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골로 가는 푸르공에서 내 옆자리는 재연이었다. 코지블랭킷에서 강산이와 함께 축구 경기를 봤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회사 동료들과 맥주 한 잔 걸치고 남은 치킨과 피자를 들고 지하철을 타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때 재연이는 꽤 조용한 친구로 기억됐다. 피곤했던 탓도 있었을 테고, 어색한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겠지.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재연이 던지는 농담들이 의외로 자주 내 취향에 맞았다. 몇 번이나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먼 길을 떠나기 전, 우리는 슈퍼마켓에 들렀다. 해외여행 중 마트를 구경하는 건 늘 재밌다. 그 나라 사람들은 뭘 먹고 어떻게 사는지 살짝 엿보는 기분이랄까. 짜야의 추천을 따라 레몬맛 하이볼, 맥주, 그리고 음료수와 귀여운 곰돌이 과자를 골랐다. 별다른 고민 없이 장바구니에 담으면서도, 이렇게 되는 대로 흘러가는 여행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추천을 이렇게 많이 하진 않았는데.
푸르공에 올라타자마자 맥주 캔을 따고 한 모금 마셨다. 각자의 이야기가 풀리기 시작하던 중, 재연이가 툭 던졌다. “서른 되면 뭔가 달라져요?” 순간 나는 한참을 생각하게 됐다. 예전에는 서른이 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던 내가, 막상 서른을 앞둔 지금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게 좀 우습기도 했다. 성숙해졌다고 믿었지만, 여전히 어딘가 어정쩡하고 불안하다는 점이 의외로 마음을 건드렸다.
이번 여행을 함께한 푸른 국화
하지만 서른이라는 나이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지도 않았고, 실패도 몇 번 겪어봤다. 조금은 노련해졌고, 삶의 리듬도 익숙해졌다. 아직 긴장감도 남아 있으니, 어쩌면 서른은 다시 시작하기에 꽤 괜찮은 시기일지도 모른다. 기대와 현실의 차이는 여전히 크지만, 그 차이를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잠깐 세웠을 때 만난 고양이
푸르공은 덜컹거리며 길을 달렸고, 가끔씩 멈춰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많았지만, 그런 일들 속에서도 나름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소떼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물 웅덩이를 피해 가고, 차창에 묻은 먼지를 닦기 위해 잠시 멈췄다. 예상 밖의 일들이었지만, 결국엔 그 모든 게 다 괜찮았다.
몽골에서의 첫 일몰
서른도 이렇지 않을까. 예측할 수 없는 길 위에서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돌아가지만, 그래도 결국엔 나아가는 것. 그렇게 푸르공은 목적지를 향해 달렸고, 우리도 어느새 첫날 숙소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