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날숨

다름이기 전에 나름

by 허수민

- 함께 들으면 좋을 플레이리스트 : https://www.youtube.com/watch?v=dWZznGbsLbE



근래 나에 대해 새로 알게 된 부분이 있다. 내가 과거에 파란색 계통의 색상들을 좋아했었고 여전히 모든 색상들 중에 파란색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파란색에 별 다른 기억이나 추억 등이 얽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좋은 것. 그중에 하나가 파란 계열의 색상이었다.


오랜만에 들르게 된 갤러리 겸 카페인 곳에 갔더니, 카페 내 갤러리에 새로운 작품들이 들어와 있었다. 새로 바뀐 그림들을 둘러보던 나는 한 벽면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벽면에는 두 개의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왼쪽에는 여러 파란색 계열의 물감이 칠해진 그림이, 오른쪽에는 여러 보라색 계열의 물감이 칠해진 그림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가만히 서서 멍하니 그림을 보다가, 급기야 뒤에 놓인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 한동안 그림들을 바라봤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생각했다. 파랑은 파랑 이외의 다른 무엇이기 전에 그저 파랑, 파란 빛깔, 무엇을 상징하기 이전에 본연의 색 그 자체이며, 있는 그대로 참 아름다운 색상이라는 것을.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파란색은 남자들만 좋아하는 색이 아니라 그저 파란색으로, 파랑 그 자체로 존재하며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 보라색의 아름다움 또한 물론이거니와 -남녀노소 할 거 없이 누구나 파란색을 좋아할 수 있으며, 파란색 계열을 내가 가장 좋아했었고 여전히 정말 많이 좋아한다는 것을. 파랑과 보라 계열의 색상들이 서로 잘 어울린다는 것 또한.


열아홉 살을 거쳐 스무 살을 지나면서 어느샌가 모르는 사이 나는 내가 파란 계통의 색상들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를 멀리해 왔던 것 같다. 그때 당시 한참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갖고 있던 터라, 나는 더더욱 내가 좋아하는 파랑을 멀리했던 것 같다. 어릴 적 누구에게 선가 파란색은 남자애들이나 좋아하는 색인데 왜 그걸 가장 좋아하냐고, 특이하다고 들었던 기억이 문득 덮쳐 왔던 것 같다.

그러다 평소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사람인 이지은(아이유) 씨가 하늘색이 잘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며, 맞아, 여자도 얼마든지 파란색 계열이 잘 어울릴 수 있었지. 그리고 파란색 계열이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얼마든지 당당하게 말해도 되는 거였지. 파랑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저 파랑이며 그걸 무엇으로 정의하고 의미 짓고 하는 것은 저마다의 나름이었지. 그래, 그건 다름이기 전에 나름이었어. 하고 생각하게 되며 내 안의 시야가 크게 트였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파란 계열의 물감이 칠해진 이 그림을 봤을 때, 나는 다른 편견이나 두려움이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 그 다양한 파랑들을 바라봐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입시를 마치고 나서, 가고 싶은 혹은 가야 할 대학과 학과를 찾기 위해 나를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란 사람을 알기 위해 내가 누구인가 살펴보기 시작했을 때, 정작 나는 내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꽤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때에도 내 안의 나는 내게, 나는 파랑을 파란 계열의 색상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열렬히 외치고 있었겠지. 그렇기에, 그래 나 파란 계열의 색상을 정말 많이 좋아하지라고 그림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을 때 별안간 마음에 따스한 눈물이 차올랐던 것 같다. 비로소 내가 과거에 부정했던 나의 일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었다는 게, 내 안의 내게도 전해졌던 것이겠지.

왜 나는 그동안 파란 계열의 색상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잣대가 두려워 휘청거리며 도망치곤 했는지… 파랑 그거 좋아한다고 내가 다른 나가 되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저 파란 계열의 색상을 좋아하는 나일뿐인데. 내가 나임은 변함이 없는데, 말이다.


또한 한 벽면에 나란히 놓인 파랑과 보라 계열의 색상들 그들의 조화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가까이 자리하고 그들이 잘 어울려서 깜짝 놀랐다.

어릴 적 학교의 미술 교과서에서 색상들이 서로 보색인 경우, 즉 색상표에서 서로 대척점에 놓인 색상 들일수록, 같이 사용했을 때의 어울림이 좋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이어서 생각했다. 역으로 색상표 상에서 가까이 놓여 있는 색깔들끼리는 잘 어울리지 않겠구나라고. 다시 말해, 서로 반대되는 색상들의 조화가 좋으니 역으로 서로 반대되지 않는 가까이 붙어 있는 색상끼리는 조화롭지 못할 것이다라는 나만의 그릇된 이분법적인 사고의 벽을 내 안에 세워 두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비교적 가까운 이웃 사이인 파란색과 보라색도 잘 어울리지 않을 줄 알았지만 같이 놓인 두 색상이 참으로 잘 어울려서 놀랐던 것이었다.

또한 다양한 층위의 파랑들도, 보라들도 저마다 있는 그대로 참으로 아름다웠다.


각자의 아름다움 그리고 나란히 놓인 두 그림의 어울림을 보는데 어쩐지 나는 조금 울고 싶어 졌던 것 같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오래 색깔들을, 나를, 세상 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내 선입견과 세상의 편견대로 바라봐 왔던 걸까. 내 안에 세운 잣대로 나는 얼마나 많은 자연물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곤 했을까. 그렇게 얼마나 자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지런히 외면하고 부정하며 살아왔던 걸까 해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 나다움인지 차근차근 깨우쳐 가는 이 시간들이 이 지금들이 참 좋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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