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날숨

다리 수술

비구이형성증

by 허수민


-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 Lupe Sinsonte - Above Light ]




삐걱거리며 걷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그럴수록 되려 더더욱 어긋나는 박자로 걷고 있는 걸음걸이의 내가 느껴질 때가 있었다. 다리 통증에 오래 무심했다. 워낙 만성이었으니까. 어릴 적 찾아갔던 병원에서도 별 이상이 없다고 했었고. 그러다 예삿일이 아님을 알게 됐던 건, 분명 양 발을 번갈아 디디며 달리고 있는데, 오른쪽 다리에 자극이 거의 오지 않음을 깨닫던 어느 날이었다. 왼쪽 다리에서는 열감이 느껴지는데, 오른쪽은 그렇지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뭔가 균형이 어그러져 있구나 하고. 처음에는 골반 교정이 필요한 거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병원에 갔다.


하지만, 동네 병원을 거쳐 각종 대학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다 알게 된 건 비구이형성증이었다. 선천적인 질병으로, 남들과 달리 골반의 뼈가 그 아래 다리뼈를 덜 감싸고 있어서, 훗날 고관절이 빠르게 망가지며 다리 퇴행성이 빨리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관절이 남들에 비해 빠르게 퇴화되어 다리를 일찍 못 쓰게 되는 것이었다. 유일한 해결 방법은 수술이었다. 많은 생각들이 지나쳐 갔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는 터라 유독 더 깊은 생각들에 빠지곤 했던 것 같다.


수술이 잘못될 경우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탓할 것도 원망할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냥 이렇게 태어났을 뿐이니까. 이렇게 낳고자 하여 낳아진 것도, 벌도 무엇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는 수술이 무사히 마쳐지길 바라는 것이었다. 걸을 수 없다면 걷지 못하는 대로 그 삶 속에서 내가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그럼에도 좀처럼 괜찮다고 웃음으로 무마할 수 없던 건, 운동할 수 없고 두 발로 땅을 걸어 다닐 수 없다는 사실 보다, 재이와 했던 약속 앞에서였다, 나중에 이곳저곳 오래 같이 걸어 다니자고 했던. 그게 내겐 많이 중요하고 꼭 이루고 싶은 꿈인 터라,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가정만큼은 무사히 삼켜지지 않았다. 내 존재 자체가 짐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은 백야 현상처럼, 해가 지지 않는 밤이 되어 꽤 오랜 시간을 깨어서도 잠을 자는 채로 지냈던 것 같다. 끝도 없이 막막한 내 머릿속을 오랫동안 헤집고 다니다 보니, 되려 하루빨리 수술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심정이 되었다.



수술 날 당일. 수술은 오후 세시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앞의 수술이 빨리 끝났다는 통지와 함께 한 시 반에 갑작스레 수술방으로 가게 되었다. 주변에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채비를 하여 가게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이동식 침대에 누워 수술방으로 향했다.

자동문이 열리고 외부인이 출입금지인 구역으로 진입하며 어머니와 수술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연세가 조금 있으신 모르는 아주머니께서 내 손을 잡으시며 ‘아가, 잘 다녀와’라고 하셨는데 수술이 끝난 이후에도 그 말과 아주머니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뭔가 그 순간 신이 아주머니 몸에 들어와서 내게 인사를 하고 가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외부인 출입 금지 구역인 복도에서 대기하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며 여러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만약 수술이 잘못되어 걷지 못하게 된다면, 도중에 잘못되어 죽게 된다면 혹은 전신마취 후에 영영 못 일어나게 된다면 등등. 내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사랑하는 재이와 다신 만날 수 없다는 생각 앞에선 초연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없어도, 재이가 잘해나갈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사랑하기에 걱정되었고 재이 곁에 건강한 모습으로 머물며 오래오래 사랑하고 싶었기에 기도했다.


내 차례가 되었고 수술방에 들어가 수술 침대 위로 눕게 되었다. 내 입에는 기체가 나오는 마스크가 씌워졌고 간호사님이 지금 들어가는 건 산소라고 크게 심호흡하라고 하셨다. 심호흡을 하며 언제 그 ‘전신마취’라는 걸 하게 될까 경계하며 마취할 때 긴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눈떠보니 회복실이었다. 아무튼, 언제 마취를 당했는지 아차 싶으면서도, 무사히 깨어났음에 감사했다. 훗날 어머니께 듣기론, 산소라고 심호흡하던 과정이 마취하는 과정이라고 하시더라. 이런.


이건 마치 미국 서부의 한 벌판에서 친구와 저녁 먹거리를 두고 내기를 하기 위해, 각자 마취총을 들고 등을 맞댄 다음 ‘하나, 둘, 셋’ 하면 돌아서 쏘는 거다라고 약속하고 앞을 보며 비장하게 걸어가며 수를 세는데, ‘하나’를 세는 순간 등 뒤로 마취 핀이 꽂히며 명중인 탓에 기절한 줄도 모르게 기절했다가 일어나니 이미 저녁 식사는 말끔히 끝나 있었던 상황 같달까. 기절하기 전 가장 최근 기억은 내가 셌던 ‘하나’라는 마지막 숫자뿐. 친구는 이미 사라져서 우리가 셋까지 세었는지 알 수 없었는데, 그 상황을 지켜보던 한 행인이 자넨 하나에 당했소라는 말을 듣고 작게 탄식하며 이마를 짚게 된 마음 같달까. 속았다 싶으면서도 덕택에 덜 긴장하고 마취가 된 거니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 부작용이나 과다출혈 없이 수술도 무사히 잘 끝났다.


하지만 통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전신마취를 하게 되면 6시간 동안은 잠을 자면 안 되고 계속해서 심호흡을 하고 기침을 해주어야 하는데, 점차 마취가 풀리자 깨어있는 것 자체가 고통인 시간이었다. 나 스스로 버튼을 눌러 맞을 수 있는 무통 주사가 있었지만 시간마다 맞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었고,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통증이 잠재워지긴 커녕 약물보다 거센 물결로 온 혈관을 타고 다니는 것처럼, 무뎌지지 않고 생생했다. 차라리 일주일 동안 정신을 잃고 기절해 있다가 퇴원할 때 깨어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통증이 혈관을 타고 지나갈 때마다 그곳에 가시가 돋아나 안쪽에서 몸을 찌르는 듯했고, 뼈를 깎는 고통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었다. 끊임없이 항생제와 진통제 영양제 등, 쓴 약이 좋은 법이라 하긴 하지만, 밀려드는 약물이 혈관을 타고 지나갈 때 생생히 느껴지던 통증과 저림 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었고 그렇기에 많은 순간 말을 할 수 없었다. 회복하는 동안 병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드라마, 영화를 보겠다며 여러 가지 챙겨갔지만 내가 할 수 있던 건, 되는 대로 잠을 자거나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노래를 들으며 잠시나마 통증에 대한 감각으로부터 나를 떨어뜨려 두는 것이었다. 이때 당시 아이유 님의 노래들을 주로 들었고 덕택에 그 시간을 무사히 견딜 수 있었다. 감사하다.

((강승원 이집 PART 3. - ‘Mather Nature(H2O)’-아이유 많관부..!!*^^*))


수술이 끝난 초반 내가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던 건, 수술한 건 한쪽 다리의 고관절 하나뿐인데 이전에 너무도 당연하게 혼자서 할 수 있던 일들을 스스로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혼자서 몸을 일으켜 앉는 것,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 온전한 다리로 걸었다면 몇 초만에 오고 갈 거리에 놓인 병실 안 화장실을 몇 분이나 걸려서 가던 것, 볼일을 보고 속옷과 바지를 끌어올리고 물을 내리는 것, 침대 위로 오른쪽 다리를 끌어올리는 것, 씻는 것 등등.

수술한 건 다리 하나뿐이었지만, 그에 따른 여파도 각오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나 스스로 할 수 있던 일들 중 기본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조차 나 혼자 해낼 수 없이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점들이 아프게 다가왔다. 물론 어머니께 정말 많이 감사했고 죄송하고 감사하다. 이 시간 동안 곁에서 보호자가 돼주셨던 어머니의 도움을 전적으로 받았고 덕택에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다.


이러한 불편들을 각오했지만, 그 이상으로 실감이 되었고 적어도 나의 안일함으로 장애에 대한 앎과 이해가 부족했던 내 상태에 있어선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던, 부끄럽지만 막연히 짐작하며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그 발치에도 가닿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병실에 입원해 있으면서 직접 겪은 그제야 비로소 깨닫던 시간이었다.

물론 사람이 걸을 수 있는가의 여부가 사람의 존재 의의를 설명할 수 없으며, 내가 살면서 당연하게 할 수 있다고 여겨왔던 기본적인 일들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건 아니며, 역으로 나 또한 그러하다는 것 이어 애초에 기본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나의 신체가 어떠하던 그게 나의 부분이 될 수 있을지언정 존재 가치를 정의 짓는 전부는커녕 일부도 될 수 없다는 것 등을 알면서도, 통증에 계속해서 깨어 있는 정신, 움직일 수 없는 몸. 불편을 각오하고 수술에 임했다 하더라도 정신의 유동성과 몸의 정적 사이, 그 괴리의 공간에 서 있다 보면, 치솟는 걱정에 마음이 막을 새 없이 속수무책으로 내려앉곤 했다. 내 존재의 의의 등을 물어오는 척 나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외쳐오는 내 안의 목소리들이 파둔 구멍 속으로 하릴없이 떨어지는 등, 심정적으로 침체되는 걸 막기가 어려운 때가 있곤 했다.



그 가운데에서 나를 버틸 수 있게 했던 것들 중 하나로, 시간이 지나서 나으면 다시 전처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곱씹곤 했다. 그 사실은 나를 위로하는 동시에 슬프게 했다, 모두가 그 사실에 위안받을 순 없을 테니까.


다리 검사를 하고 수술 여부가 확정 지어지고 수술을 하기까지, 장애에 관해 혼자 생각해보곤 했다. 괜히 지하철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어디 있는지, 병원이 위치한 동네의 역으로 가기 위해선 가파른 경사를 지닌 계단들을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했어야 했는데, 다시 걸을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이곳을 전처럼 다닐 수 없겠지, 왜 가전제품 등 전자기기의 발전은 이토록 향상되어 가는데 신체 조건과 상관없이 모두가 원활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과 관련해서 어릴 적 처음 서울로 이사 왔던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하는 생각, 휠체어를 타게 된다면 버스를 이용하더라도 저상만 이용할 수 있을 텐데 저상 버스가 갖춰지지 않는 동네의 1142번 버스에 관한 생각, 지하에 위치하여 계단을 밟고 내려가야 하는 가게에 들어갈 때, 어쩌면 다시 이곳에 방문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등.


부끄럽게도 이전에는 보이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던 상황들이 막상 내게 닥칠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자 그제야 보인다는 게, 나름 인식하고 있으며 의식을 갖고 있다고 믿었던 나 스스로가 많이 부끄러웠다.


수술을 하기 하루 전날 미리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입원 수속을 밟고 배정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먹을 것을 사러 병원이 있던 동네 디저트 가게에 방문하러 가게 된 적이 있었다.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차도록. 두 다리를 딛고 뛰어가며 호흡이 가팔라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며 숨이 벅차오르는 것도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걸 하면서 달렸던 적이 있었다.


흔하지 않고 간단하지 않은 수술이지만 그만큼 전문성을 갖춘 교수 분들의 존재가 뚜렷한 편이었고 그중에서도 실력 있는 분께 받는 것이었기에, 크게 걱정할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걱정을 쉬이 내려놓을 수 없었다. 수술이 잘 끝나고, 후유증 없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잘 걸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당장에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과 그로 인한 여러 통증들은 과연 이게 나아지긴 하는 걸까 등과 같은 좌절 속에 나를 오래 머물게 할 만큼 강했다.



나도 이런데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어떨까, 생각한다. 내가 감히 다 헤아릴 수 없을 그 마음들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 완전히 위로가 될 순 없었다, 세상엔 다시 걸을 수 없어 힘들어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을 수 있으니까.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또한. 그리고 그들이 나보다 훨씬 강하고 대단한 사람일 것이라는 사실에 있어서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 온몸이 멀쩡히 있음은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내가 허약하기 때문이라고.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내가 강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일 거라고. 감히 생각하기를 모든 것엔 균형이 있다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불완전이나 완전, 정상과 비정상, 표준과 비표준 등을 벗어나 각 존재는 자기 자신으로 온전하다는 것.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며 정답이 될 수 없다. 모두가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이 세상에 왔다면 세상엔 왜 슬픔들이 생겨날까. 정상이란 잣대의 줄자를 늘여 비정상을 가르며 재단하는 태도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눈이 안 보이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앞을 보지 않고서도 내가 연주할 줄 모르는 플루트를 연주할 수 있었다. 그 친구가 눈으로 세상을 볼 순 없지만, 감은 눈 속에서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넓은 멋진 세상을 보며 살아가고 있음을 나는 감히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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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숨 - 살짝 지각입니다. 죄송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심에 감사합니다. 저마다의 감상들, 언제나 감사입니다. 모두가 건강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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