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의 동티모르 시절 이야기]
앞으로 전개될 모든 이야기들은 제 핸드폰 or 드라이브에 담긴 사진의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처음 동티모르로 떠났던 게 2016년이니 기억들이 많이 미화됐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지난 사진들을 보고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니 여전히 저한테는 특별한 기억들인가 봐요.
앞으로 전할 이야기들도 재밌게 봐주세요:-)
16.04.04.~06.
처음 입국 이후로 한달 반 만에 처음으로 수도 딜리로 출장을 갔다.
사진에 다 담기지 못했지만, 확실히 수도는 수도였다. 도로가 4차선에 넘쳐나는 오토바이와 미크롤렛(미니 버스). 내가 살던 로스팔로스에서는 상상도 못할 풍경이었다.
아마 딜리에 도착하자마자 이미 오후가 다되어서 크리스토레이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갔었다.
(내가 살던 동티모르 로스팔로스에서 수도 딜리 까지 거리로는 240km 정도 떨어져있는 곳이다. 우리나라라면 고속도로 기준 대략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동티모르는 도로 상태가 좋지 않고,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보다도 더 안좋아서 버스로 10시간 이상, 사업소 차로도 5-6시간은 걸렸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낭만이란 게 남아있어서 수도 간다고 신나서 DSRL을 챙겨갔었다. 바다 사진도 찍어보고 크리스토레이도 찍어보고 아주 신났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들어와서 짐부터 풀었다. 우리가 주로 지냈던 호텔 티모르.
한달 만에 처음 보는 풍경이다보니 모든 게 신기했다. 일단 방에 에어컨이 있다는 점.
로스팔로스는 상대적으로 고도가 높아서 생각보다 시원한데, 딜리는 너무나 습하고 더워서 호텔에서 에어컨 찬바람을 쐬는 것만큼 꿀맛이 없었다.
가끔 로스팔로스에서는 에어컨이 없어서 너무 더울 때면 에어컨 바람 쐬러 은행에 들어가....ㅆ었다.
다음으로 신기했던 TV.
참고로 내가 있던 지역에 TV가 없었던 건 아니고, 우리 집에는 TV가 없었다.
티비를 틀었더니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미드 중에 하나인 워킹데드가 나오고 있어서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첫날이라 모든 게 신기했지만, 너무 긴 이동 시간, 출장 업무 등으로 빠르게 기절했다.
다음 날 일어났는데, 이상하게 눈이 안 떠졌다.
거울을 보니 눈 두덩이에 벌레가 물었는지 모기가 물었는지 눈이 띵띵 부어있었다.
동티모르에 있는 동안 진짜 수많은 벌레 물림, 알러지 등이 있어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시골에서 흙 퍼먹고 살아서 한국에서는 이런 경험이 없었는데, 유독 동티모르에서는 이상한 병에 많이 걸렸었다.
사진을 보니 이때가 그 시작이었나보다.
출장 기간동안 같이 동티모르로 파견된 동기형을 오랜만에 만났다.
동기형은 나와 다른 기관으로 파견되서 수도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확실히 수도 사람이라 뭔가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도 시골에서 온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꾸미고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잠깐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한달 만에 나온 수도이기도 하고, 처음 입국했을 때도 제대로 둘러본 적이 없었어서 그냥 정처없이 걸었다.
로스팔로스는 산지여서 바다 볼 일이 없는데, 수도 딜리는 바다가 있어서 뭔가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딜리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바다 볼 수 있어서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미래에 진짜 딜리에 살게 될 지는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한텐 모든게 신기 했던 딜리 풍경들
내 눈엔 여기가 서울이었다.
2016년 딜리 풍경을 감상해보자.
사실 놀러 간 게 아니라서 짧은 자유 시간을 마치고, 계속 일을 했었다.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할텐데, 한달에 한번 수도에 나오는 거라 은행 업무, 물품 구입, 현지 기관 미팅 등 사업에 필요한 일들을 짧은 시간 안에 처리했어야했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출장 나오는 게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2박 3일을 쪼개고 쪼개서 숨 쉴 틈없이 돌아다녀야 했어요.)
출장을 마치고 로스팔로스로 돌아가는 길
2017년 이후 동티모르를 다녀온 사람들은 절대 본 적 없을 풍경
지금은 나름대로 대대적인 도로 공사를 통해서 길이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모든 길이 구멍 투성이에 절벽 길이었다.
출장을 다니면서 자주 생각했던게, '만약 우리 차가 브레이크 고장나서 절벽으로 구르면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였다. (참고로 ENFP라서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내가 동티모르에서 살면서 가장 좋아했던 풍경은 바로 이 초록초록함이었다.
물론 건기에는 누런 풍경이지만, 기본적으로는 푸르른 이미지가 많은 기억에 남아있다.
동티모르 제 2의 수도이자, 딜리-로스팔로스 사이에 휴게소 같은 곳이다.
특히 딜리에서 로스팔로스로 돌아올 때는 꼭 이곳에 들러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곤 했다.
EP.10을 마치며,
이미 8년도 더 넘은 사진들인데, 사진들을 볼 때마다 저때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게 참 신기하네요.
지금도 저기 사진에 있는 곳으로 가보라고 하면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에요.
2020년 모든 동티모르 생활을 마무리하고, 돌아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초마다 올해는 다시 나가볼 수 있을까? 생각하던게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네요.
올 초에도 올해는 꼭 한번 나가봐야지, 생각했던게 현재에 치여사느라 못 이루게 될 거 같네요.
그래서 한동안 멈췄던 동티모르 이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내년에는 꼭 다시 가보려구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진심으로.
그때 쯤이면 이 이야기는 몇 편쯤 쓰여져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