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의 동티모르 시절 이야기]
앞으로 전개될 모든 이야기들은 제 핸드폰 or 드라이브에 담긴 사진의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처음 동티모르로 떠났던 게 2016년이니 기억들이 많이 미화됐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지난 사진들을 보고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니 여전히 저한테는 특별한 기억들인가 봐요.
앞으로 전할 이야기들도 재밌게 봐주세요:-)
16.05.13.~20.
본격적으로 우기가 시작됐을 때라 오후 시간에는 천장이 뚫린 것처럼 비가 왔었다.
사무실 앞에 빈 드럼이 있었는데, 우기 때는 비가 가득 차서 비가 그치고 나면 아저씨들은 받친 물로 오토바이 세차를 하곤 하셨다.
개인적으로는 비가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우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좋았던 점은 우기 때가 건기 때보다 훨씬 초록초록 하다는 점.
잠깐 오는 스콜 정도는 괜찮았지만, 몇 날 며칠씩 비가 안 그칠 때는 고역이었다.
나 여전히 이 친구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소장님네 고양이이자 멍구의 형제..빨리 너의 이름이 기억났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 친구는 아저씨 같은 맛이 있었는데, 이렇게 비가 올 때면 진짜 아저씨처럼 바깥을 저렇게 쳐다보고 있곤 했다.
비가 올 때는 퇴근 후에 자전거 드라이브나 동네 꼬마들과 놀 수 없기 때문에 집에서 누군가가 두고 간 퍼즐을 맞추곤 했다.
이때도 며칠 동안 비가 오던 시기여서, 며칠 동안 퇴근 후에 퍼즐 조립만 했었는데, 퍼즐을 완성하기 전에 비가 그쳐서 미완의 퍼즐로 남겨두었다.
사무실 화이트보드에는 항상 딜리 출장에 갈 때마다 사 와야 할 물품들을 적어놓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집 앞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물건들도 당시 동티모르에서는 수도에 나가서야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늘 출장을 다녀올 때면 한 트럭 짐을 싣고 들어왔었다.
내가 맡고 있던 쿠키 사업에서 곧 지역 초등학교에 영양 다과 지원사업을 할 예정이었다.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쿠키 생산자 그룹이 직접 생산한 쿠키를 나눠주는 일종의 사회공헌활동이었는데, 생산해야 할 쿠키 분량이 생각보다 많아서 미리미리 재료를 잘 준비해야 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이 정도 물품 지원 같은 행사는 판넬 들고 사진 찍는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동티모르에서는 이런 행사들이 꽤 중요한 행사들이어서 식순에 맞게 진행해야 한다.
학교를 돌 때마다 교장 선생님들 훈화 말씀 등등 나름 세부적으로 아젠다를 짜야 했다.
그리고 한창 이때쯤, 쿠키 생산공간 외부 페인팅 작업을 해야 해서 아티스트를 섭외하는 중이어서 길가다가 좋은 레퍼런스를 발견하고 찍어놓았다.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이 됐다.
드디어 동티모르에 가서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로스팔로스 지역은 고지에 위치해서 섬나라인 동티모르임에도 바닷가에 가려면 차로 2시간 가까이 이동해야 했다.
로스팔로스에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바다인 꼼 비치로 여행을 떠났다.
곧 I 간사님의 귀국도 얼마 남지 않았기도 해서 다 같이 떠나는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었다.
처음 가본 여행이라 혼자 너무 신나서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내가 머물렀던 숙소의 모습
동티모르 숙소들에는 모기장이 쳐져 있는 곳들이 많은데, 모기장이 있어서 모기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모기장이 있으면 통풍이 잘 안된다는 단점이 있다.
모기장 안에서 자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
꼼 비치는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풍경이 예술이었다.
유일한 단점이라고 한다면 풍경 보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점
그냥 바다를 보면서 노래 듣거나 책 보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인데, 노래 듣는 걸 좋아하다 보니 주구장창 노래만 들었던 거 같다.
멍때리며 노래만 듣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 오고 있었다.
저녁이 됐으니 저녁을 먹어줘야겠지.
특별한 메뉴가 있지는 않고 그때그때 있는 재료들로 요리를 해주시는데, 이날은 생선구이 반찬을 해주셨다. 가끔가다가 크레이피쉬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미리 오기 전에 예약을 하고 와야 한다.
이후에 꼼 비치에 갈 때는 노하우가 생겨서 미리 며칠 전에 주인 아저씨한테 크레이피쉬를 잡아 달라고 했었다.
저녁을 다 먹고 나니 완전히 밤이 되었다.
여기도 로스팔로스와 마찬가지로 해가 지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차라리 다음 날 새벽 일찍 소장님과 일출을 보며 산책을 하기로 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6시 정도에 눈을 뜨고 일출이 뜨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구름이 끼긴 했지만, 운이 좋게도 일출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바닷가 동네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어릴 때 가족들과 일출을 몇 번 보러 갔던 게 전부였는데, 나름 살면서 몇 없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일출을 어느 정도 보고 카메라를 들고 소장님과 주변 산책을 했다.
지금은 핸드폰으로 거의 사진을 찍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다니곤 했다.
(이 사진을 드디어 풀어보네...)
사실 날이 밝았다고 해서 뭔가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로스팔로스로 돌아가기 전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일찍 일어나서 잠깐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생각보다 해가 너무 강렬해서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방에서 나와서 혼자 동네 산책을 한 번 더 했다.
진짜 한국에서는 본 적 없던 풍경들이라 나무며 풀이며 풍경 하나하나가 나한테는 다 신기했다.
1박 2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로스팔로스 산 속으로 돌아오는 길
여전히 우기였기 때문에 마른하늘에 소나기가 쏟아져서 사진 하나 남겨놓았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사진이라 인스타에도 박제해 놓기도 했다.
아무튼 동티모르에서의 첫 여행이자 I 간사님의 송별 여행 스토리를 끝으로 오늘도 Ad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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