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여행뿐이겠는가.
수많은 다행이 나를 스친다.
“깨졌어?” 아일랜드에 사는 C가 물었다. 어느새 아이슬란드 여행이 마무리되는 시점이었다. C와 나는 공항에서 함께 항공편을 기다렸다. 가방을 뒤적이다가, 나의 카메라를 떨어뜨렸다. 보호 렌즈가 깨져있었다. 렌즈가 아니라 보호 렌즈였다. 어떻게 보면 이런 종류의 수많은 다행이 여행 중 나를 지나갔을 것이다. 무사히 여행을 마친다는 건 그 자체로 다행이었다.
여행은 다행의 연속이었다. 무언가 깨지거나, 잃어버리거나, 중요한 걸 열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D는 헝가리에 살고 있다. 여행 첫날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됐다. 충전 후 다시 휴대전화를 켰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잊어버렸다고 했다. 리더기로 SD카드에 있는 사진을 열었다. 비밀번호가 적혀있었다. D는 여행 내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할 뻔했다.
아찔했다. 타지에서 맞이하는 위기는 하나하나가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독일에서 맞이하는 위기보다 훨씬 강한 위기감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타지에서는, 특히 아이슬란드에서는 큰일이 될 수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고 싶다." 재밌었던 건 어느새 내가 독일을 나의 집처럼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한국이 아닌 독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과연 여행뿐이겠는가.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온 것, 여행을 어디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것, 이 순간을 포기하지 않은 것도 모두 다행이었다. 여행지에서 돌아온 뒤에도 나는 여행지에 있었다. 그건 귀국이 다가올수록 커지는 아쉬움을 덜어주었다. 유럽 각국을 여행했던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것인지를 나에게 증명해주었다.
수많은 다행이 나를 스친다. 1인실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 헤센주 내에서의 교통비가 무료다. 독일에서 다른 유럽 국가를 가는 것은 비교적 저렴하다. 나는 여행을 떠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 여행 후에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정신적인 힘은 나의 기록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다. 나에게 주어진 많은 일을 하나씩 해내고 있다. 모두 다행스럽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귀국 항공편이 취소됐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인천으로 가는 직항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을 거쳐 인천으로 가는 항공편으로 바뀌었다. 전화 한 통으로 다른 날짜로 예약할 수 있었다. 귀국일은 8월 19일이다. 나는 그때 어떤 감정을 품을까. 너무 슬프지 않은 상태로, 모든 게 다행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간절히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