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들으면 좋을 플레이리스트 : https://www.youtube.com/watch?v=3HUy4UmsoC0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한다. 유년의 나날 속 아꼈던 것을 잃었던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으로 이제 막 올라가게 되었을 때다. 그때 기억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큰 충격이 될 만한 것도 아닌데, 여전히 그때 느꼈던 기분이 선명히 남아 있는 걸 보면 적어도 내게 있어선 꽤 큰 슬픔에 해당했던 건가 보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에, 태어나 여태껏 살던 동네인 여수를 떠나 의정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버지 회사 발령으로 인함이었는데, 완전히 이사하기 전에 겨울 방학 때 잠시 의정부에 집을 알아보러 생애 처음으로 오랫동안 여수를 떠나 있게 되었다. 길어야 한 달이었으려나.
그때의 난 아직 타지로 간다는 게 어떤 건지 몰랐던 것 같다. 심지어 조금 웃긴 건, 그게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스물셋의 끝무렵, 스물넷을 앞둔 요즘이 돼서야 그 경험 속 어린 시절의 나를 비로소 더듬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놀이공원이 비교적 가까이에 있는 지역으로 간다는 게, 그곳의 겨울은 여수의 겨울과 달리 많은 눈들이 내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땅 위로 소복이 쌓인다는 것만으로 마냥 설레서 (당시 여수에 눈이 내려 땅에 닿는 바로 그 순간 녹아 사라졌기에, 눈이 내려서 쌓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따금 만나 뵌 이웃 어른들께서 내게 이사 가는 게 무섭지 않냐고 물으시면, 나는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설렌다고 좋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의정부에서 집을 알아보고 온 이후, 다시 돌아온 여수의 교회는 어딘가 이전과 달랐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부모님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다닌 교회였다. 그 교회에서 같이 다니던 친구들도 어렸을 때부터 함께 커온 언니 오빠 친구 동생들이었고. 동네에 있는, 작지만 곳곳에 온정이 넘치는 교회였다. 큰 교회에 비해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 아이들의 수도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그중에서도 예배가 끝나도 교회에 남아 좀 더 놀다 갇던 친구들이 있었다. 나도, 친브로도 그랬다.
대예배당 아래 자그마한 예배당에 티비가 들어선 이후로 더더욱 그랬다. 다들 예배가 끝나면, 그곳으로 모여 일요일에 방영하는 ‘서프라이즈’를 함께 보곤 했다. 어느 여름날, 낭랑 특집이라도 하는 날엔, 다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얇은 담요들을 손에 쥐고 당장이라도 눈을 가릴 준비를 하면서도 티비에 눈을 떼지 못하곤 했었다.
열심히 시청하다가 배가 고파질 즈음 때맞춰 방송도 끝났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였다. 밥 먹고 난 뒤, 교회 식당에서 숟가락과 밥그릇을 챙겨 교회 단지 내에 뒤편에 있는 작은 화단으로 가서 곳곳에 나 있는 잡초를 뽑아 돌 위에 두고 돌로 찧은 다음 그릇에 옮겨 담아 물을 조금 섞어 약초랍시고 이것저것 만들고 노는 게, 그래서 그걸로 서로 약이랍시고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하던 그 시간들이 내게 참 귀한 것이었다는 걸.
본격적으로 이사 준비를 하러 다시 여수에 돌아온 그때 더 이상 예배 후에 모이지 않고 곧바로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는 친구들을 허망하게 바라보며 깨달았다. 그러나 그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들이 되기도 한다는 것 또한. 다시 그 이전으로 돌이키기 위해 꽤나 마음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변함없었다. 변화는 돌이켜지지 않았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첫 상실이었던 것 같다. 보통 잃은 경험이라 하면 사물이나 사람을 생각하곤 하며, 기껏해야 상황인 내가 다소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잘 사는 편이라기 보단 유년의 가난을 경험한 부모님 슬하에서 주어진 그대로에 대한 만족을 자주 듣고 자랐기 때문인 것 같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무언가 없다고 불평을 하면, 곧바로 부모님의 유년에 대해 듣게 되곤 했다.
그렇게 여수를 뒤로 하고 올라간 의정부에서의 첫해는, 그곳에서 보냈던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의 기억은 다소 흐릿하다. 하나 남아 있는 게 있다면,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셨는데, 머리의 많은 부분이 대머리셨고 이따금 혼내실 때에 쓰시던 방식이 꽤나 짓궂게 매서우셨다는 것 정도. 기억 속의 나는 그분께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바른 분이셨고 좋은 선생님이셨다는 것, 이 감상만큼은 선연히 남아있다.
어쩌면 변하지 않음, 한결같음이라는 건 나날이 새롭게 변함으로써 비로소 지켜낼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은 애초에 성립이 될 수 없는 걸지도 모른다. 영원은 실재의 유무에 관한 맥락에서 논의될 게 아니라, 가능성과 선택의 영역에 속한 것은 아닐까,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영원은 이미 존재해 있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그 영원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영혼의 도화지 위에 우리만의 영원을 하루하루 그려가는 게 아닐까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흐르는 세월 속 변하지 않는 것들은 없을 수도 있지만, 매일매일 변하는 그 속도만큼 우리가 함께 따라 걷는다면, 결과적으로 한결같은 것이라고. 그렇기에 한결같다는 건, 매일매일의 숨 가쁜 노력이 있기에 비로소 가능한 거란 것임을. 계속해서 들어오는 세월, 세상의 물살들 틈에서 그럼에도 나로 있기 위한 노력,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새롭게 변하는 사람들을 그때그때 있는 그대로의 그들로 바라보기 위해 시선을 깨끗이 닦는 것 등.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란 한 개인의 소박한 생각에 불과하다.
* 사진 출처(Insta) : @naok_a
- 허수민 : 늦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읽어 주심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