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날숨

tenthousand-joke들

사월, 일일

by 허수민

[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Creep (Radiohead) ]




1.

생과 삶, 동체와 부동체.

사는 동시에 죽는 것.

태어남이 곧 죽으러 가는 것.

살려한다는 것은 죽고자 하는 것이다.

죽자 한다는 것은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때때로 웃으며 눈물 흘리고, 눈물 흘리며 웃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뭐든 누구든, 일단 숨 쉬고 있길, 숨을 쉬어주길



2.

오해를 받을 때마다 죄어들어오는 가슴은 멈출 새가 없다. 죽고 싶다는 바람은 이 마음의 죄어듬이 멎었으면 좋겠다는 뜻인 걸까. 쓰지 않으면 결국 죽음뿐이라는 것을 안다. 표현되지 못한 채 맺혀 있는 말들은 결국 나를 좀먹고 파고들어가 나락의 나락으로 떨어져 앉힐 테니까.

살려한다면, 죽고 싶다고 글을 써야 한다. 그렇게 풀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고 싶다고 말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게 글쓰기로서 숙명인 것만 같다. 역설의 역설과 모순의 모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한 자락의 틈바구니도 허락되지 않은.


비방받고 비난받고 오해 받음에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을 수 없다. 없고 싶어 말을 길게 늘여 부정해보려 해도, 결국 답은 나 또한 커다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발설하지 않은 죄. 나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않은 죄. 단죄의 처형은 오해다. 내리긋는 발길질에 숨을 쉴 수 없다고 한들 그건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 어느 누군가는 그 발길질을 하기까지가 그런 숨 쉴 수 없는 고통이었을 테니. 내 잘못 또한 한참인 것이다.



3.

기대할 건 없다. 다만 살아갈 뿐이다. 살아가다 보면, 기대 없이 기대하고픈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나의 기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타인을 향한 기대는 관계를 망친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기대를 내 안으로 잘 접어 두어야 한다. 이해받고 싶다면, 열심히 나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걸까.




4.

한 사람에 대한 생각을 향해 덜 걸은 것도 오해가 되고, 너무 걸어버린 것도 오해가 된다. 적정선이라는 것. 우리는 그게 참 매번 이토록 어려워서 이리도 서로를 할퀴는가. 대체 누가 사랑은 장밋빛이라 했는가. 장미가 그 아름다움이 핏기의 또 다른 말이었던가. 그토록 오래 이 사랑에 대해 침묵했기에 우리는 아픔에도 서로가 아픈 줄 모르고 탓하기만 하던가. 말하지 않아도 아픔을 알 수는 없는 것일 테니까. 상대가 수천번 우는 것을 보아도 결국 기억되는 건 우리 각 스스로의 울음뿐인 건가. 나는 모르겠다. 나는 둘 다의 울음이 항상 선명한데. 그래서 아프고 자주 미안한데. 그래도 너무 사랑할 뿐인데.



5.

누가 심장에 칼을 꽂아 숨을 멈춰 주었으면 좋겠다. 저며 오는 가슴이 그만 좀 멈췄으면 좋겠다. 마음이 괴로울 때면, 매 분 매초가 영겁 같아서. 내가 내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어떤 고통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고통보다는 덜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고통 또한 잠시 눈 감았다 뜨면 한 번 울고 나면 잊히는 고통일 터였다. 사랑으로부터 밀려나서. 항상 기억하고 싶은 단 하나의 것은 사랑일 뿐이다. 사랑 안에 수많의 것이 담겨 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하는 랑이며, 그렇기에 수십 번의 수백 번의 다툼 속에서도 변함없이 사랑을 고하련다.



6.

아파도 밉지 않고, 슬퍼도 화가 나지 않는다.

아픈 건 아픈 거고, 슬픈 건 슬픈 거다.

그리고

사랑하는 건 사랑하는 거다,

아프고 슬프고를 다 떠나서

사랑은 사랑인 것이다.


감정을 연결 짓는 것은 누구에게 달린 일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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