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날숨

모닝 샤워의 다양한 선택지s

by 허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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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아침이다! 하고 일어나 샤워를 하려고 수도꼭지를 트는데.. 뎀.. 물이 차가웠다. 얼음물 정도까진 아니고 미온수라고 하기엔 조금 더 차가운, 딱 그 정도. 가장 따뜻한 쪽으로 손잡이의 방향을 돌려봐도, 따뜻한 물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순간 정신이 까마득하다 못해 깜깜했던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수도를 닫고 돌아가 볼까 했으나.. 샤워를 하기 위해 이미 옷을 다 벗고 결심한 상태라 무를 순 없겠다 싶었다.

(이게 뭐라고 야단인가 싶지만, 모닝 아침의 샤워를 차가운 물로 여느냐 따뜻한 물로 여느냐 뜨거운 물로 여느냐에 따라, 하루는 천차만별의 양상을 띌 수도 있더라. 적어도 내겐 그렇다. )

손톱깎이가 방문한 지 오래인 듯한 발톱을 앞세워 다리를 쭉 뻗어 떨어져 내리는 물을 향해 살짝. 긴장했던 것인지 물과 발 사이의 적당한 거리 조절과 발을 뻗는 힘을 지나치게 줘버린 탓에 예상보다 발의 많은 부분에 물이 닿아버렸다. 순간 놀라서 지탱하고 있던 한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것까진 아니었더라도, 잠깐이었지만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다시 걸음을 돌려 수건으로 발을 닦고 도로 옷을 입을지. 그래서 온수가 나올 때쯤 이 과정을 재탕할지.. 하지만 씻기 바로 직전의 과정에(가령 옷을 다시 입고 다시 벗고 하는..) 추위와 게으름을 더하여 계산해 보았을 때, 눈 딱 감고 샤워기 아래로 돌진하자는 결심에 손을 내어주게 되더라. (이럴 땐 게으름이 도움이 되더라.)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손으로 느끼는 물의 온도와 몸으로 느끼는 물의 온도가 극 이상의 극이라, 차가움에 놀라움이 더해져, 화장실에 달려 있지도 않은 창문 틈 사이로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맨 몸으로 맞고 있는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방불케 했다.


벗, 눈 부릅뜨고 추위는 정신력으로 견뎌 보자 라는 의지로 씻다 보니 어느새 물이 따듯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찬물의 추위로 떨며 씻는 듯했으나, 어느새 미온수 아래서 나름의 안정과 함께 샤워하고 있는 것만 같았달까.

또한 물이 너무 뜨겁지 않았던 덕택에 졸음에서도 깰 수 있어서 맑은 정신으로 상쾌하게 샤워를 마칠 수 있었다. 속으로 ‘뎀, 냉수’를 되뇌며 시작했던 샤워였는데 ‘땡스! 갓 앤 워터!’를 외치며 끝마치게 되다니! 그것도 긴장하느라 굳게 다문 입이 아닌, 없던 온기도 거뜬히 머금어버릴 것 같은 미소를 얻으면서!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다가 문득 생각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에 대해서. 분명 다시 고쳐졌다는 방송이 따로 나오진 않았으니 여전히 씻는 동안 온수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근데 어떻게 내 몸과 마음에 깃든 물에 대한 감상이 씻기 전후로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었을까, 문득 궁금하더라.

물의 온도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내 몸의 온도와 물에 대한 나의 감상이었다. 또한 차가운 물에 임하는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물은 내내 차가웠지만, 차가운 물 앞에서의 나의 태도는 끊임없이 변화했다.



차가운 물 앞에서 겁내던 마음을 고쳐 잡고 물 가운데 뛰어들기로 결심했고, 행동했다. 처음에는 추워서 떨었으나 추위를 이겨내고자 다짐하고 그저 받아들였다. 아무리 수도꼭지를 이리저리 돌려 따뜻한 물을 구해 보아도 찬물만 나오기에, 추위만을 묵상하던 생각의 흐름을 틀었다. 몸을 떨며 아침에는 뜨거운 물만이 정답이다는 생각을 고집하기보다, 차가운 물로 씻을 때의 좋은 점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 상황 속에서 감사할 것들을 그렇게 찾아 나섰다.


아침의 예상치 못한 차가운 물 덕택에, 결단력을, 행동력을, 용감함을, 사고력 등을 한 뼘씩 더 기를 수 있었다. 또한 그 덕택에 틀어진 생각의 흐름은 새로운 곳을 누빌 수 있는 물줄기로 뻗어 나아가, 사유의 지경을 한 폭 더 넓힐 수 있도록 도왔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의 감사를 찰나일지언정, 실천해 볼 수 있었다. 아침에 차가운 물로 씻는 것도 나름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새로이 배웠다.



그 결과 모닝 샤워할 때의 물 온도에 관한 더 많은 선택지를 얻었다. 감사한 모닝 찬물이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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