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정
글쓰기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끼는 top 3 안에 들어가는 것 중 하나는.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고 백지를 마주하기까지, 그 여정을 겪는 것이다. 글을 쓰기 직전, 해야 하는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이 어찌 그렇게 잔뜩 생각이 나는지.. 알 것 같지만 모르고 싶은 심정이다.
방금도 글을 쓰기 위해 앉았다가 갑자기 큰 소식이 밀려드는 바람에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 친구야 말로 정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분야 중 중요한 생리 현상의 한 부분인지라, 나가겠다고 하는 녀석을 잠시만 기다리라며 멈춰 세워 둘 수 없었다. 그에 따른 대가는 초등학교 때 변비라는 처방과 관장이라는 치료로 아주 철저히 치러 보았기에.
그 친구가 찾아오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도 글을 쓸 수 없는 이유를 찾아 핑계들을 대고자 작정하고 덤벼 든다는 것은. 가을이 기한의 끝자락에 걸쳐 있는 어느 날, 집게 하나를 들고 산에 있는 낙엽을 모조리 쓸어 담겠다는 것과 같다. 혹은 한 손에는 볼펜, 또 한 손에는 수정 테이프를 들고 파이(π )의 끝을 구해보겠다고 나서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습관을 들이는 게, 그토록 중요하다고 하는 것 같다.
그 습관 한 번 길러보겠다며 아침부터 글을 쓰고자 벼르고 있었다. 벼르고 또 벼른 마음으로 글을 써내야 하는데, 온갖 핑계와 함께 미루다가 벼루에 먹만 갈다 끝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마음으로 열심히 갈아내던 먹은 쓰이지도 못한 채 가슴에 맺혀, 오후의 식곤증을 동반한 울적함으로 화답을 건넸다. 곱게 갈린 먹으로 주야장천 글을 써야 할 터인데, 마음속에서 걱정과 스트레스를 벗 삼아 반성문만 주구장찰 쓰고 있었으니..
그렇게 써 내린 반성문들과 함께 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마음에 멍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멍이 든 곳에 오직 아픔과 슬픔만 있는 건 아니었다. 번번이 글 쓰는 습관을 들이는 데에 실패하며 마음에 무수한 멍이 생겼다는 건 그만큼 무수하게 다시 일어나 계획을 짜고 도전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계획을 적어 내린 종이가 영수증보다 못한 쪼가리로 남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설령, 멍든 자리에 다시 멍이 들 수 있고 어떤 아픔인지 알아서 더 두려울 수 있음에도 말이다.
마음에 새겨진 멍들은, 짙어질 대로 짙어져 더 이상 멍이 드는 것조차 모른다 하여도 결코 같은 멍이 아니다. 멍이 들기까지 위해 걸린 여정과 그 여정에 담긴 마음 가짐이 아주 조금일지언정 분명 한 걸음 한 걸음씩 더 나아갔기에 멍 위에 또 새로운 멍을 새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글을 쓰는 순간순간 속에서도 멍드는 일은 쉴 새 없이 벌어지곤 한다. 생각을 글자에 엮어 문장으로 내놓는 순간, 기대하고 뜻한 바에 못 미치는 문장을 마주하게 될 때의 좌절, 의도한 바와 전혀 다르게 전달된 상황들로부터 내동댕이 쳐질 때의 낙심이란.
전환시킬 마땅한 글자들이 생각나지 않을 땐, 곧바로 노트북을 덮고 그만 쓰고 싶다는 생각에 심지어 노트북을 내다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아 노트북을 붙드는 것은, 깜박이는 커서와 눈싸움을 하며 글을 쓰고 그렇게 다시 일어나 살아내는 그 까닭은, 사랑 외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다시 일어나 글을 쓰고, 사랑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매일이 내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