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는 사람
여행의 여섯번 째 밤, 방 안에는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았다. 나는 피곤함에 먼저 잠들었다가,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 다시 깨어났다. 몇몇은 이미 자러 돌아갔는지 방 안은 조금 한산해졌지만, 남아 있는 이들은 이 밤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아두고 싶다는 듯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남은 안주와 술병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대화는 밤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진해지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담이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담이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아니, ‘찍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돌잔치 스냅 사진을 찍으며 ‘담이룸’이라는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고, 자신만의 공간과 작업을 꿈꾸고 있었다. 여행 내내 그녀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들을 조용히 카메라에 담았다. 강산이가 장난스레 뛰어다니는 모습, 우리들의 환한 웃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 그녀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장면들은 어딘가 더 따뜻하고 선명하게 남는 것 같았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사진이란 그 순간의 공기와 감정까지 담아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녀와 꿈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담이는 나름의 고민이 있었나 보다.
“잘할 수 있을까?”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 꿈을 이야기하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렵고, 누군가의 걱정 어린 반응이 왜 이렇게 깊게 박히는 걸까.
“뭔가 하고 싶다고 하면, 부모님은 늘 걱정부터 하잖아.”
나는 그렇게 말했다. 남의 망설임에는 언제나 세상 통달한 듯한 말투로 대답한다.
“그건 그냥 공식이지 않나? 무조건 말리고 보시는 거.”
가끔은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담담하게 위로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도 담이에게는 그 말이 잘 닿았던 것 같다.
부모님은 늘 현실적인 조언을 하려고 했고, 그것이 결국 자녀를 위한 일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때로는 그 현실적인 조언이 가장 날카로운 벽이 되기도 한다.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니까 꿈이라고 하면서도, 아직 증명되지 않은 것이기에 누군가의 작은 부정적인 말에도 쉽게 흔들리고, 금방 작아져 버린다.
“그래도 나는 계속 찍을 거야.”
담이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투는 확신보다는 다짐에 가까웠다. 부모님의 걱정이 있고, 그로인한 자신의 불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계속해 나갈 거라는 의지. 나는 그 태도가 더 멋지다고 생각했다. 꿈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닐까. 절대 확신할 수 없는 것, 누군가 대신 보장해 주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것.
이 여행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겠지만, 오늘 이 밤에 나눈 이야기는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문득, 여행이란 결국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만들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였다면 쉽게 꺼내지 못했을 말들이 이 밤에는 스스럼없이 흘러나왔다. “괜찮아”라는 말도, “어쩌면 안 될지도 모르지”라는 말도. 하지만, “그래도 계속할 거야”라는 말이 결국 남게 되는 밤.
그리고 나는, 담이가 계속 사진을 찍어줬으면 좋겠다. 이 여행에서 그녀가 우리를 찍어줬던 것처럼,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순간을 담아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그녀의 꿈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사진 속에서 반짝이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