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쉬고자 선택한 것이 여행이라니.
홉스골에 도착해 우리는 고급스러운 게르에서 첫 밤을 보냈다. 여행자를 위해 마련된 게르라 생각보다 훨씬 안락했고, 중앙에는 장작을 넣어 불을 지필 수 있는 난로가 자리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로 게르들 가운데 있는 식당에 모여 전통 음식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는 제일 따뜻한 게르에 모여 가볍게 라면과 맥주로 야식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었다. 날이 개어 별빛이 가득한 하늘은 한없이 평온했고, 일상에 치여 잠시 외면했던 마음속에 쌓였던 고민과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었다.
짜야도 자신의 삶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제 와서 짜야에 대해 설명하는 건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짜야는 우리의 여행을 이끈 현지 가이드였다. 풍부한 경험과 뚝심이 느껴지는 사람이었고, 때로는 오랜 친구처럼, 또 때로는 엄마처럼 다정하고 단호하게 우리를 이끌었다. 장난이 심해질 때는 가볍게 말리기도 하고, 고민이 깊어질 때는 인생의 선배로서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주곤 했다. 누구보다도 여행을 잘 이해하고, 우리를 잘 보살펴주는 존재였다.
“언니는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어. 이루려고도 노력 많이 했어.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진짜 잘해야 해.”
“할 수 있어. 진짜 원하는 거라면 더 해야지. 힘들어도,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어?”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말처럼 들렸지만, 짜야가 한국에서 타지 생활을 하며 겪은 힘든 시간을 떠올리면 그 말이 더욱 깊게 다가왔다. 젊은 시절의 짜야도 수많은 선택 앞에서 흔들렸겠지만, 원하는 것을 위해 끝까지 버틴 세월이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이가 들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동시에 피하고 싶은 일들도 함께 찾아왔다. 어릴 때는 단순히 시간이 없고 자원이 부족해서 하고 싶은 일을 못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복잡한 문제가 앞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어?”라는 말이 때로는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를 놓칠 것 같고, 그 말대로 지금 해야 할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하고 싶은 일을 미루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놓칠까 두렵고, 기회를 붙잡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래서 그 모든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내게 그 시간이 바로 여행이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 지쳐 잠시 쉬고자 선택한 것이 여행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내 삶의 고민은 여행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환경에서 경험을 쌓으며 일상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준비를 한다. 여행은 결국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나를 이끌어줄 이정표가 되어준다.
그날 밤, 짜야와 나눈 이야기는 내가 미루고 있는 것들에 대해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몽골의 별빛 가득한 밤하늘 아래, 나는 다시 한번 내 삶을 돌아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