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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터 Sep 30. 2024

태형

형 가는지 몰랐음

몽골 여행이 다른 여행과 다른 점이 있다면, 혼자 떠나기엔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비용도 부담스럽고, 긴 이동 시간과 예측하지 못한 열악한 환경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중요한 건 함께 미칠 수 있는 동행을 찾는 일이다. 그래서 여행 전 미리 만나 서로를 파악하고, 맞지 않으면 빠르게 다른 일행을 찾는 경우도 흔하다.

시원해서 들어간 거 같지만, 모두가 외투를 걸치고 있다.

나는 강산이가 주최한 사전 모임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좋은 사람 곁엔 좋은 사람이 모인다”는 말처럼, 강산이 곁에 모인 사람들이라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태형이가 함께 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이 여행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다. 아, 태형이도 해양경찰 의무경찰을 함께 복무했던 전우이고, 그땐 나, 강산, 해수면, 그리고 태형이 정도의 계급이었다.


태형이와의 관계를 풀어내자면 이야기 한 사바리는 할 수 있겠지만, 군대 얘기라는 게 그렇다. 나와서 얘기해 봤자 입만 아프니까 짧게 말하자면, 우리 둘은 힘을 느슨하게 줄 때와 세게 줄 때를 알고 서로 의리를 지켜주는 사이다. 바쁜 와중에도 서로 자리를 채워주는 그런 관계다.

태형이의 졸업식

사실 이번 여행에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처럼 이시언처럼 서프라이즈로 등장하고 싶었지만, 공지사항 전달 문제로 단톡방이 미리 개설되면서 동행이 들켜버렸다. (방송과 현실의 차이랄까.) 어차피 들킨 김에 몽골로 떠나기 이틀 전, 태형이에게 같이 쓸 물품을 나눠 챙기자며 카톡을 보냈다. 나였다면 단톡방이 열리자마자 호들갑 떨며 연락했겠지만, 태형이는 늘 무심하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고 나서야 돌아온 말은, “오이오이 형 가는지 몰랐음ㅋㅋㅋㅋㅋㅋ” 이게 전부였다. 그 이후로 모기장을 챙기네, 드라이기를 챙기네 하며 좌석만 정해놓고,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담라에몽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태형이도 나도 여행을 많이 다녀본 터라 창가석 로망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3년 만에 만나는 거라 근황도 나눌 겸 같은 줄에 앉기로 했고, 복도석을 양보해 창가석은 내 자리로 정했다. 그런데 근황은커녕, 이륙 전에 둘 다 잠들었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잘 지냈구나’ 하고 대화는 끝났던 걸지도 모른다.


인천 공항에서 칭기즈칸 공항까지 비행은 세 시간 남짓,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일본이었다면 도착하자마자 로밍부터 켜고, 짧은 비행 사이에 무슨 일이 없었나 스마트폰부터 확인했을 텐데, 솔직히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한 건 짐 찾기와 화장실 찾기였다. ‘지금 아니면 좋은 화장실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후 가이드를 만나 환전하고, 마음에 드는 꽃을 하나 챙겼다. 그리고 기다리던 첫 끼니는 버거킹이었다. 
버거킹 맛은 우리나라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환타에 미친 사람이 있어서 그 환타 하나로도 충분한 아이스브레이킹이 되었다. ‘환타 한 잔에 이렇게 웃을 수 있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너도 뉴 와퍼니?

우리의 목적지는 홉스골 호수였다. (우리 고비사막 안 가?”라고 했다가 혼날 뻔했다.) 홉스골은 몽골 북부에 있는 호수로, 칭기즈칸 공항에서 출발해 차로 약 10시간 정도 걸리는 먼 여정이다. 하지만 홉스골의 깊이와 맑음을 보기 위해서라면 15시간 정도는 더 걸려도 참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푸르공을 타봐야 그 5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는 걸 알겠지만.)


푸르공이 뭐냐면, 몽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련식 오래된 승합차다. 험한 오프로드를 달리는 데에는 제격이다. 덜컹거리고 흔들리면서도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과 광활한 들판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사진 속에 보이는 차가 푸르공이다.

사실할 이야기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다만, 태형이와 나는 다른 차를 타고 이동했으니 그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는 게 맞겠다. 어쨌든, 지금까지 쓴 이야기는 공항에 도착해서 출발한 것만 가지고도 이 정도니, 앞으로는 더 할 말이 많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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