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yond eyes Feb 07. 2020

[에필로그] 내가 이직 제의를 거절한 이유

스타트업에서 국내 대기업으로, 무엇을 꿈꾸었을까

작년 5월, 저에겐 무척이나 강렬한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 쯤 오는 그 기회. 퇴사의 이유를 밝히는 글은 많지만 현 회사의 잔존을 말하는 글은 생각보다 찾기 힘들다. 한국 경제 참조 




때는 바야흐로 친한 형님을 통해 어떤 중견 기업의 대표님과 술자리를 하는 자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회사의 대표님은 무역업과 코스메틱 사업을 하고 계셨고

60명 남짓한 회사의 대표이시지만 나이가 40살 밖에 되지 않은 젊은 대표님이셨습니다. 

그날의 저녁 목적은 바로 이직 제의였습니다.


당시 대표님께서는 자신의 화장품 브랜드 사업을 개발하고 기획해줄 전략 기획 포지션의 직무 전문가를 구하고 계셨습니다. 3번의 창업 경험과 다양한 회사를 다니며 기획 업무에 관심을 보였던 제가 적격이라고 저의 친한 형님은 생각하셨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자리에 가게 되었지요.

그렇게 그 대표님을 만난 후 한 달의 시간 동안 총 2회의 오퍼가 왔습니다.

그때마다 직접 대표님께서 저를 찾아와 이 회사로 가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그리고 회사원으로서의 한계를 설명하시면서 '진짜 돈을 벌고 싶고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던 브랜드 창업을 훨씬 빠른 시일 내에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득하셨습니다. 

유연한 조직 문화 속에서 제 자신에게 주어질 재량권도 기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한 달이 지나 결국 저는 대표님께 거절의 문자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문자를 보내기 전에 참 많은 생각과 지난날의 고생한 것들이 감정의 부산물처럼 떠올랐고,

그때의 문자 내용이 감정에 휩싸여 결정한 것이 아닌 훗날 어느 때 들여다 보아도 

합리적인 결정이었다는 것을 반추해보기 위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혹여 읽으시는 어느 독자분이 계시다면 옆에 있는 것처럼 이 감정을 꼭 전달하고 해보고도 싶었습니다. 

왜 가지 않았는지를 말이죠.


[거절 이유 1. 대기업 입사 결심, 브랜드에서 3년의 경험을 가져보자] 
너무 혼란스러웠던 한 달 동안 제가 왜 이 회사에 입사했는지를 다시 반추해보았습니다. 

홈쇼핑이라는 곳이 브랜드 가치가 높은 곳은 분명 아닙니다. 

하지만 유통사의 '채널'의 브랜딩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우리가 29cm나 지그재그와 같은 신규 쇼핑몰의 성장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요. 현대 홈쇼핑이 커리어적으로 제게 줄 수 있는 가치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전 세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고관여 & 고 구매력을 보유한 5060 세대가 가장 많이 찾는 홈쇼핑
2) 럭셔리 제품과 화장품 상품이 가장 잘 팔리는 가운데 밸류체인 상 홈쇼핑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홈쇼핑
3) 전 세계 유일하게 CS 시스템이 잘 잡혀있는 한국, 그 와중에 홈쇼핑의 CS 체계는 가희 독보적이라고 할 만큼 체계적인데 리스크 관리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이는 H홈쇼핑

이렇게 타깃과 제품, 그리고 위기관리 관점에서 저는 꼭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운 좋게 CS서비스 기획 팀으로 발령을 받아 다음 커리어로 생각하고 있는 서비스 기획자라도 성큼 다가갈 수 있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이곳에서 적어도 저러한 특징들을 배우기 위해선 최소 3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1년은 업무 익히기, 2년은 익힌 업무를 가지고 적용해보기, 3년째는 직접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응용할 수 있는 단계로 말입니다.

그래서 다음 스텝이 스타트업이건 중견이건 어디건 간해, 누구나 다 들으면 알만한 곳에서 경험을 한 자산은 제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꼭 유명해서, 대기업이라서가 아니라 '체계'를 배운다는 관점에서 말이죠.

[거절 이유 2. 사수가 없는 그곳, 모험과 절망 그 어디 즈음]
지금의 저를 있게 한 배경에는 스타트업에서 배웠던 그릿(Grit)과 설계되지 않은 벌판에서 

저에게 무한히 주어진 재량권을 활용하며 빠른 피드백을 통해 서비스를 키워나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있었을 당시 가장 아쉬웠던 점은 함께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파트너가 없었던 점입니다.

물론 다양한 실무진들이 함께 업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지만, 저와 같은 직무를 부여받고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인력구조의 한계상) 자만심에 빠지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도 아무도 이를 수정해 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없었습니다. 마치 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무엇을 가지고 객관성과 적절한 균형감을 일할지는 알 수 없었던 것이죠. 


독자분들 중 취준생이 계시다면, 취준생 분들께는 '업무를 알려주거나 혹은 배치받은 업무에 미리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사수가 없다는 말은 양날의 검 같기도 합니다. 자신이 그 업무에 총책임자이자 관리자이기 때문에 재량권이 높고 업무의 자유도가 높아 의사결정이 빠릅니다. 이를 통해 끊임없는 가설 검증을 직접 실행에 옮길 수 있어 일반 대기업보다는 배움이 훨씬 더 많습니다.


반면, 가설을 검증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는 자기 오류에 빠져 자칫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사수가 없다는 것) 본인이 하나부터 열까지를 챙겨야 하며 아무리 C레벨과의 논의가 있다 하더라도 자세한 실무를 아는 중간관리자가 있고 없고의 유무는 업무 완성도에 크나큰 차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타트업을 떠나오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제의받은 곳을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이 때문이고요.

혹자는 제게 '의존적이고 안락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변질되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상황에서 옳고 그름이 없기에, 제가 선택한 것을 옳게 만들게 하겠다고 선언해보려 합니다.


이제는 벌써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지금. 제가 한 선택이, 향후 10년 후 다시 되돌아보았을 때 후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세월을 살면서 고민의 길에서 제가 한 선택에 한 번 도 후회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좋든 나쁘든 모든 길에는 배움이 있었고, 그 연결 위에 지금의 제가 있었으니까요.

오늘은 마치 술 먹고 글을 쓰는 느낌이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께도 이런 고민의 순간이 꼭 올 거라고 봅니다. 

어떤 선택을 하던 늘 응원하고 그곳에서 답과 길을 찾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