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들으면 좋을 곡 : by my side[HONNE]
주말의 바로 다음인 월요일 아침은 무엇보다 일어나는 것부터 힘겹기에, 나를 살살 달래 가며 글을 쓰기 위해 정말 좋아하는 곡들 중 하나이자 부드러운 곡인 “혼네(HONNE)씨의 by my side”를 택했다. 고심 끝에 택한 곡이었는데, 무척 졸린 상태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이건 아침보단 저녁, 그래도 꼭 아침에 듣고 싶다면 곧장 일과를 해내야 하는 요일의 아침이 아닌, 조금 더 침대 위에서 뭉그적거려도 되는 날의 아침에 듣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소견이지만..)
그렇다면 아침부터 침대 위에서 마냥 누워서 뒹굴고 싶은 자아와 당장 일어나 물을 마시던 세수를 하던 뭔가를 해야 한다는 자아의 갈등을 아주 조금이라도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곡을 들으며 가만히 노트북 앞에 앉아서 무엇을 쓸지 생각하는데, 나긋함에 자꾸 눈이 감기는 게..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로 옆에 있는 침대로 곧바로 다이빙하고 싶다. 이불 덮는 여유까진 바라지 않을 터이니.. (이럴 땐 또 일어나는 게 그렇게 쉽다. 기도하다가 잠에 들어서 30분 컷인 기도가 1시간 5분 기도가 되었다. 겨우겨우 일어났더니 왼쪽 다리 저림은 덤이었다.)
계속 하품을 하며 멍하니 노트북을 바라보다, 아무래도 이렇게 졸린 상태로 글을 쓰는 건 무리지 싶다 하며 이만 노트북을 덮을 결심을 내리기 직전, 하품을 하다 무심결에 왼편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이게 웬걸.
“실패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 베케트
“나는 천 번 실패한 것이 아니다. 전구는 천 개의 단계를 거친 발명품이었다.”
- 토마스 에디슨
어제 책을 읽고 감명받은 책장에 적어둔 문장들이 떡하니 놓여 있는 게 아닌가. 포스트잇에 적어서 붙여 둔 것이 아니라, 그냥 아예 책장 자체에 적혀 있었다. 이건 마음에만 둘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곳에 적어놓아야 한다며, 마커를 들고 짐짓 엄숙하게 써 내려가던 어제의 나 뒤에 서서 머리 한 대를 살짝의 힘을 담아 콩 때리고 싶다.
이 문장들 덕택에 침대를 이기고 의자 위에 앉아서 글을 마저 쓰고 있지만, 자고 싶다는 갈망이 무척 강한 터라 자고 싶은데 잘 수 없는 이 괴리가 참으로 괴롭기 그지없다.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내가 직접 만나볼 수는 없기에, 상상 속에서 나마 실현해 보았는데 뒤돌아 선 어제의 내 표정에는 나를 애꿎다며 꾸짖는 표정이 가득하다.
맞다. 물론 위의 문장들한테, 그리고 마음을 뜨겁게 하는 문장들을 만났다며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책장에 문장들을 적던 순간의 내게 잘못이 있진 않다. 오히려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글을 제대로 쓸 자신이 없어서, 월요일 아침이고 잠이 평소보다 부족하며 머리는 멍하고 졸리기 때문에 이 상태로 글 쓰는 건 내게 있어선 너무 어려운 과제를 넘어서 애초에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라고 핑계 대고 있었다. 글쓰기를 피해서 자꾸만 어디론가 도망치고자 했던 내 몸과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든든히 지탱해 준 고마운 명문장 멘토들이다.
오늘 내가 쓴 글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실패했다면 얼마나 실패했는가.
그건 나도 모른다.
마땅히 판단할 척도도 정해진 기준도 없다.
대체로 과정과 결과가 명료히 드러나는 과학에서도, 실패라는 것을 상정하지 않는데 하물며 글쓰기는 어떠하겠는가.
나는 이렇게 추구하고자 하는 글을 향한 단계를 또 하나 밟아 나아갔을 뿐이다.
실패했다면, 실패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실패도 기회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니
더 나은 실패를 해낼 다음 단계를 기대하며.
오늘도 감사히 잘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