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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윤 Feb 08. 2020

말소된 번호

어제 아버지 휴대폰을 해지시켰다.
아버지와의 이별도 100일이 지났지만 그동안 휴대폰 말소는 차일피일 미뤄왔었다.
떠났지만 떠나보내기 싫었던 내 안의 무의식적 역동이 생각보다 컸던 거 같다. 아직 저장되어 있는 아버지의 문자, 카톡을 가끔씩 열어보며 난 아직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그 자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떠난 분을 내 곁에 앉혀 두고 싶은 마음은 삭제 버튼을 선뜻 누르지 못하게 만들었다. 영원한 이별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어린아이 같은 두려움이 아직 공존하고 있다.

대리점에 사망진단서, 가족관계 증명서를 건네고, 복잡한 서류들에 덤덤히 서명을 하였다. 밖으로 나오자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이 서슬진 칼처럼 매섭게 뺨에 부딪쳐왔다. 오늘따라 길고 외로워 보이는 종로 거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종로 1가에서 5가까지 뚜벅뚜벅 발길을 옮겨갔다. 무심하게 유유히 흐르는 자동차와 사람들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이 피었다 사라져 갔다. 그리움과 회한이 범벅이 된 마음이 애잔하게 저며 온다.  

정든 사람들과의 이별은 언제나 마음 아프기 마련이다. 그것이 가족일 때는 애잔함과 허전함이 더 크게 묻어나는 것 같다. 때론 미워하고 사랑하며 지냈던 복잡다단한 양가감정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보낸 세월만큼 켜켜이 사무친 기억들은 여러 갈래의 감정을 일으킨다. 감정의 파도가 거센 숨결로 밀려왔다가 마음에 하얗게 부서지는 경험을 이별 후 자주 한다.   

아버지는 은행원으로서 완벽주의와 강박이 크셨던 분이다. 어린 나는 인정과 칭찬을 갈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감받지 못한 냉랭한 공기뿐이었다. 내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의 경험이 없었다. 늘 평가와 비난의 긴장 속에 분투하며 성장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우리는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는 눈물의 사과를 하시기도 했다.

“내가 여린 네 맘을 잘 담아주고 그랬어야 했는데 왜 그렇게 혼냈는지…옛날엔 그냥 옷 입혀주고 학교 보내주면 다 되는 걸로 알고 너무 투박하고 험하게 대했어… 아비가 감정 같은 거에 세련되지 못했고, 상처 줘서 미안해…”

바위처럼 무겁게 짓눌려 있던 응어리진 마음은 눈 녹듯이 풀어졌다.
그간 서운함의 기억들로 가려져 있고, 어두운 마음에 덮여있던 아버지와 사랑의 추억들이 새롭게 떠오른다. 좀 더 일찍 알아채지 못한 미안함과 살갑게 대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나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아버지를 기억하는 것은 떠난 분 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녹록지 않은 삶을 오늘도 살아 내야 하는 나에게 삶의 끝이 절망의 소멸이 아님을 다짐하게 해 준다.
아버지를 내가 기억하고 아버지에 대해 빚진 마음을 끌어안고, 내 삶을 더욱 진실 되게 가꾸고 승화시켜내야 할 것이다.

아버지가 삶에 그려 놓은 무늬들을 새로운 나만의 물결로 세상과 공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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