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날숨

‘설핏’의 말꽃말은

by 허수민






*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I won't give up [ Jason Mraz ]





설핏

어여쁜 순 우리말인 듯하다.

뭐랄까, ‘설핏’이란 단어가 내게는 마치 봉오리 져 있던 꽃이 아주 부드럽고 여리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순간적으로 피어나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혹은 그런 순간을 닮은 웃음이 툭 터져 나와 조심스레 피어나는 듯하더니 이내 활짝 만개하는 장면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설핏’이란 단어와 앞서 말한 장면들이 같은 문장 내에 함께 열거되어 있는 순간을 자주 만나보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설핏’이란 단어가 마치 봄날을 닮았고, 세상 어딘가에 ‘설핏’이란 꽃말 혹은 이름을 지닌 꽃이 하나쯤 피어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여튼 내겐 그렇다.

단어가 지니는 어감, 이는 때로 향기와도 같은 것 같다.

좋은 기억 속에 함께 머물러 있는 향기를 거닐다 우연히 맡게 될 때면 순식간에 있는 줄도 몰랐던 향기 속에 스며 있는 기억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삶을 고군분투해낼 때에 주로 지니고 있었던 향 혹은 로션 등을 바를 때에도, 새삼스럽게 그때의 기억이 지나가며, 지나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새삼스러워하며 낯선 익숙함을 마주하게 된다.

또 이렇게 놓고 보니, 요즘 들어 글을 쓰며 자주 마주하게 되는 말이 ‘낯선 익숙함’이다. 나란히 나열된 두 단어를 하나의 단어로 묶어서 치환할 수 있을까. 언뜻 보기에는 모순적이라, 한데 묶기엔 서로 교접하는 부분이 없어 보여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종종 내게 불어 닥쳐오는 낯설고도 익숙함이란 느낌은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단어로서 아직 존재하지 않고 있을 뿐, 내 마음속에는 명백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있는 단어에서 뒤적거릴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버리면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여하튼. 더 알아가 봐야 할 일이다.

뭔가 이렇게 또 쓰다 보니, 글을 쓰는 작업은 내게 있어 어떤 측면에서는, 나라는 사람의 토양을 파내려 가는 작업 같다. 일전에도 이런 내용에 관해 쓴 적이 있는데, 디깅 작업(digging writing)이라고. 알고 봤더니 음악 관련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좋은 음악이나 옷 혹은 상품 등을 찾거나 발굴해서 수집하고 구매하는 등의 방식들을 일컬을 때에 있어 다양하게 다뤄지고 있었더라. 처음에 이 용어를 정해 놓고 너무 잘 작명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가, 이미 널리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머쓱했다.
하지만 다른 분야 이더라도 파내려 가는 땅만 다를 뿐(어쩌면 이 또한 비슷한 것 같기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한다는 게, 뭔가 친숙하고 친근감이 느껴져서, 예술이란 아니 어쩌면 더 나아가 생이란 한 동네에 모여 사는 이웃 주민들 같달까. 아무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게 맞다거나 맞아야 한다는 건 또 아니고. 근데 또 안 될 건 뭔가. 아무렴.

그래서 오늘의 디깅 글쓰기를 이야기로 비추어보자면,

길을 걷다가 ‘설핏’이란 팻말을 옆에 지니고 있는 낯선 꽃을 하나 발견했는데, 가만히 보다 보니 평소 이름을 몰랐을 뿐 거닐며 은근 자주 봤던 꽃이었던 것이다. 또 생각하다 보니, ‘설핏’이란 꽃을 주로 봄날에 봤던 것 같기도 하고. 독립 서점에 있던 사진첩 속에 이제 막 피어나듯 웃음꽃을 터트린 아이의 얼굴 옆에 ‘설핏’이란 꽃이 함께 놓여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꽃의 뜻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1) 해의 밝은 빛이 약해진 모양
2) 잠깐 나타나거나 떠오르는 모양
3) 풋잠이나 얕은 잠에 빠져든 모양
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게 아닌가.

미처 알지 못했던 꽃말을 바라보다 보니, 익숙한 모습에서 또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고.
알 수록 깊은 친구인 것 같아, 이 친구의 뿌리가 궁금해 그 옆에 둘러져 있는 흙을 살살 파고 내려가다 보니 이런저런 냄새도 맡게 되고 또 그에 따라 여러 기억들도 마주하게 되고, 있는 줄 몰랐던 작은 구덩이 속에서 다람쥐가 숨겨 놓고 깜빡한 도토리에서 싹이 나 있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하고, 뭐가 더 있을까 싶어 그 옆을 또 파봤는데 뭔가 뼈다귀 모양으로 장난감처럼 생긴 게 있길래 꺼내 보다가 저 멀리 내가 쥔 것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진돗개 한 마리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손에 쥐어져 있는 뼈다귀를 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 친구의 개껌이구나 싶어 울기 전에 어서 내려놓자 싶어서 다독이는 표정으로 개 친구와 시선을 맞추며 손으로는 서둘러 개껌을 도로 묻었지만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개 친구와 어색한 시선을 교환하다가 헤집었던 땅 곳곳을 다시 잘 덮어 주고는 개 친구에게 설핏 한 번 웃어주고, ‘설핏’이란 꽃에게도 설핏 한 번 웃고는 이만 걸음을 옮기려는데 오른쪽 발치 아래에 흰색 물체가 있는 게 아닌가.

알고 봤더니 아까 그 진돗개였다. 아까는 한없이 축 늘어져 있던 꼬리가 이제는 어찌나 열심히 좌우로 흔들리던지, 짜식. 나는 개 친구에서 친구로, 그 친구에게 있어서는 사람 친구에서 친구로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 경계란 건, 흙을 파내며 그 옆으로 부드럽게 흘러져 내리다 다시 쌓이던 자리에서 발견된, 그 친구의 숨겨둔 보물을 함께 발견하게 되었을 때 이미 사라져 있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겠다. 다음번 산책 때에 우연찮게라도 또 만날 수 있길 바라며.

‘설핏’의 말꽃말은 낯선 익숙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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