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전개될 모든 이야기들은 제 핸드폰 or 드라이브에 담긴 사진의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처음 동티모르로 떠났던 게 2016년이니 기억들이 많이 미화됐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지난 사진들을 보고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니 여전히 저한테는 특별한 기억들인가 봐요.
앞으로 전할 이야기들도 재밌게 봐주세요:-)
2016.03.03.-04.
한국에서 자취라고는 해본 적도 없어서 요리라는 건 라면밖에 끓일 줄 몰랐던 내가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오니 스스로 요리라는 걸 해야했다. 사실 처음 동티모르에 나올 때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요리였다.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라면도 고등학생은 돼서야 끓일 수 있었을 정도로 요리에 관심도 없고 할 줄도 몰랐던 나여서 전날 겪었던 사고보다 더 사고는 내 요리 실력이었다.(물론 2024년 현재는 나만의 레시피를 가진 필살기들이 몇가지 있을 정도로 잘 트레이닝 되어있다.)
이런 아들이 걱정되셨던 어머니는 내가 동티모르로 떠나기 전 다른 것보다 된장, 고추장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며 직접 담그신 된장과 고추장을 바리바리 싸주셨다. 그리고 가장 해먹기 쉽다는 감자요리를 이것저것 만들어보게 하시고 나를 떠나보내셨다.
동티모르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 모두를 직접 해먹어야 했는데, 아침은 빵과 커피로 때우는 문화여서 나와 잘 맞았지만,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가끔 식당에서 2천 원짜리 도시락을 먹기도 했지만, 주로 나는 Supermi(수페르미)라고 하는 인도네시아식 인스턴트 볶음면을 사서 대충 끼니를 때웠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저녁이었는데, 지난 사진을 보니 이날 저녁도 참 고민이 많았겠구나 싶다. 이날 저녁은 강된장+양배추 쌈+가지볶음이었나 보다. 내가 가진 유이한 재료였던 된장을 활용한 강된장 요리를 한국에서 마스터하고 갔기 때문에 그나마 저녁 한 끼 때울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가지볶음...개인적으로 엄청난 육식파로서 한국에서는 거의 채소를 먹지 않았는데, 군대에서도 못 고친 식습관을 여기서 고칠 줄이야.
로스팔로스에서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적당히? 싱싱한 고기를 구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적당히란 마트에서 고기를 구입해서 바로 구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인데, 이곳에서는 싱싱하다 못해 불과 5분 전까지 살아있던 소가 잠시 장을 둘러보고 오면 머리, 몸통, 다리로 분리되어 있고 온 사방이 피로 물들어 있는 상태에서 직접 부위를 지정해서 썰어달라고 해야 한다. 등심을 먹으러면 소 해부 도면을 검색해서 등심이 어느 부위인지 확인하고 직접 실물을 영접한 후 "아저씨, 저기 저 부위 1kg만 썰어주세요."라고 해야 했다. 그럼 바로 먹을 수 있냐? 전혀. 그걸 또 숙성을 시켜야 된다. 언젠가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2주 정도 숙성을 시켜서 구워 먹어 봤는데, 고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전에 턱이 먼저 빠질 거 같았다.
다음 날은 감자볶음&마법의 김가루. 그 다음 날은 감자샐러드&콜라 한 캔. 감자~감자~왕 감자...이때까지는 몰랐다. 감자 대기근을 동티모르에서 경험하게 될 줄은...(로스팔로스에서 생활하며 한달 정도 흉작으로 먹을만한 채소들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한 달 동안 감자만으로 버텼던 때가 있었다.)
먹는 건 쉽고, 요리는 어려워...
✔EP.4 마치며
먹는 것과 관련된 어려움은 개인차가 큰 부분이에요. 누군가는 현지에서 한국에서보다 더 잘 해먹는 분들도 계셨고, 아닌 분들도 계셨지만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저한테는 엄청난 도전이었답니다.
사진 중심으로 글을 작성하다 보니 에피소드별로 분량 차이가 있을 거 같아요. 그런 부분도 하나의 재미요소이니 각 에피소드별로 더 궁금하신 내용이 있다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기억을 더듬어서 이야기해 드릴게요!
마지막으로, 사진 화질이 떨어져서 안 그래도 없어 보이는데 더 없어 보이지만, 저에게는 인생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행복한 순간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