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편
그때 나 말고도 몇몇 사람들이 이따금 강가 옆 경사진 풀밭에서 앉았다 가곤 했는데,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거기서 람을 처음 봤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 람의 얼굴을 알게 된 건진 모르겠다. 워낙 하나에 집중하면 거기에 꽂혀서 주변을 좀체 잘 둘러보지 못하는 나였기에, 그 당시 강가에 가면 내 눈에는 오로지 돌멩이와 강이었다. 낮이건 밤이건 그곳에 있었는지도 모를 사람들은 죄다 실루엣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람을 알게 되었다. 조약돌을 찾느라 겨울의 초입임에도 삐죽삐죽 땀을 흘리다가 문득 평소보다 빠르게 저문 해에 불현듯 깨어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람과 마주쳤다. 정확히 말하자면 람의 실루엣과 마주쳤다. 해가 이미 까무룩 저문 다음이었기에 누군가 흑백 바탕에 회색 색연필로 윤곽선만 따서 그려 놓은 듯 어렴풋이 람을 볼 수 있었다. 람은 바로 내 뒤에 있는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에 앉아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줘봐.” 람이 말했다. 당시 상황 때문에 그렇게 느낀 건지 모르겠지만, 꼭 흐린 회색선으로 그려진 듯한 람 자신의 실루엣과 닮은 목소리였다.
그게 람에게서 들은 첫마디였다. 그럼 그 순간이 첫 만남이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아니었던 게, 왠지 람이 익숙했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먼저 람은 거기에 앉아 있었고 오가며 스치듯 마주쳤을 테지만, 워낙 완벽하게 물수제비 뜨는 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터라 람을 보고서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늘 강가에서 혼자 돌을 던지며 놀았지만, 주변에 인기척이 있다는 것을 느꼈기에 큰 두려움 없이 마음 편히 놀았던 걸까 잠깐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 한마디를 하곤 람은 내 손에서 돌멩이를 가져가더니 강가를 향해 힘껏 던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아홉! 우와!” 매번 한 번 밖에 못 넘기던 나였기에, 아홉 번이나 수면 위에서 튀기다가 잠겨 들어가는 돌멩이가 마냥 신기하게 보였다. “이야, 어떻게 한 거야? 대박이다!”
옆에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 나를 보며 람은 시큰둥하게 “그냥.”이라고 답하곤 다시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진짜 대단하다. 저거.” 나는 그 옆에 앉아서 여전히 흥분된 상태로 계속해서 람을 칭찬했다.
람은 고개 숙인 채로 바래진 풀이파리 들을 손으로 슥슥 훑다가, “원래는 열 번도 넘게 튀기는데…” 끝을 흐리며 말했다.
“아니야. 아홉 번도 정말 대단한 거지. 내가 던진 돌은 매번 두 번도 못 넘기고 물에 잠기고 마는 걸.”
“……”
“진짜라니까. 세 번을 넘기는 것도 진짜 엄청난 거야. 너, 대단해. 아주.”
“그런가…”
비탈길 위에 드문드문 세워져 있는 가로등으로부터 등지고 앉아 있던 우리였기에, 여전히 람의 얼굴이 선명히 보이지 않았지만, 흐릿하게 람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가르쳐 줘. 앞으로 스승님으로 모실게. 내 스승님 해주라. 어? 스승님. 아니다. 사부님 할래? 사부님이 더 멋진가? 뭐든. 말만 해 아주.” 어디서 또 본 건 있어가지고 나는 벌떡 일어나 람의 옆얼굴을 쳐다보며 두 손으로 합장하듯 자세를 취했다.
고개 숙인 채로 있던 람은 내 말에 나를 힐끔 쳐다보곤 “그게 뭐야.. 이상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람의 입꼬리는 여전히 올라가 있었다.
“이상하긴! 내가 영화 같은 데서 봤는데, 원래 스승님이나 사부님한테 막 이렇게 예의를 갖춰야 하는 거라 했어!” 나는 주먹 쥔 두 손을 마주 붙여 보기도 하고 합장을 하기도 하며 소림사 무술 영화 같은 곳에서 본 자세들을 따라 했다.
그런 나를 람은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강 건너편에 있는 가로등에서 비춰오는 어스름한 불빛에 람의 희미한 웃음이 배어 있는 듯했다. 그 웃음을 보니 왜인지 좀 안심이 되어 함께 웃음을 터트리며 람의 옆에 앉았다. 나도 모르게 람이 좀 웃었으면 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람을 마주한 그 순간, 이대로 해가 완전히 지고 밤이 찾아오면 금방이라도 람이 어둑해진 풍경 너머로 흩어질 것만 같았다. 물론 대단하다고 스승님이 되어 달라고 말한 것에 있어선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진심이었다.
=>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