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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윤 Jun 13. 2020

 탄생과 죽음은 대립의 개념일까?

그리스 신화에는 빛과 대기의  ‘아이테르 등장한다. ‘아이테르 밤의  ‘닉스 흑암 사이에서 탄생하였다. 빛은 깊은 심연의 어둠에서 태어났다.

어둠은 어둠으로 소멸되지 않고 빛이  것이다. 결국 죽음에서 생명이 유래되는 것이다. 어두운 엄마의 아기주머니에서 빛의 세상으로 아기가 나오듯이...

신화는 우리 삶과 연결이 가능한 유추적 진실을 담고 있다. 애니미즘을 바탕에  상징들이다. 분석심리학자  융은 이를 원형(Archetype)으로 본다.

논리적이지 않은 신화가 지금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의미로, 현재도 반복 재상영되는 영화와 같다는 뜻이다.  융은 밝음을 상상한다고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인식함으로 우리는 밝아진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원리에  일찍   중국의 장자는 부인의 장례식장에서 주검에 걸터앉아 항아리를 두들기며 노래를 불렀다. 장자의 친구 혜시는 폐륜적인 장자의 행태에 대경실색하며 힐난하였다.

우주의 실체적 진실에 눈을  장자는 인간의 생사란 계절의 순환과 다름이 없음으로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친구 혜시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기능적인 것에서 벗어나 ‘근원 장자는  것이다.

가을이 겨울로 바뀌는 것처럼 죽음을 자연스럽게 자연의 변화로 수용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삶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죽음도 죽음만을 뜻하지 않는다.

죽음을 상징하는 겨울에서 봄은 이어지고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죽음의 겨울이 찾아온다. 죽음에서 변화가 일어나 삶이 있게 되고, 또다시 변해서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크리스천으로서 천국 소망이 있지만, 연약한 인간인지라 슬픔은 오랫동안  주변에서 서성였다. 이별은 모두에게 힘든 것이다.

그런   생명이 우리 가정에 찾아왔다. 죽음과 생명의 공존을 나의 삶에서 생생히 피부로 맞게 된 것이다.

 세상에는 ‘있는 것과 없는 들의 서로 대립되는 것들이 함께 살아간다. ‘유무상생(有無相生)’ 원리 속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함께 한다.

어둠에서 빛이 탄생하고 죽음이 생명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오늘도 맡겨본다.

프도록 아름다운 인생을 찬미하며...

[사진1] 희망하는 이란성 아이들 이미지. 심상 내면화 업 중

[사진2] 12주차 쌍둥이는 머리를 맞대고 건강히  있습니다. 기형아 선별 검사도 모두 마쳤습니다. 이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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