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것, 가져온 것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길, 차가 심하게 막혔다. 뻥 뚫린 초원을 달리던 푸르공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빽빽하게 늘어선 차들과 신호에 멈춰 서 있는 순간들이 어색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확실히 자연을 더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도착하자마자, 다들 기념품을 사러 나섰다. 마지막으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나는 엄마, 아빠, 동생에게 목도리와 가디건, 장갑을 샀다. 몽골에서 유명한 캐시미어 제품을 보며, 이 정도면 실용적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나 자신을 위해서는 딱히 사고 싶은 게 없었다. 그래도 여행을 갈 때마다 하나씩 모으는 뱃지는 빠뜨릴 수 없었다.
가은이는 남자친구 선물을 고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작은 것 하나도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이 귀여웠다. 정작 자기 것은 고를 생각도 안 하고, 아빠 선물도 빠졌다. 남을 위한 선물을 고르면서, 자신의 것은 뒷전인 모습이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여행 중에도 늘 선물을 줄 사람들을 떠올리며, 뭘 사가면 좋을지 고민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거 예쁘다!” 하고 손에 들었다가도, 금세 내려놓고 다른 걸 살펴보던 모습.
“엄마한테는 이게 나을까? 아빠는 이런 거 안 쓰려나?” 같은 말을 중얼거리면서, 자신보다도 남을 위한 선물을 먼저 고민하던 사람.
선물이라는 건 결국, ‘내가 이곳에 있었어’라는 흔적을 남기는 일이 아닐까.
무언가를 보고 떠올린 얼굴들, 그리움과 익숙함이 교차하는 순간들. 그리고, 그걸 전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선물이 되는 것 같았다.
기념품을 사고 난 뒤, 점심으로 가볍게 KFC에 들렀다. 몽골에서 먹는 KFC가 특별한 맛일 거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역시나 익숙한 맛이었다. 치킨의 바삭함도, 감자튀김의 짠맛도 어딜 가나 똑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저녁은 몽골에서 유명한 샤브샤브를 먹기로 했다. 뜨거운 육수에 고기와 채소를 넣고 익혀 먹으며, 여행의 마지막 식사를 함께했다. 거창한 만찬이라기보다는, 그동안의 순간들을 곱씹으며 나누는 조용한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자, 여행의 끝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몽골에서의 진짜 마지막 밤. 방에 들어와 짐을 싸면서도, 다들 뭔가 아쉬운 듯 느릿느릿 움직였다. 캐리어를 여닫는 소리, 옷을 개는 손길, 그리고 가끔씩 건네는 짧은 대화들.
아침이 밝고, 나는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시원한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지만, 마지막으로 이곳의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고 싶었다. 울란바토르의 거리는 처음으로 제대로 담았던 것 같다. 느린 걸음으로 도시를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정말 떠날 준비가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 남은 짐을 정리하는데, 몇 개의 옷이 눈에 들어왔다. 챙겨 가도 되긴 했지만, 괜히 무겁게 들고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짜야에게 주기로 했다.
“잘 입을게!” 그녀는 짐 하나라도 줄여줘서 고맙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는 문을 나서기 전 장난스레 한 마디 덧붙였다.
“다음에 몽골 오면, 옷 다시 가지러 와!”
공항까지는 빠개 아저씨와 욘두 아저씨가 데려다주었다. 차 안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출국이 가까워질수록, 말보다는 눈길이 더 많은 것들을 전하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빠개 아저씨가 특유의 익숙한 손짓으로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욘두 아저씨는 나를 한번 꼭 안아주며 말했다.
“언제든 다시 와. 우리가 반겨줄 거야.”
그 말이 왜 그렇게 따뜻하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마지막까지 장난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나는 천천히 출국장으로 걸어갔다.
비행기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앉아 있던 공항 의자에서 짐을 한 번 더 정리했다. 문득, 선물이란 결국 “이 순간을 기억해 줘”라는 말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떠나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서로의 시간을 조금씩 공유하면서 그렇게 연결되는 것.
이 여행도 그렇게 남겨질 수 있을까.
나는 마지막으로 배낭 지퍼를 닫고, 천천히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