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하여 얘기할때 나는 역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상태가 되면 우주로 나가는 것 외에는
엄청난 감흥을 느낄 방법이 없을 테니,
나는 죽음을 택하겠다.
대화의 조각들. 죽음을 극복하겠다는 생각을 만났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보러 갔다. E,F,G는 나의 동문이다.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다. 어느덧 6개월이 지나고 곧 독일을 떠난다. E는 2만 년을 살고 싶다고 했다. 죽음은 인간이 극복해야 할 것이지,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고 했다. 레이 커즈와일이 영양제를 하루 100알씩 먹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특이점이 온다고 했다. 본래의 의미는 더 이상 인간이 발명의 주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E는 조금 다른 의미로 특이점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시기. 그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 시점까지 살아남기 위해 영양제를 먹고 있다고 했다. 다양한 것을 경험하기에 100년은 너무 짧다고 했다.
F와 G는 19학번이다. 입학 뒤 1년을 보내고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됐다. 캠퍼스에 가지 못했다. 지금 이 시기에 독일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행운이다. 경험의 기회는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F는 고등학교 동문이었다. 세상 참 좁다고 느꼈다. 함께 알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3년일 뿐인데, 경험한 세상은 이렇게나 달랐다.
코로나 대유행과 같은 사건은 반복될 것이다. 이런 일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때, 서로의 차이는 얼마나 심해질 것인가. 죽음을 극복한다 한들, 시시각각 어지럽게 변하는 세상에서 행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죽음에 관하여.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나는 그 선택을 할까? 글쎄. 잘 모르겠다. 지금으로서는 때가 되면 삶을 놓아줄 것 같다. 이만하면 됐다는 듯이.
행복에 관하여 얘기할때 나는 역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극적인 경험을 한 뒤 덜 자극적인 것을 다시 경험하면, 감흥이 없다. 노이슈반슈타인성도 역치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장소였다. 베를린, 뮌헨, 하이델베르크,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독일 여행을 너무 많이 한 탓일까. 노이슈반슈타인성은 내게 큰 감흥이 없었다. 역치가 높아진 탓일까.
지구 어디를 가도 감흥이 없는 따분한 상태가 될 수 있을까.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가능할 것 같다. 그 상태가 되면 우주로 나가는 것 외에는 엄청난 감흥을 느낄 방법이 없을 테니, 나는 죽음을 택하겠다. 감흥 없는 삶. 그 삶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행복을 역치라는 단어와 함께 설명하면 자극과 행복의 차이에 관하여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