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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Feb 11. 2016

"엄마, 그림 잘 그리네!!"

자존감은 아주 작은 것에서 쑥쑥 자라납니다

열두살난 딸아이가 어느날 저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엄마랑 뭘 같이 해보고 싶어"

워낙 개인플레이에 사바나의 외로운 한마리 표범처럼 무리 생활을 싫어하는 엄마인지라 대번에 귀찮은 생각이 앞섰습니다.

"뭘 하고 싶은데?"

"뭐든. 케익을 만든다거나 같이 공방을 다닌다거나 아무튼 뭐든 같이 하고 싶어"

순간 배우려던 기타를 아이와 같이 배워볼까 했지만 우크렐레를 1년을 채 못배우고 손이 아프다고 했던 아이를 떠올리니 아무래도 끝까지 같이 하긴 힘들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왕 시작하려면 아이에게 성취감이나 유대감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날 밤 아이가 그림을 그리다가 저에게 여긴 엄마가 그려 하고 울타리를 내 주었습니다.

자기 그림에 손대는 것도 별스럽게 싫어하고 마치 자신만의 성역인듯 스케치북을 차지하는 녀석이어서 의외다 싶었지요. 그래서 끄적끄적 지면을 채워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림을 정말 못그려요. 그려본적도 잘 없고 학교다니는 내내 그림 못그린다는 퉁박을 달고 살았죠.

그러다보니 그림을 배우려고 해본적도 없고 그림을 그리려고 애써본일도 없어서 저는 당연히 저를 그림이라고는 보고 따라그리지도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그 저녁에 우연히 제 손에서 그려진 그림 하나....음??


아이가 고사리손으로 박수를 치며 말했습니다.

"엄마 그림 잘 그리네?"

살면서 한번도 들어본 일 없는 칭찬을 아이에게 들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죠.

갑자기 심장이 바람 가득 불어진 풍선처럼 빵빵하더니 가슴이 쫙 펴지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내친김에 색감이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어서 아래 위 옷도 못맞춰입는 미적감각 상실인 안목을 총동원해 색칠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아끼고 아끼는 색연필을 가져와 친히 빌려주시는 성은을 베풀었습니다.

"그림 못그린대놓고... 거짓말쟁이. 잘 하잖아"

"아냐 진짜 못그려."

"맨날 못한다고 하니까 못그리는거야. 자꾸 칠해봐야 느는거야"

제법 선생같은 조언을 하는 열두살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내손에서 그려진 그림이 신기합니다.


그뒤로 저는 작은 연습장을 사서 보이는대로 손가는대로 콘티를 잡듯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애견카페에 앉아서도, 또 사무실에서 일하다 쉬는 시간에, 공원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걸 보면서... 그리고 알았습니다.

세상은 참 다양한 표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말이죠.

저마다 다른 색을 지니고 저마다 다른 표정을 가지고 저마다 다른 삶의 방식을 사는데 세상이 조화롭게 돌아가는게 새삼스럽게 신기하고 또 재미있습니다.


어른인 저도 그림 잘 그린다는 칭찬에 이렇게 가슴이 쫘악 펴지고 세상의 표정이 보이는데

우리 아이들이야 그 깨끗한 마음에 오죽 어여쁜 그림을 그릴까요...

우리가 너무 쉽게 못해, 안돼, 라고 부정하고 핀잔으로 치부해버린 우리 아이들의 숨겨진 강점이

어른들의 핀잔과 고정관념에 묻혀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져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의 자존감...

그리고 그 무한한 잠재된 색색의 개성들을 서로 다른 표정으로 다른 색으로 꺼내놓을수 있도록

어른들이 좀 더 따뜻한 시선과 넓은 가슴을 나누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7살이 되도록 내 손에서 그림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1인.....아이의 칭찬에 처음으로 콘티노트도 만들고

색연필이나 파스텔도 만져보고 그림 그리는 방법이 나온 브런치도 구독하고.....글을 쓸때와 또 다른 세상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마 아이들도 저마다의 삶속에서 다양한 세상의 표정을 보고 있을겁니다.

못그리면 어때요, 전 화가가 아닌걸요...제 마음이 행복하고 즐거우면 됐죠.

아이도 그래요....못하고 더디면 어때요....그 희망찬 눈망울이 어여쁘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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