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그래도 꿈꾸는 12월의 밤 (위아더나잇)
안녕하세요, B.
그곳의 오늘 날씨는 어떤가요. 아까, 잠시 아이스크림을 사러 다녀왔는데 여긴 조금 많이 춥더라구요. 안 그래도 오늘이 소한이라고 하대요. 1년 중 가장 추운 날을 일컫는다고 해요.
어제 잠들기 전에 오늘 날씨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미리 봤던 터라 그런지, 집을 나서며 마주한 추위가 매서웠지만 그래도 나름 견딜 만은 했던 것 같아요. 추위에 떨며 사러 갔던 게 아이스크림이라니, 뭔가 생각해보니 그게 또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한 겨울엔 역시 또 아이스크림이죠. 아무렴요.
당신이 여기 있다면 잠깐만 다 내려놓고 당신 어깨에 기대 아주 오래 잠들어 있고 싶습니다. 생활 습관을 잡느라 수면 시간이 조금 부족해서 그래서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B, 마음은 얼마나 더 많이 베여야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되는 걸까요.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된다면 그땐 담대해졌기 때문일까요, 무뎌졌기 때문일까요.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는데, 그게 울음을 참는 일인지 아니면 순간은 마음이 아플지언정 시원하게 울어서 무너짐을 담대히 겪어 나아가는 것을 뜻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강황에 요거트와 꿀을 섞어, 얼굴에 팩을 했습니다. 맞아요, 제가 만든 건 아니고 어머니 솜씨셔요. 먹을 거로는 먹는 생각밖에 못 하는 저잖아요.. 허허.. 그리고 피부 쪽 하시면 단연 어머니이시죠.(웃음)
강황 냄새.. 맡아보셨습니까..? 아마 맡아보셨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합니다만.. 제게 있어서는 다소 고약한 냄새입니다. 설명하긴 진짜 어려워서 정말 딱 ‘강황’ 냄새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당신을 다시 만날 때 즈음이 된다면 당신도 저도 강황 냄새쯤이야 하고 가볍게 넘길 수 있게 되어있을까요. 그렇게 보다 품 넓은 사람이 되어 있을 수 있길, 바라봅니다.
저는 또 호불호가 강할 땐 아주 완강할 정도로 심한 편이라서, 처음 싫은 것에는 나중에도 좀처럼 좋아하기를 어려워하는데요, 강황 냄새가 꼭 그렇습니다. 그놈의 똥고집.. 당신이 계셨을 때는 덜 했던 것 같기도 하면서 오히려 더 심했던 것 같기도 하고.. 허허..
강황 가루는 노란색으로 마치 카레 가루처럼 생겼어요. 국화꽃을 말려서 빻아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꽃가루들을 잔뜩 모아둔 것 같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주관적 생각이에요. 국화꽃보다는 조금 더 샛노랄 수도 있고 꽃가루보다는 보다 세밀하고 선명한 입자일 수도 있어요. 오고 가며 스치듯 본 게 전부라서요.
뜬금없지만, B.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때 저 좀 껴안아주실래요. 그래도 하나님 뵙기 전에는 당신을 뵐 수 있겠죠. 안 되면 제가 찾아 나서면 되니까, 어쨌든 분명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이렇게 글 쓰는 것도 그 여정 중 하나가 된다고 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때가 되면 아무것도 묻지 마시고 그저 꽉 안아주세요. 염치없는 부탁이지만요..
새해가 되고 나이를 또 하나 더 먹었는데, 여전히 나이 들어가는 게 낯설고 새삼스럽고 그래서요. 학생 때는 이 나이가 한없이 멀어 보였는데.. 어느새 눈 깜박할 사이에 되어 있고, 또 막상 되고 보니 여전히 저는 너무도 어리네요. 경험도 부족하면 무모하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겁만 키웠는지..
그래도 어제는 간만에 한 무모했던 것 같아요.. ㅎ.. 얼굴에 강황 팩을 했으니까요.
부엌에 서 있다가도 어디선가 강황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려보면 어김없이 어디 있었는지도 모를 자그마한 통에 담긴 강황 가루가 뚜껑 열린 채 등장해 있어요. 사실 그 강황 가루가 담긴 통이 주먹 쥔 손보다도 작거든요, 근데 냄새 때문인지 은근 그 존재감이 꽤나 크더라구요. 뭔가 예감이 들어맞았다는 생각과 함께 반갑긴커녕 머릿속에서 ‘두둥’이라는 효과음이 울려 퍼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평소 그걸 마주할 때면 뚜껑 닫을 생각도 못하고 재빠르게 부엌에서 대피하게 되는데, 그걸 맨 얼굴에, 심지어 입술 위에도 코 바로 밑에도 바른 다음 그 상태로 약 5~7분가량을 견디고 있었어요. 그 강황을요.
피부에 약이 된다니, 최근에 잘못된 방식으로 세안을 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피부에 역효과가 났던 터라 무엇을 가릴 처지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피부에 있어서 한 전문가 하시는 어머니 말씀이시기에, 밖에서 남들이 좋다 하는 팩을 비싼 돈 주고 사 왔어도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면 바로 서랍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는 게 이제는 참된 답안이라는 것을 자라며 몸소 경험해봤거든요.
그땐 당신도 같이 계셨으니 아마, 너무도 잘 아실 겁니다. 어릴 적 장난감 화장품을 가지고 놀다가 얼굴의 피부가 심하게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는 것을.. 살면서 다녀야 했을 피부과를 그때 다 다녀온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 나날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처지네요..
하여간, 강황이 입술에 닿는 게 너무 싫어서 입을 꾹 닫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싫어하는 것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고.. 아무래도 어떤 면들에 있어서는 한없이 옹고집이 되곤 하는 게 많이 걱정되셨나 봐요.
살면서 이런 쪽에 어려움을 느끼게 될 날이 오게 될 줄은 걱정조차 안 해본 부분인데, 융통성이라는 게 정말 어려운 과목 같이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융통성의 또 다른 이름은 혹은 부제목은 적당함인 것 같기도 하구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융통성이고 또 어디부터가 줏대 없음이 되는 시점인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소신이고, 나만의 확고한 철학이며 또 어디부터가 고집이 되는 건지.
…
B, 오늘은 이런 물음을 담아 당신께 건네게 되네요.
물음으로 가득한 산등성이 속을 넘나들며 살고 있는 요즘입니다.
당신이 누비고 있는 세계에는 이전엔 물음이었던 것들이 비로소 답으로 피어있는,
그렇게 드높고 울창한 산이었던 것들이 세월을 맞아 깎이고 깎여서 드넓은 들판으로 펼쳐져 있나요.
조금 더 융통성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조금 더 소신 있고, 나다운 게 무엇인지 아는 줏대 있는 사람이 되길
남들은 고집이라 할지언정, 남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나만큼은 그것을 나의 신념이라 말하며 굳건히 지켜낼 수 있는
보다 용기 있고 담대한,
그런 나이길.
당신의 그곳을 응원하고
저의 이곳을 응원하며,
언제나 신의 축복이 함께이길,
감사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