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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윤 Mar 17. 2020

하드 록 서예학원

나는 초등학교 시절 아현동에 소재한 서예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 없지만, 내가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동네 상가마다 주산학원, 서예학원이 많았다. 직접 버스를 타고 학원에 가는 날이면 마음은 장밋빛 홍조로 물들어갔다.

여의도 섬 밖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큰 도전이었고,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나오는 하비에르 바르뎀을 닮은 30대 젊은 원장님의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만나는 기대가 컸던 거 같다.(그 당시엔 가수 송창식 씨 닮았다고 생각했음)

원장님은 항상 백색 모시 한복을 입고 있었다. 하얗게 표백된 정맥분 밀가루 같은 낯빛은 백색 한복과 맞물려 기묘한 감흥을 유발하였다. 마치 한 마리 백로가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난 늘 조마조마 마음을 졸이며 먹물이 백로 원장님 의복에 튀지 않을까 조심해야만 했다.    

낡은 학원 건물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항상 강력한 비트의 음악이 먼저 맞아 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파괴적이고 폭발적인 사운드 속에 힘차고 호방한 붓놀림의 원장님 모습이 들어왔다. 먹과 벼루의 독특한 향내를 타고 흐르는 하드 록 사운드는 11살 감수성을 자극하며 오감 깊숙이 파고들었다.

백로 원장님 작업 테이블 뒤로는 LP앨범 수백 장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학원에 일찍 도착한 날에는 원장님 몰래 앨범들을 살포시 꺼내 보기도 했다. 대부분 문화체육부 검열로 허가받지 못한 불법 하늘색 빽판이었다. 무시무시한 그림과 현란한 이미지들은 내 안의 원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Led Zeppelin, Renaissance, Black Sabbath, Yes, Camel, Thin Lizzy, The Yardbirds, Doors, Jeff Beck 등은 수업 중 자주 등장하는 단골 뮤지션이었다.

백로 원장님이 불꽃같이 타오르는 눈의 심지를 밝히고, 앨범 위에 전축 바늘을 내려놓는 긴장의 순간이 난 좋았다. 먼지와 마찰로 장작이 타들어 가는듯한 소리에 맞춰 벽에 걸려있는 붓글씨들이 훨훨 춤추며 날아오르는 상상도 했었다. 백로 원장님 지휘 아래 그곳은 맹렬한 도가니가 되었다.  

아현동 서예학원은 익숙하지 않고 뭔가 어색한 것들이 맞물려 미묘한 이질감이 흐르는 공간이었다. 동양의 그윽한 묵향과 서양 하드 락, 새 하얀 모시 한복과 검은 먹물의 강렬한 대비는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는다.

그 당시 11살 짧은 삶이었지만 그동안 축적된 정보와 고정관념과는 확연히 다른 경험이었다. 당연한 것처럼 세팅된 인식의 선입견이 무너지는 첫 번째 경험이었다.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건, 관계, 환경 속에서 우리의 뇌는 그것들의 의미를 늘 속사포처럼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정보로 전달해 준다. 뇌의 이러한 기능 덕분에 우리의 일상은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자신의 자동적 사고를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합리적인 분석 과정을 거쳐야 할 때도 많다.

서양과 동양이, 고대와 현대의 동시적 공존이 흐르던 아현동 추억이 요즘 자주 떠오른다.

서예와 국악이 항상 맞물려 돌아가지 않음을…
개량한복 입고 웨딩 치를 수 있음을…
나의 당연함이 타인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난 아현동에서 조금 알게 되었다.    

서예보다 음악에 더 일찍 눈을 뜨게 해 주신 백로 원장님 보고 싶습니다.

사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2020.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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