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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낫현 May 06. 2021

기다림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조진모 감독의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영화 감상 후 가볍게 읽어주세요 :)

기다림으로 인연이 완성된다.
불확실성은 곧 가능성이다.

무색무취의 영화다. 건강식을 먹은 기분이다. 영화는 희망, 위로, 인연을 말한다. 세 가지를 강하늘과 강소라, 천우희의 담백한 연기로 보여주며 청춘이라는 하나의 꾸러미로 관객에게 건넨다. 관람 뒤 벅찬 감흥은 없지만, 청춘이라는 시간에 대한 고민이 잔잔하게 밀려온다. 기다림을 두려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이 영화를 요약하고 싶다.

영호(강하늘 분)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지병을 앓고 있는 첫사랑 대신 영호의 손편지를 받은 소희(천우희 분)는 편지를 이어가기로 한다. 햇빛에 비춰야만 읽을 수 있게 편지를 거꾸로 쓰며 소소한 설렘을 주고받는다. 수진(강소라 분)의 표현에도, 영호는 첫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비가 오는 12월 31일에 만나자는 약속을 전하고, 그의 기다림이 시작된다.

결과를 예상할 수 없음에도 움켜쥐고 있어야 하는 희망은 아프다. 그렇다면 희망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걸까. 버려야 할까. 영화는 희망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맑은 날이 좋은 날이고, 비 오는 날이 나쁜 날이 아니잖아."라는 대사를 통해 넌지시 위로를 건넨다. 아프게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길을 걷는 과정이다.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희망은 여전히 소중하다.


삶은 위로가 필요한 과정이다. 소희 어머니가 남편을 잃고 세상에 졌다고 말하는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잔인한 녀석이었다고 말한다. 수진의 질문에 영호가 대답한다. “너는 별 같고 그 친구는 비 같아.” “너는 눈부시고 그 친구는 위안을 줘.” 애타게 원하는 인연을 생각해본다. 위로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왜 어린 시절 순간의 인연에 매달릴까. 영화는 현실적인 인연을 뒤로하고 첫사랑을 놓지 못하는 영호를 보여주며 기다림을 묻는다. 지금의 인연이 잠깐인 것을 알면서도, 왜 영원하기를 바라는지.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기억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다림 자체가 사랑의 일부이자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기다림으로 스스로 결정하는 인연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춘은 불확실하다. 영화에서 현실이 보인다. 불안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영화는 이 모습에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기다림으로 인연이 완성된다. 불확실성은 곧 가능성이다. 시간이 흘러 돌이켜본다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청춘이 아름다웠다고 생각할 것이다. 영화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기다림과 불확실성이 청춘을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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