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쓰지만, 책 출간은 고사하고 매일 꼬박꼬박 글쓰기로 나 자신과 약속한 것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허덕이곤 하는데, 그런 나지만 이런 내겐 간혹 거만하거나 오만 해지는 때가 때때로 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자각하게 될 때면 나는 좀 두려운 마음이 들곤 한다. 나의 거만과 오만으로 인해 또다시 내 주위 사람들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서, 나는 나 자신에게 좀 강박적이기도 하고 각박한 사람이 되곤 한다. 다시 겸손해져야 한다면서, 나는 나를 못살게 구는 것이다.
나는 내 안의 겸손하지 못한 마음을 발견할 때면, 그 또한 나라는 사실을 제쳐두고 그런 나도 나라고 인정해주기 이전에 어떻게든 없애려고 내게 잔혹하게 굴곤 했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겸손해져야 한다는 말이 결코 꼭 나쁜 건 아니겠지만, 연필도 함부로 사용하면 흉기가 될 수 있듯이, 나는 그 말을 나 자신에게 흉기처럼 휘두르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나 자신이 내게 겸손해져야 한다고 말해도 단번에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그렇기에 나는 그런 내 마음을 어떠한 기력도 낼 수 없을 만큼 자주 난도질했다. 겸손해져야 해. 왜 겸손해하지 않아. 그런 일을 또 겪고 싶어? 하면서. 그건 마치, 내가 내게 글자도 가르쳐주지 않고서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어 보라고, 왜 받아 적지 못하냐고 다그치며 매질하는 것과도 같았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나를 그런 방식으로 대해 오곤 했다. 그러다, 겸손해져야 한다고 내게 말하는 것 이외에 내 안의 거만과 오만을 빠르게 몰아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건 나 자신에게 되뇌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 무엇도 내가 이룬 게 없다 하면서.
나는 물론 그저 나지만, 이런 나라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귀해. 그리고 모두 다 내가 이룬 건 아닐 테지만, 그래도 나도 노력한 부분이 있고 잘한 게 있어라고 외치는 내 안의 나를, 나는 싹 다 무시하거나 어떤 때에는 죄인 취급했고 내 안에서 모조리 제거해버리기도 했다. 물론 그 제거 작업은 단순히 삭제 버튼을 누른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소 잔혹했다.
나는 여태껏 그게 맞는 줄 알았다. 스스로에게 겸손해져라는 말을 할 때에 좋게 사용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경우로,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그 말을 건넬 때에 덕담이나 배움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해 휘두르며 상처를 내는 흉기로 사용해 왔기에, 그 말 대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을 찾았으니까, 이젠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제 흉기가 아니라 나의 거만과 오만에 대한 약을 찾은 거라고 생각했다.
앞서 말한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그래도 글자는 가르쳐 주고받아 쓰기를 시킨 다음 틀렸다고 오답 체크를 한 후 처벌한 거니까. 그리고 내가 틀렸다고 말한 것을 맞다고 말한 나를 올바르게 고치기 위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린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겸손이란 태도의 학문에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 줄 알았다. 순간순간 내 마음에 찾아드는 오만과 거만이 바이러스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뇌는 것이 내게 알맞은 백신이자 해독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 그건 표백제였던 것이다. 뒤늦게 알았다. 내가 약이라고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뇌었던 그 말들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그 무엇도 내가 해낸 게 아니다는 말들이, 어쩌면 되려 나를 지우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끊임없이 나를 부정하는 말이었음을.
여느 때처럼 거만과 오만이 내 안에 퍼지려고 했을 때, 문득 아침에 봤던 문장이 떠올랐다.
“모든 아름다운 예술, 모든 위대한 예술의 핵심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모든 것이 그러하다고 감히 섣불리 단정할 순 없겠지만, 나는 아직 나의 예술이 무엇인지 아주아주 희미한 가닥조차 헤아리지 못한 사람이기에, 근데 또 한편으로 욕심은 많아서 아름답고 위대한 예술을 아주 언젠가라도 하게 되길 바라며 감사에 대해 곱씹어 보곤 하다가 그대로 잊혔는데,
다시 그 순간 ‘감사’가 내 안의 화두가 되어 떠오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을 하기 이전에 지금 이 순간 감사할 것에 대해 생각해보려 했는데, 그 순간 거만과 오만이, 내 안의 나가 제발 내 안에서 나가 달라고 그토록 애걸했을 때에 오히려 짙어지던 것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마음에는 어떤 높아짐이나 부풀림도 없이 그저 나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존중과 인정 그리고 상황이나 사람들 등 나 이외의 그 모든 덕택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따스한 인식과 존중 그리고 감사만이 오롯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나의 소견이지만,) 겸손해진다는 건 감사하며 살아가는 일인 걸까 하고 생각이 되었다.
나중에 겸손이란 삶의 태도의 학문을 갈고닦는 데에 더 좋은 방법이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내가 이전에 내게 하던 방식보다 더 좋은 방법을 만나게 된 것 같아서, 물론 감사에 관해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수두룩하지만, 내 안의 나와 내 곁에 있는 인연들을 나의 오만과 거만으로부터 좀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하고 좋고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 숨 :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ㅠㅠㅠ 읽어 주심에, 두 손 모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