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ngel in the shape of my mum
- 이 글을 읽을 때, 같이 들으시면 좋을 곡 : [ Ed Sheeran - Supermarket Flowers ]
*가사 해석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GVgefOL5wKQ
**노래의 그림 뮤직 비디오 영상(추천..!) : https://www.youtube.com/watch?v=XpF9Y7rcqBs
얼마 전 건강 검진을 다녀오신 어머니께선 남대문 시장을 들러 조팝나무 두 단을 사 오셨습니다. 마트에서 사면 비싼데, 남대문 시장에서는 비교적 싸게 샀다며 아이처럼 환한 웃음을 짓고서 예쁘지 않냐고 물으셨습니다. 조팝나무의 얇고 기다란 가지에는 새하얀 꽃들이 작은 팝콘처럼, 눈꽃처럼 한아름 무성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조팝나무. 이름만 들어봤지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고, 정말 아름다웠어요. 방방 뛰시는 어머니와 반대로 상대 및 상황과 감정의 균형을 맞추려 하는 오랜 습성을 지닌 저는, 되도록 덤덤하게 반응하려 했지만 실은 내심 기뻤고 왜인지 한편으로는 너무 감동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아무도 없는 거실에 앉아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집은 고요했어요. 거실 벽면 한 켠에는 얼마 전 어머니께서 사 오신 조팝나무가 화병에 담겨 있었습니다. 나무와 그 위에 핀 꽃들이 꼭, 봄의 한가운데에서 피어나 봄철 내내 녹지 않을 눈꽃 같았습니다.
어머니와 거리를 지나가던 이름 모를 한 아이가 우연히 그 나무꽃을 발견하곤 자신의 어머니 옷깃을 끌어당겨 꽃을 보여주며 봄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별안간 저는 생각했습니다.
누가 제가 어머니 딸 아니랄까 봐요. 참 뜬금없는 생각이었어요. 아무 날도 아닌데 별안간 어머니 키의 반이나 되는 나무 꽃다발을 들고 오신 어머니나, 얼마 전까진 없다가 별안간 저희 집 거실 한편을 가득 채워 존재감을 또렷이 내며 거실의 온기를 더하고 있는 조팝나무나, 그 조팝나무를 보며 별안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저나. 얼마 전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는 어느 오후에 빛을 받은 눈이 반짝이며 내리던 풍경만큼이나 퍽 뜬금없는 듯해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많은 경우, 부모님은 왜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셔야 하는 걸까요. 철없는 우문인 걸 알면서도 부모님을 생각할 때면, 이와 비슷한 질문들을 저는 오래 생각하게 되곤 합니다. 언젠가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시고 이 세상 어디에서도 어머니를 직접 만날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조팝나무는 계속해서 이 땅에 새로 피고 지며 다시 새로이 피어나겠지요.
어머니와 함께 있다 보면 어느 순간순간 불현듯 깨닫게 되곤 해요. ‘아, 나는 이 장면을 결코 잊지 못하겠구나. 언젠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나는 종종, 어쩌면 자주, 어머니를, 어머니와 함께 보낸 이 시간을 떠올리곤 하겠구나.’ 하고요.
조팝나무를 보고, 환히 웃으시며 자랑하는 어머니를 보며 기쁘지만 애써 감동하지 않으려 했던 때의 저도, 사실은 알고 있었을 거예요. 나는 이제 조팝나무만 보면 하릴없이 어머니와 함께 한 이 순간을 떠올리겠구나 하고요. 왜인지 감동하고 싶지 않던 마음은, 너무 감동해서 이 순간을 마음 깊이 새겨 버리면, 훗날 너무도 슬플까 봐 겁먹은 마음이라는 것을요. 맞아요, 알고 있었어요.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란 것을요. 그럴수록 후회라는 단어와 함께 보다 짙게 새겨져 더 깊이 슬프리란 것을요. 있는 힘껏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이 슬픔으로만 남지 않는다는 것 또한 말이지요. 저는 언제쯤 제대로 철이 들어 부모님께 좀 더 정겨운 자식이 될 수 있을까요.
앞으로는 어디선가 우연히 조팝나무를 마주친 날이면, 아마 괜히 어머니 곁을 기웃거리다가 왜 그러냐고 물으시는 물음에 그저 씩 웃고 말 것 같아요. 그리고 어머니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날이 지나 다시 조팝나무를 발견한 어느 날, 어머니를 뵙고 싶어도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어머니를 뵙게 될 수 없는 날이 오겠지요. 그때 슬퍼하더라도 너무 많이 슬퍼하진 말라고, 웃긴 이름의 아름다운 나무를 가져오신 걸까요.
어머니의 세월의 속도와 저의 세월의 속도가 너무도 달라서, 자꾸만 더더욱 빠르게 흘러가는 듯한 어머니의 시간을 볼 때면, 제게 잘해주시는 어머니의 다정함이 이따금 야속하곤 합니다. 실은 어머니가 야속한 게 아니라, 다르게 흘러가는 우리의 세월이 야속한 건데 말이죠. 사실 그 깊은 속 진심은 어머니를 꼭 붙잡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는 것을요. 어머니, 부디 어머니께서 행복한 대로 오래오래 건강하게 계셔주셨으면 해요 하고요.
어머니가 더 이상 이 땅에 계시지 않을 때에, 하늘이 맑은 어느 날, 꽃집 앞을 지나가다 우연히 조팝나무를 보곤 저는 오래 울지도 몰라요. 어머니, 오늘 조팝나무를 봤어요 하고 울음이 마르지 않은 먹먹한 목소리로 혼자 되뇌다가 발음이 웃기다며 웃다가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고 말하시며 장난스레 제 엉덩이를 치시곤 하셨던 어머니가 떠올라 저는 또 울지도 몰라요. 어머니. 당신께서 제게 새겨주신 아름다운 순간들을 살다가 마주쳤을 때 저는, 슬퍼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요.
그런 가사가 있어요, “마음이 찢어질 것 같은 것은 그만큼 사랑받았기 때문”이라는. 살면서 어머니께서 베풀어 주시는 사랑에 감동받지 않을 수도,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을 막을 수도, 그래서 결국 훗날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그때에 많이 울지 않을 수도 없겠지요. 어떤 방법을 써도 소용없겠지요. 그렇기에, 어머니께서 주셨고 주시는 사랑을 감사히 받고, 마음에 깊이 간직하며 저도 어머니처럼 있는 힘껏 사랑할게요.
훗날 어머니가 이곳에 더 이상 계시지 않은 그때에 울게 되더라도, 그래도, 꼭 다시 웃을게요. 슬퍼하기만 하는 것은 어머니를 슬프게 하는 일일 테니까요. 근데 울음을 참으면 마음에 병이 든다고 해요. 그러니 그때가 오면 힘껏 울고, 힘껏 웃을게요. 자주 울게 되더라도 또다시 어김없이 웃을게요. 그러니 조팝나무를 가져오시며 지어주셨던 봄햇살의 웃음처럼, 어머니께서 이 땅에 머무시는 동안도, 하늘에 가셔도, 아이처럼 환하게 자주 웃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