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의 동티모르 시절 이야기]
앞으로 전개될 모든 이야기들은 제 핸드폰 or 드라이브에 담긴 사진의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처음 동티모르로 떠났던 게 2016년이니 기억들이 많이 미화됐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지난 사진들을 보고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니 여전히 저한테는 특별한 기억들인가 봐요.
앞으로 전할 이야기들도 재밌게 봐주세요:-)
2016.02.26.-27.
수도 딜리에 도착하자마자 현지를 느낄 겨를도 없이 이름도 모를 호텔 방(훗날에 동티모르 마스터가 되고 나서는 어디인 줄 알게 됐다.)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다음 날 앞으로 내가 살게 될 로스팔로스로 떠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사무실 차에 바리바리 싸온 짐을 싣고 로스팔로스로 출발했다. 내가 온다고 당시 소장님이셨던 R소장님과 I간사님이 픽업을 나오셨었는데, 함께 차를 타고 로스팔로스로 들어가던 그 길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지금은 딜리-바우카우-로스팔로스 구간 도로 공사를 진행해서 길이 많이 좋아졌지만, 2016년 당시에는 20여 년 전 인도네시아 식민지 시절 만들고 수리 한 번 하지 않은 상태여서 도로가 좁고 파인 곳 투성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대략 5-6시간 걸려서 로스팔로스에 도착했던 거 같은데, 중간에 바우카우에 들러서 Benfica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때 마셨던 시르삭(: 그라비올라의 인도네시아어) 주스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이 글을 쓰면서도 제 스스로의 기억력에 소룸이 돋는 중입니다..�)
다큐멘터리 속에서나 보던 풍경들을 뒤로 한 채 마침내 한국 집에서 출발한 지 2.5일 만에 앞으로 나의 제 2의 고향이 될 곳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사무소를 지키고 있던 현지 직원분들(앞으로는 Maun/마운으로 부르겠습니다.)과 C간사님이 나를 반겨주셨다. 가볍게 인사를 마치고 임시 숙소로 지내게 될 간사님들 집에 짐을 풀어놓았다.
이 집은 이름하여 핑크 하우스(페인트칠을 핑크색으로 해서 핑크 하우스...). 본인의 당시 생각 기준 로스팔로스에서 제일 좋은 집이라고 생각했다.(1년 뒤 이 멘트를 쳤다가 큰 불신을 얻게 됐다.) 식민지 시절에 병원으로 쓰였던 건물이었다는데, 듣고 보면 정말 병원의 구조를 갖고 있었다. 원장님 방으로 쓰였을 거 같은 방 1개, 검사실이었을 거 같은 방 2개, 입원실이었을 거 같은 방 2개. 그중에 나는 작은 침대 하나 놓으면 꽉 차는 입원실 방을 배정 받았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자취도 해본 적 없던 터라, 짐 제대로 둘 곳도 없던 작은 방이었지만 무척이나 안락했다. 침대는 너무 작아서 모기장 하나 제대로 필 수 없었고, 방에 전기도 없어서 밤에는 헤드랜턴 불에 의지했어야 했지만 말이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짐만 금방 정리하고 집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적당히 예쁜 테라스도 있었고, 테라스 앞에 작은 마당 그리고 산책 나온 돼지 구경은 덤.�� 그리고 짚 앞 골목길이 조용하고 좋았는데, 훗날에 이곳은 HUNT CREW의 메인 집결지가 된다.
대충 집 주변을 둘러본 후 샤워를 마치고 나왔더니 고...양이...?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고양이를 키우는 집들이 많아졌지만, 당시에 나는 고양이를 가까이에서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저 신기했다. 이 친구의 이름은 멍구라는 친구인데, 로스팔로스 2년 생활에서 사람 못지않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그리고 여전히 혼자 두고 왔다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멍구를 구경하고 있으니 I간사님께서 저녁을 준비해 주셔서 함께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근데 중요한 건, 이날 하루가 나에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원래 살았던 곳 같고 늘 그래왔던 일상같이 느껴졌다.
사실 나 적응의 왕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