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이상형인 아이
홉스골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숙소의 모닥불은 이미 꺼져 있었고, 게르 안을 감싸는 냉기가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하지만 일출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니, 상쾌함을 넘어선 차갑고 선명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호수 위에 얇게 깔린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고, 물결 위에 붉은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해가 천천히 떠오르는 순간,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있었다.
옆에는 일찍부터 씩씩하게 돌아다니며 돌멩이를 찍고, 호수 위에 윤슬을 감상하는 예은이가 있었다. 이상형이 ‘나무’라고 했을 때 모두들 그 독특함에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예은이에게는 이곳이 이상형 월드컵을 열기에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차 안에서 예은이와 여행 취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어떤 여행이 제일 행복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고, 도시의 복잡함을 잠시 벗어나 자연 속에 몸을 맡기는 걸 좋아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랜드 캐니언에서 자연의 웅장함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버지니아의 쉐난도아 국립공원에서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동은 잊을 수 없었다. 시카고나 뉴욕 같은 대도시도 좋지만, 내게는 역시 자연 속에서 찾는 고요함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물멍이나 불멍도 좋지만, 그중에서도 풀멍을 하며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을 그저 바라보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그래서 이번 몽골 여행이 나에게 더욱 특별했던 것 같다.
해돋이를 충분히 즐긴 뒤 숙소로 돌아왔다. 일출의 여운이 남아 있었지만, 오늘의 일정을 준비해야 했다. 어젯밤에 뜯어 둔 핫팩의 잔열로 얼어붙은 손끝을 녹이며 식당으로 향했다. 아침 식사는 간단했지만 든든한 현지 음식들로 차려져 있었다. 정성스레 준비된 따뜻한 차와 음식들을 먹으며, 하루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의 첫 번째 일정은 모터보트 타기였다. 예상보다 거센 바람으로 인해 계획했던 곳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호수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모터보트는 일상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짜릿한 속도감과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잠시 후, 우리는 보트를 멈추고 카메라를 꺼냈다. 멀리서 장엄한 설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호수 위로 하늘이 그대로 비쳐 마치 두 세계가 하나로 이어진 듯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사진으로 이 광경을 모두 담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놓치고 싶지 않아 계속해서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모터보트의 짜릿함이 온몸에 남아 있었지만, 이어 승마를 준비했다. 한국에서 승마를 배운 경험이 있었지만, 몽골에서의 승마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몽골의 말들은 작고 강인했으며, 그 야생적인 기운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생동감을 주었다.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며, 말과 내가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추는 순간, 해방감과 함께 주변의 끝없이 펼쳐진 풍경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점심 식사 후에는 게르 앞에 찾아온 노점상을 구경했다. 캐시미어 목도리가 부드럽고 따뜻해 보여 엄마와 동생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 몇 개를 골랐다. 세련된 디자인과 색감 덕분에 한국에서도 잘 어울릴 것 같았고, 따뜻함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간단한 쇼핑을 마치고, 오후에는 카약을 타러 다시 호숫가로 향했다.
카약을 타며, 모터보트와 승마에서 느꼈던 짜릿함과는 달리 차분한 고요함이 나를 감쌌다. 호수 위를 천천히 나아가며, 온 세상이 멈춘 듯한 그 순간 몽골의 대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듯한 평화가 온몸을 감싸며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이후, 우리는 간단하게 연을 날리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탁 트인 몽골의 하늘 아래서 울려 퍼지는 우리의 웃음소리가 고요한 대지에 가득 찼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저녁으로는 몽골 재료로 만든 치즈 피자가 나왔다. 익숙한 피자였지만, 몽골에서 맛보는 그 풍미는 어딘가 색다르게 느껴졌다.
날이 저물자, 자연 속에서 보낸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 남은 맥주를 마시며 간단한 게임을 하면서 다들 점점 더 가까워졌다. 피곤했던 우리는 하나둘 잠에 들었고, 나는 잠시 예은이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나무를 이상형이라고 말했던 그녀처럼, 자연 속에서 우리는 더 솔직해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몽골의 끝없는 대지처럼, 내게도 끝없이 펼쳐질 새로운 길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의 여운을 안고 조용히 잠에 들었다, 그렇게 홉스골에서의 두 번째 밤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