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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윤 Apr 04. 2020

허쉬 초콜릿과 그때의 나

본가 창고 방을 정리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쓰던 필통을 발견했다. 나는 잊어버렸어도 나를 잊어   없다는 서운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손 검지로 쌓인 먼지를 살며시 쓸어내자 여기저기 긁힌 자국들이 그간의 세월을 말해 주고 있었다.

30  여의도 시범 상가 슈퍼마켓에서 해태제과 판촉 사은품으로 받았던 케이스. 3 때까지 10 시절을 모두 함께 보낸 벗을 홀대했다는 뉘우침이 밀려들었다.

뜻밖의 예기치 못한 조우는 과거로 이어진  갈래 길로 나를 인도해갔다.  당시 달콤한 맛만 강했던 기존의 초콜릿과는 다르게, 허쉬 초콜릿은 카카오 함량이 높아 달콤함과 쌉싸름한 풍미를 동시에 맛볼  있었다. 그때의 초콜릿처럼 나의 10 시절도 달콤한 순간과 쌉싸름한 사건들이 공존하고 있다.

필통을 열자 낡고 빛바랜 시간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메모지에 자를 대고 꼼꼼히 가로 세로줄을 그어 만든 시간표였다. 빈칸마다 지구화학 색연필로 다채로운 컬러를 채우며 그렸던 꿈들도 생각난다.  시절 필통을    열고 닫으며 꿈과 좌절도 함께 피고 졌을 것이다.

깊은 질풍노도의 어둠 속에서, 천둥 번개 비바람이 몰아치는 다채로운 경험과 이야기는 지금 집필 중인 심리 에세이집에 그려 넣고 있지만, 필통의 긁힌 자국처럼 지워 버릴 수도 없고 잊어버릴 수도 없는 흠은 깊게 남아있다.

오늘 마주한 필통과 나와의 관계는 마르틴 부버가 말한 ‘나와 그것 관계가 아닌, ‘나와  관계로 다가온다. 도구로써 활용되던 ‘그것 아닌, 함께 아픔의 현장에 있었고 달콤 쌉싸름을 나눈 동지로서 ‘라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만남과 대화의 중요성이 상실되고 자신의 유익이나 이익을 위하여 사용되는 ‘나와 그것같은 인간관계가 대부분인 현시대에 친구 ‘필통 보며 깊은 반성을 하게 되는 아침이다.

낡고 찌그러진 필통 속에 오롯이 담긴 달고  기억들은 유리구슬처럼 영롱하다. 지금의 벚꽃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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