비록 급히 한 밥이라 찬이 많지 않더라도 따순 밥을 해놓으면 잘먹었다는 말 한마디는 듣고 싶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맞벌이를 생색내고 싶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지 않은 건강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책임을 함께 지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한번쯤은 고맙다, 미안하다 이런말을 해주길 바랬다는 것도 알았다.
난 그런거 필요없어 라고 잘난척 했지만 결국 나도 내 노고에 대한 치하와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서슴없는 말들과 무시, 비난이 내 마음에 알게 모르게 너무 많은 생채기를 냈다는 것도, 알면서 그것을 나는 강하다는 자기 합리화와 함께 나부터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거다.
나는 괜찮아~ 라고 말하며 정말 괜찮고 싶었을 것이다.
울고 있는 나와 마주하면 정말 영영 주저 앉아 일어나지 못할까봐 쿨한척 했을 것이다.
아파트 뒤에서 울고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회사가 다니기 싫은 날이 길어질수록, 남편과 아이들이 바라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의 짐은 더 무거워졌다.
그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나는 하나도 당연하지가 않고, 그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내
입장에선 부당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하루하루 삶은 올가미같이 나를 옥죄어오고, 나는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디어마이프랜드> 라는 드라마에서 한평생 남편수발 자식수발을 들어온 정아(나문희 님)가 말했다.
"나는 새처럼 살거야. 새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다가 길에서 죽을거야"
그 말이 왜 그렇게 서른 일곱 인생의 반도 못산 내 가슴을 울렸을까....아마 나도 저 나이가 되면 틀림없이
저런 공허를 느끼리라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느끼고 있는 공허가 넘치고 넘쳐 눈물이 되었다.
잠든 아이를 바라본다.
늦게 들어온 엄마가 집에 와서 근력운동을 하는동안 맨바닥에서 잠이 들었다.
이불을 깔고 뉘어주자 선 잠이 깨서 칭얼거리다 엄마 냄새를 맡고 품으로 파고든다.
젖 찾는 어린 강아지같은 내 딸....눈가에 눈물자국이 있다. 칭얼거리는걸 내버려두었더니 서러웠는지
울다 잠이 들었다. 팔베게를 하고 품에 들어온 아이를 꼭 안아본다.
열두살이 되어도 우리집에선 제일 아기....
아직도 젖내음이 나는 아기....
중학생 오빠야보다 더 미운말로 엄마 마음을 클컹이는 나의 청춘의 벗....
그리고 직감했다.
결국 나는 이렇게 돌아올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새처럼 날아갔다가도 고향으로 돌아오듯 내 마음은 결국 너희들에게 올수 밖에 없다는 것을...
오늘 저녁엔 자전거 타러 나가자....
오늘 하루 운동 못하면 어떨까.... 네가 신나게 자전거를 타며 달빛 아래 꽈리꽃 같은 웃음을 까르르
터트리면 그것도 내겐 행복일테니... 오늘 저녁엔 아이 자전거를 신나게 따라다녀 주어야겠다.
또 한 계절이 가고, 가을이 넉넉한 품을 내어놓고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다.
서른 일곱의 가을.... 그 곳에는 또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