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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윤 Jun 11. 2020

크기만큼 자란다.

지난주 실내용 화초를 사기 위해 아내와 함께 파주에 있는 농원을 찾았다. 한적한 농가에 위치한 농원은 다양한 묘목, 꽃, 선인장 등을 갖춘 제법  식물원과도 같았다.

넓은 공간을 둘러보는 가운데 작은 화초들에 눈이 갔다. 이미 푸르게 장성한 식물보다, 작지만 함께 살아가며 성장 과정을 함께 하고픈 친구들에 마음이 끌렸다.

벤자민은 금방  자라니 지금보다  화분으로 옮기시는  좋을 거예요벤자민을 유심히 살피는 나에게, 옆에서 지켜보던 직원분은 말을 건네 왔다. 투박하고 조악해 보이는 플라스틱 화분은 우리 집안에도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벤자민의 원활한 성장과 집안 분위기에 맞춰 분갈이를 단행하였다.    화분에 넉넉히 흙을 채워 가던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묘목이  자라기 위해선 흙도 중요하지만 화분의 크기도 중요하듯이, 우리 인간이라는 나무도  사람이 되기 위해선 넓은 인식의 대지에 담겨야 하지 않을까?

화초 분갈이하며 우리 인생의 단면을 엿보았다. 우리는 자신만의 지각된 세계의 관점으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본다. 저마다의 관점이 모두 다르기에 세상은 고통과 갈등의 연속이다.

관점은 진실을 의미하지 않을진대 세상은 자신의 관점을 진실이라 착각하고 타인을 비난한다.

오로지 마음에 비친 환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생각의 크기, 내용이  자기의 현실인 셈이다. 마음 밖에서는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환상과 착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에 대한 열린 시각과 평생 학습이 필요하다.

토양이 넓을수록   묘목으로 자랄  있는 기회가 제공되듯, 사람이라는 나무도 풍부한 경험, 지식, 정보가 쌓여야 열린 관점의  사람이  기회는 커질 것이다.

 주간  마음을 품으며 ‘라는 나무의 의식은 지구에 뿌리내린, 아니 우주에 뿌리내린  그루 나무라고 상상해 보았다.

 순간 인식의 지평이 무한대로 드넓게 펼쳐지며, 옹졸한  마음의 동굴도 안개처럼 사라지는 듯했다.

 세상 떠날 때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을 수용하는 자세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결국 세상은 자신이 수용한 만큼 보일 테니까

[사진: 몽블랑. Aug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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