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이를 넘겨버리면 감성이 굳어버리는 것 같다.
“동아시아 관련한 뉴스를 생각하면 애석하게도
서로 비난했다는 뉴스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낯설었다. 맑은 날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여우비였다. 그냥 걸어 다니기도, 우산을 쓰기도 애매하다. 아크로폴리스가 보이는 도심을 걸어 다녔다. 지중해 분위기가 느껴졌다. 가끔 햇살이 모습을 보일 때면 반가웠다. 유럽의 여느 도시가 그렇듯이, 이곳 날씨는 잠시 햇살을 보내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흐려졌다.
어느 나이를 넘겨버리면 감성이 굳어버리는 것 같다. 그것이 언제나 두려웠다. 아테네는 감성에 관해 생각하기 좋은 곳이었다. 갑자기 내리는 비, 세찬 바람. 나는 낭만과 불편함의 경계에 서 있었다. 나이들면 이런 것들이 모두 싫기만 하겠지. 다행히 지금의 나는 그런 요소들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느껴졌다. 나의 눈에는 아테네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리스 출신 친구 두 명에게 여행지를 추천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한 친구는 나에게 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직접 적은 여행지 후기를 보내준 것이다. 교환학생으로 지내다 보면, 좋은 기회가 많이 있다. 독일에서 만난 다양한 친구들이 여행지를 추천해주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다시 만나기도 한다. 유럽은 그만큼 서로 가까웠고, 아시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동아시아 관련한 뉴스를 생각하면 애석하게도 서로 비난했다는 뉴스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기회를 찾았던 것 같다. 중국 또는 일본 출신 친구들과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할 기회 말이다. 이러한 주제는 항상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이런 대화가 언제나 갈등으로 번지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역사에 관한 대화의 문을 열어놓은 친구들이 있었다.
민감한 주제에 관해서 대화를 피할 필요는 없었다. 더욱 자주 토론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 본인의 의견과 다르지만 경청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 또한 상대의 말을 경청하려고 노력했다. 나와 상대의 의견이 다르더라도, 감정은 잠시 내려놓고 끝까지 들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대화를 시도하다 보면 우리는 다르지만,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다.
아테네에는 유독 고양이가 많았다. 길가를 걷다 보면 고양이 세 마리 이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 직전에 여행한 터키에서는 강아지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여기는 또 달랐다. 그리스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지만, 한 달을 머문 것만큼 많은 생각을 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내 생각의 주제도 쉽게 바뀌었던 것 같다. 감성, 유럽과 동아시아, 나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