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동티모르 EP.4 : 생존하기, 나만의 레시피

by 헌트

앞으로 전개될 모든 이야기들은 제 핸드폰 or 드라이브에 담긴 사진의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처음 동티모르로 떠났던 게 2016년이니 기억들이 많이 미화됐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지난 사진들을 보고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니 여전히 저한테는 특별한 기억들인가 봐요.


앞으로 전할 이야기들도 재밌게 봐주세요:-)


P20160308_180243379_6CEBDE99-149A-4B0C-B449-A1DC56D3A6A7.JPG 이 때 마신 콜라맛은 잊을 수가 없지


2016.03.03.-04.

한국에서 자취라고는 해본 적도 없어서 요리라는 건 라면밖에 끓일 줄 몰랐던 내가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오니 스스로 요리라는 걸 해야했다. 사실 처음 동티모르에 나올 때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요리였다.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라면도 고등학생은 돼서야 끓일 수 있었을 정도로 요리에 관심도 없고 할 줄도 몰랐던 나여서 전날 겪었던 사고보다 더 사고는 내 요리 실력이었다.(물론 2024년 현재는 나만의 레시피를 가진 필살기들이 몇가지 있을 정도로 잘 트레이닝 되어있다.�)


P20160304_194947531_9ABC8F80-0DEB-45DD-A04E-611492717072.JPG 아들 바보 취급 당할까봐 감자썰기 열심히 시키셨다.


이런 아들이 걱정되셨던 어머니는 내가 동티모르로 떠나기 전 다른 것보다 된장, 고추장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며 직접 담그신 된장과 고추장을 바리바리 싸주셨다. 그리고 가장 해먹기 쉽다는 감자요리를 이것저것 만들어보게 하시고 나를 떠나보내셨다.

P20160303_192003009_E0752266-E893-4EF2-BD6E-B2392BC8BED2.JPG
P20160304_200319743_F91095D1-96F5-4244-A723-B5416DD90532.JPG


동티모르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 모두를 직접 해먹어야 했는데, 아침은 빵과 커피로 때우는 문화여서 나와 잘 맞았지만,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가끔 식당에서 2천 원짜리 도시락을 먹기도 했지만, 주로 나는 Supermi(수페르미)라고 하는 인도네시아식 인스턴트 볶음면을 사서 대충 끼니를 때웠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저녁이었는데, 지난 사진을 보니 이날 저녁도 참 고민이 많았겠구나 싶다. 이날 저녁은 강된장+양배추 쌈+가지볶음이었나 보다. 내가 가진 유이한 재료였던 된장을 활용한 강된장 요리를 한국에서 마스터하고 갔기 때문에 그나마 저녁 한 끼 때울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가지볶음...개인적으로 엄청난 육식파로서 한국에서는 거의 채소를 먹지 않았는데, 군대에서도 못 고친 식습관을 여기서 고칠 줄이야.�

로스팔로스에서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적당히? 싱싱한 고기를 구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적당히란 마트에서 고기를 구입해서 바로 구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인데, 이곳에서는 싱싱하다 못해 불과 5분 전까지 살아있던 소가 잠시 장을 둘러보고 오면 머리, 몸통, 다리로 분리되어 있고 온 사방이 피로 물들어 있는 상태에서 직접 부위를 지정해서 썰어달라고 해야 한다. 등심을 먹으러면 소 해부 도면을 검색해서 등심이 어느 부위인지 확인하고 직접 실물을 영접한 후 "아저씨, 저기 저 부위 1kg만 썰어주세요."라고 해야 했다. 그럼 바로 먹을 수 있냐? 전혀. 그걸 또 숙성을 시켜야 된다. 언젠가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2주 정도 숙성을 시켜서 구워 먹어 봤는데, 고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전에 턱이 먼저 빠질 거 같았다.


P20160308_174559060_E8C40122-1A33-4C91-8D6F-8F24E04762B0.JPG
P20160308_181921378_0A9E8822-C9F5-4C9B-BBE5-909F203A40A8.JPG
P20160304_195343801_B7E58EB8-9B69-4988-B021-CDFD93D20A0E.JPG 감자 파티


다음 날은 감자볶음&마법의 김가루. 그 다음 날은 감자샐러드&콜라 한 캔.� 감자~감자~왕 감자...이때까지는 몰랐다. 감자 대기근을 동티모르에서 경험하게 될 줄은...(로스팔로스에서 생활하며 한달 정도 흉작으로 먹을만한 채소들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한 달 동안 감자만으로 버텼던 때가 있었다.)

먹는 건 쉽고, 요리는 어려워...�



✔EP.4 마치며


먹는 것과 관련된 어려움은 개인차가 큰 부분이에요. 누군가는 현지에서 한국에서보다 더 잘 해먹는 분들도 계셨고, 아닌 분들도 계셨지만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저한테는 엄청난 도전이었답니다.�

사진 중심으로 글을 작성하다 보니 에피소드별로 분량 차이가 있을 거 같아요. 그런 부분도 하나의 재미요소이니 각 에피소드별로 더 궁금하신 내용이 있다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기억을 더듬어서 이야기해 드릴게요!

마지막으로, 사진 화질이 떨어져서 안 그래도 없어 보이는데 더 없어 보이지만, 저에게는 인생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행복한 순간이었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동티모르 EP.3 : 도착 환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