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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

엘사랑 안나는 같진 않지만.

by 헌터

테르힝차강을 떠나 엘승타사르하이로 향하는 길, 여행 일정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태몽일주1150.jpg 지쳐보인다면 제대로 보고 계신 겁니다.

이번 여정에 특별한 조합, 재희와 재연. 둘은 자매다. 서로의 가방에서 옷을 꺼내 같이 입거나 돈을 같이 나눠 쓰곤 하던데 투닥거리면서도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어딘가 묘하게 웃음을 자아냈다. 재희는 공주 같은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작은 실수와 귀여운 허둥댐이 잦았고, 그런 그녀를 언제나 옆에서 단단히 잡아주는 존재가 바로 동생 재연이었다. (막내가 막내답지 않아..) 두 사람은 늘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돌보는 모습에서 묘한 유대감이 느껴졌다. 어딘가 엘사와 안나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또 전혀 다르기도 한 모습이랄까.

태몽일주1337.jpg 크리스토퍼와 스벤일지도

도로를 따라 펼쳐진 초원도, 나지막한 산들도, 이제는 마지막이었다. 여행의 끝이 가까워질수록 차 안의 분위기도 차분해졌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정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한참을 달린 뒤, 흐린 하늘 아래 몽골의 불교 사원에 도착했다. 사원은 고요했다. 붉고 금빛이 감도는 건물들이 단단한 대지 위에 서 있었고, 낮게 드리운 구름이 하늘을 감싸고 있어 그런지, 이곳은 더욱 차분하고 묵직하게 느껴졌다. 주변의 성벽을 따라 오래된 목각 문까지 몽골이란 나라에 정착한 불교의 흔적들이 차곡차곡 드러났다. 이런 와중 서현이는 신점을 볼 수 있나 하며 기웃거렸고, 모두가 펭귄처럼 모여 추위를 피해 웅크리고 사원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태몽일주1154_40.jpg 마지막 일정도 씩씩하게!

사원을 나와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지윤이는 칼을 사느라 고민했고, 예은이는 싱잉볼을 손에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소리를 냈다. 우리는 독수리를 손에 얹는 체험도 해보았다. 예상보다 무거운 독수리가 팔 위에 올라앉자, 손목을 따라 전해지는 묵직한 압력이 새삼 실감 났다.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거센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날카로운 발톱이 신경 쓰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몽골의 자연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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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을 떠나 다시 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엘승타사르하이의 미니 사막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부드러운 모래바람이 피부를 스쳤다. 초원에서 맞던 바람과는 결이 달랐다. 공기 속에는 미세한 모래 알갱이가 섞여 있었고, 하늘은 끝없이 펼쳐진 모래언덕을 배경으로 더 넓고 탁 트여 보였다.


낙타 체험을 위해 모래 언덕을 올라갔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옷깃을 여미게 만들었고, 낙타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말보다도 덩치가 크고, 느릿하게 움직이는 걸음에서 묘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어색했지만, 어느새 흔들리는 걸음에도 익숙해졌다. 뒤에서는 강산이가 물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며 사막을 뛰어오고 있었다.

태몽일주1193.jpg 흐린 하늘이 사막을 더욱 사막답게 만들었던.

모래 언덕에서는 썰매를 타기도 했다. 언덕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니, 사막이라 부르기엔 아담했지만, 끝없이 펼쳐진 모래가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바람에 날리는 모래, 멀리 보이는 초원, 그리고 아직 낮의 열기를 머금고 있는 땅. 사막에서의 마지막 시간은 짧았지만 선명하게 남을 것 같았다.

태몽일주1317.jpg 스릴이 얼굴에만 담겼다.

마지막 밤은 펜션 같은 숙소에서 묵었다. 짐을 정리하면서 이번 여행을 천천히 되짚었다. 태형이는 유튜브를 찍겠다며 인터뷰 촬영에 열을 올렸고, 나는 옆에서 킥킥거리며 그 모습을 구경했다.


재희와 재연을 보며, 문득 나와 내 여동생이 떠올랐다. 우리는 서로를 친구처럼 대한다. 필요한 건 챙겨주고, 서로의 물건을 허락 없이 써도 대충 넘어가기도 한다. 꼭 애틋한 감정을 나누지 않더라도, 묘한 호흡과 균형이 맞는 관계랄까.


마지막 일정이 끝나니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익숙해서 당연했던 것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았던 것들, 무엇보다도 대자연의 순간들. 초원에서, 호수에서, 화산에서, 그리고 사막에서—그렇게 몽골의 풍경 속에서 작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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