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의 동티모르 시절 이야기]
앞으로 전개될 모든 이야기들은 제 핸드폰 or 드라이브에 담긴 사진의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처음 동티모르로 떠났던 게 2016년이니 기억들이 많이 미화됐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지난 사진들을 보고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니 여전히 저한테는 특별한 기억들인가 봐요.
앞으로 전할 이야기들도 재밌게 봐주세요:-)
2016.03.01.-02.
출근 첫째 날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Maun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사업이 진행 중인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HUNT가 왔다는 소식을 동네방네 알리고 다녔던 거 같다.
내가 있었던 곳은 로스팔로스라는 곳으로 동티모르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지역인데, 수도 딜리에서 일반 차를 이용하면 6-8시간(이동 중에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버스로는 10-13시간(버스는 더더욱 예측할 수 없다.) 혹은 그 이상이 걸렸다.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단점도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내가 가장 만족했던 부분은 이곳은 대자연 그 자체였다. 앞으로 이야기들 속에 많이 등장하겠지만, 이곳에서 자주 했던 취미 활동은 초원에 가서 멍 때리기 혹은 블루투스 마이크 하나 들고 가서 단독 콘서트 하기 정도였다. 그만큼 누릴 거라고는 자연밖에 없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됐다.
주로 오전에는 사업이 진행 중인 마을을 방문해서 사업 모니터링하는 업무를 주로 했었는데, 가깝게는 오토바이로 15분 멀게는 1시간 가까이 떨어져 있는 곳들도 있었는데, 나는 이 이동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Maun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자연 속을 달리고 있노라면 이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사무소 돌아와서 해야 할 일은 생각지도 못할 만큼)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첫 출근 날을 뒤로하고 둘째 날, 어김없이 사무소로 출근했는데 30분 정도 지났을까? 바깥이 시끌시끌 해지더니 본격적인 환영식이 벌어졌다. 환영식을 가장한 사고.
내가 오기 직전까지 현지 직원이었던 Maun E가 아침부터 술에 취해서 사무실 창문을 다 깨부수고 다니며 행패를 부리는 게 아닌가..? 소장님, 간사님들, Maun들 모두 하나 같이 당황했고,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서있었다. 한참을 부시고 다니다가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알아먹지도 못하는 현지어를 남발하며 죽이니 살리니 했다.
당시에 테툼어(동티모르 공용어)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Bondia(아침 인사), Botardi(점심 인사), Bonoite(저녁 인사), Obrigadu(감사합니다.)밖에 없었는데, 차마 이 말을 할 수는 없어서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눈으로 멀뚱멀뚱 서있었다. 유일한 한국인 남자가 나밖에 없어서 뭔가 해야 하나 생각이 들던 참에, R소장님이 대뜸 핸드폰 동영상으로 그 장면을 찍으면서 너무나 단호하게 '멈춰라. 너 실수하는 거다.'(정확하지 않지만 대략적인 뉘앙스입니다.) 했더니 Maun E가 죽일 듯이 달려드는 게 아닌가..?
순간 '이건 사고다.'를 직감하고 나도 달려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일이 더 커지지는 않았고 마침 출동한 경찰에 의해서 Maun E가 체포되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 후에 알고 보니, Maun E의 근태 등의 문제로 계약이 해지됐는데, 그것에 앙심을 품고 사고를 저지른 거였다.
사건이 정리되고 코스토디오 아저씨가 나를 부르더니 엄지 척을 해주셨다. 아마도 아저씨 눈에는 첫날부터 이런 일을 겪은 나한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으셨나보다.
사무실 정리를 하고 반쯤 정신 나간 상태로 집에 돌아왔더니 역시나 반겨주는 건 멍구인 줄 알았느나, 나를 반긴게 아니라 천장에 붙은 도마뱀을 잡아달라는 거였다고 한다.(도마뱀은 멍구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
자기 전 문득 든 생각,
"근데...거 환영식 치고는 너무 거창한 거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