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날숨

나는 이런 삶을 좋아해요. 그리고,

당신을 좋아해요.

by 허수민



쓰며 들은 곡 : Canary (Yonezu Kenshi)





집에 설거지할 때 쓰는 수세미가 새 걸로 바꿔져 있었다. 평소 쓰던 것과는 다소 다른 형태였다. 원래는 무엇인가를 닦아 내기에 좋은, 그런, 적당히 거친 아크릴 실로 짜인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저 한 뭉텅이의 뭉툭한 스펀지였다.



불편했다. 낯설었고 어색했다. 그리고 다시 불편했다.



그때 잠깐, 건조대 위에 걸린 식빵 모양으로 짜인 수세미가 보였는데 왜인지 그건 쓰면 안 될 것 같더라. 그동안 엄마께서 그걸 두고 계속 새로운 걸 꺼내 쓰셨으니까. 모양도 뭔가 식빵이고, 어쩌면 선물 받으신 걸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래서 뭔가 아껴두고 싶은 걸 수도 있겠다 싶어서. 어쩌면 그냥 까먹으신 걸 수도 있지만. 여튼.



스펀지 수세미에 대한 불편함을 없앨 만한 대안책이 없었다. 사실 이렇게 놓고 생각해보니, 대안책을 찾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미 포장지에서 벗어난 것이었고, 하물며 상대는 설거지에 사용되는 수세미였다. 그렇다 하여 설거지가 삶 속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생활 속에서 건강과 위생에 직결된 필수적이며 몹시 중요한 작업 중 하나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저곳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때가 있다 보니, 설거지와 같이 직접적으로 몸을 움직여하는 활동에 있어서 만큼은 조금이라도 둥글게 반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의 생활에 있어서 만큼은 다소 무던하게 반응하고 싶은 부분 중 하나인, 바로 그런 설거지였는데, 그러던 중에 만나게 된 게, 저 스펀지 수세미인 것이었다. 예기치 못한 낯섦으로 인해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멍 때리며 해야 할 작업에서 감각들이 무작위적으로 깨어난 것이었다.



싱크대에 위에 턱 하니 놓여 뭉툭한 생김새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듯 보였지만, 한없이 낯설어 평평한 루틴 속에 불쑥 솟아난 돌부리 같았다. 사용하는 동안, 손길이 차이는 곳곳 불편함을 자연스레 동반시키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더라.



익숙하지 않은 건 의문 또한 함께 유발하는 것 같다.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것, 그 자체가 곧 의문인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왜, 이 수세미에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 애초에 이건 불편함이란 감정이 맞는 걸까.

나는 왜, 익숙하지 않다 라는 느낌을 불편함이란 감정과 관련지어 정의 내렸을까.

나는 왜, 여기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생각한 걸까.



솟아난 의문 앞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나는 그 의문을 문제라 여길 수도 있고 혹은 호기심과 함께 탐구하고 알아봐야 할 하나의 학문과도 같이 여기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오늘은, 후자의 태도로 인해 이 글을 쓰러 오게 된 것 같다.

나는 모르니까, 그게 문제인지도 학문인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섣불리 무엇도 무엇이라 결정 내릴 수 없으니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정하려면, 무엇인지 판단 내리려면, 먼저 알아야 하니까. 일단 알아보자고 생각해 본 것이다.



즉,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렇기에 배워야 한다.라는 태도를 매번 되새기고 싶다.



하지만, 거기에 정답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내가 나는 이게 좀 더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라는 것.



맞고 틀리고를 논하는 생이기보다, 난 이게 좋고 넌 뭐가 좋아? 라고 묻는 삶.

너 그거 틀렸어. 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너는 그게 좋아? 나는 이게 좋더라. 라고 알아가는 삶.

더 나아가 너는 그게 왜 좋아? 나는 이게 이래서 좋더라구. 라고 나누는 삶.



나는 이런 삶이 좋다.



왜냐면 여러 생각들은 때에 따라 맞는 것이 될 수도 틀린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내 마음만큼은 왔다 갔다 할지언정 그 순간, 그 당시만큼은 적어도 나라는 당사자에게 있어서 만큼은 너무도 분명하게 좋음이라는 감정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 순간만큼은 좋음은 내 마음 안에서 너무도 분명한 정답이기에. 그래서 좋다, 이런 삶이.



하지만 좋은 것과는 별개로, 나의 굳어진 습관들은 좀처럼 내가 좋아하는 삶을 일상으로 이뤄내진 못하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영영 그러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주 말해주고 싶다, 내가 내게. 서로의 좋음을 함께 나누는 삶, 이를 몸과 마음으로 있는 힘껏 살아내는 사람이자고, 마치 그런 삶이 습관이고 일상인 것처럼, 하나도 힘들이지 않고 그렇게.




물론, 처음에는 힘이 들 것이다. 적지도 않고 아주 많이. 한두 번의 손짓으로 살아오던 방식을, 그 세월의 물결을 단번에 바꾸기란 쉽지 않을 수도 있을 터이니. 그러나 차근차근 힘을 내다보면, 어느새 힘듦이 또 하나의 힘이 되고, 그렇게 쌓인 힘들이 또 새로운 삶의 물길을 틀어내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힘이 드는 그 순간부터 이미 꿈꾸는 그 물길로 틀어지고 있는 중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