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함, 그렇게 낭만
아노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우리는 테르힝차강 호수를 향해 길을 나섰다. 어젯밤 늦게까지 별을 보느라 모두들 추위에 떨었지만, 다행히 아침이 밝을 때까지 감기 기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바깥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어느덧 우리의 체온이 이곳에 적응한 듯했다.
출발 직전, 다들 웃으면서 “형, 이번엔 제대로 챙겼죠?”라고 농담을 던졌다. 성규는 이런 소소한 실수들이 잦은 사람이었다. 매번 짐을 놓고 다닐 뻔하거나, 출발 전에 무엇인가를 깜빡하는 일이 잦았던 그였다. 나는 포장의 신이라 그런 서툼을 소년 같은 순수함이라고 불러주었다. 어딘가 허술한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미소를 가져다주어 그저 즐거웠다.
오늘의 여정은 약 2~3시간에 걸친 이동이었다. 숲 속 시냇물을 끝으로 초록 자연을 즐기고 마주한 건 차창 밖으로 펼쳐진 초원이었다. 홉스골과는 달리 살짝 금빛이 감도는 풀밭은 노련한 따뜻함을 품고 있었다.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 몽골의 풍경 속에서, 우리 모두는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며 그 고요함을 음미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우리는 숙소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마치 한강 라면을 즐기듯 풀밭과 호수를 배경으로 라면을 끓여 먹는 순간,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누군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워 있었고, 또 누군가는 잠깐씩 눈을 붙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밀린 연락을 하며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편안했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이 여유로움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행복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오후에는 탐험가처럼 옷을 단단히 갖추고 호르거 화산을 따라 트레킹을 했다. 도착한 분화구는 이전의 초원이나 호수와는 전혀 다른 강렬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깊고 거친 흔적이 남아 있는 분화구는 자연의 시간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아낸 거대한 흔적처럼 다가왔다. 내려오는 길 주변에는 이제 막 자라나는 어린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그 어린 묘목들은 아직 뿌리가 깊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지나가다 발에 차이는 돌들을 하나씩 쌓아 올리며 작은 탑을 만들기도 했다. 누군가 정리한 돌들이 길이 되어 있었고, 언젠가 내가 지나간 흔적도 또 다른 이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으로는 몽골 전통 요리인 허르헉이 준비되었다. 양고기와 채소를 뜨겁게 달군 돌과 함께 익혀 먹는 허르헉은 깊고 진한 풍미를 자랑했다. 익숙하지 않은 맛이었지만, 그 속에서 몽골 특유의 따뜻함과 정성이 느껴졌다.
어느덧 마지막 게르에서의 잠자리, 우리는 한 자리에 모였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서로의 서툼과 실수를 이해하고 웃어넘겼던 순간들이 떠오르며, 매일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성규 형의 허둥대는 행동 속에서 묻어나는 낭만과 긍정이었을까. 문득 순수함과 순진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순진함이란 세상의 복잡함을 이해하지 못한 채 쉽게 상처받는 단단하지 못한 마음이라면, 순수함은 세상의 거친 면을 알고도 그 안에서 낭만과 긍정을 잃지 않는 단단한 마음일 것이다.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그 속에 묻어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은 모습 덕분에 더욱 진솔하게 다가왔다.
나도 때로는 너무 조심스럽게, 혹은 지나치게 단단하려고 애쓰는 사이에 진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낭만과 긍정을 잃지 않으려면, 나는 그 두 마음을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을까.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