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y For Ukraine
-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 : [ 정세린 - 마음이 쉬고 싶을 때(When Mind Wants to Rest) ]
아버지, 어제는 당신이 제게 마지막으로 웃어주셨던 날입니다. 당신의 곁에는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시던 팬지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성히 꽃이 핀 봄의 화단이 한순간에 뒤엎어지며 땅 속에 파묻혀 있던 검은흙들이 꽃들을 짚어 삼켰어요. 당신은 그 위로 쓰러지시며, 꽃들에게 미안해하셨죠. 아버지 당신 잘못이 아니셨는데도요. 정작 미안해야 할 사람들은 우리의 국경을 넘어와 폭격을 날리고 있는 저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그때 당신 앞에 딱 한 송이 스러지지 않고 피어있던 팬지꽃이 있었지요. 당신의 눈동자도, 그 팬지꽃처럼 아름다운 파랑으로 푸르게 빛나곤 했지요. 당신이 보는 푸른 세상을 제 눈동자에도 새겨주셨어요. 퇴직을 하고 나서, 꽃집을 하겠다고 하시며 집 앞 화단을 가꾸셨지요.
살아생전 그토록 좋아하시는 꽃을 당신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고 가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당신은 나라를 우리 가족을 지키시겠다며, 마지막으로 손녀의 손등에 인사를 건넨 후, 저와 함께 군대에 가시겠노라고, 만류하는 제 손길을 한사코 움켜쥐시면서 철없이 당신께 화내던 저를 꼭 껴안으셨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목숨 이렇게라도 의미 있게 쓰고 싶다고 하시면서요. 이게 어떻게 의미 있는 일이냐며 소리를 지른 저는 완강하게 거절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어릴 적 당신의 든든한 두 팔로 저를 번쩍 안아 올리시며 푸른 하늘에 온 가득 안기게 하셨던 당신께서 저의 몸짓에 힘없이 흔들리시는 걸 느끼며 아버지, 저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붙잡으시는 당신의 손을 뿌리치며 아버지 마음대로 하시라고 화를 내며 앞서 갔어요. 그때였습니다. 이상한 신호음 같은 게 들린다고 느꼈던 바로 그 찰나에, 굉음과 함께 땅이 뒤흔들렸던 건. 곧바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주위에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어요.
당신을 찾기 위해 외치는, 제 몸 안에서 울리는 제 목소리만이 들릴 뿐, 주위의 그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이명이 계속해서 귀를 찢을 듯이 울려 퍼졌어요. 그 순간 누군가가 제 바짓단을 잡는 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셨습니다. 황급히 몸을 굽혀 당신 손을 쥐고 당신을 일으키려는데,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너무도 쉽게 제 손길에 이끌려 제 품 안에 들어오셨어요. 아버지, 그토록 크셨던 당신이 제 품 안에 쏙 들어오셨습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어요. 모든 게 다 꿈꾸는 것만 같았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손녀에게 팬지꽃이 그려진 반지를 사주 시겠다며 당신 주머니에서 구겨진 지폐를 꺼내어 아이에게 반지를 사주셨어요. 제 어린 딸애는 소리 내어 웃으며 기뻐했지요. 아버지,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때 아이가 터트렸던 웃음소리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요. 팬지꽃처럼 푸른 웃음이라고 당신이 말씀하셨는데, 저도 분명 그렇네요라며 동의했는데, 그 웃음소리가 정확히 어땠는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나지가 않아요.
저를 보며 당신이 입모양으로 무어라 말씀하고 계시는 데에 그 말조차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방 곳곳 무언가가 계속해서 무너지고 부서지는 여파로 전해지는 진동만 온몸에 소름으로 훑고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저는 당신께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당신의 말을 들을 수가 없다고… 아버지는 손을 뻗어 제 귀를 쓰다듬으시며 그곳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연신 당신의 소매로 닦으시며 우셨어요. 아버지, 당신은 겨우 한쪽 눈동자로 저를 보고 계시며 당신의 배에서는 쉼 없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는데도요. 당신은 이내 제 손을 움켜쥐시고는 눈물이 채 멎지 않은 눈동자로 저를 바라보시며 웃으며 입으로 무언가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똑같은 입모양을 반복해서 무언가 말씀하시는 듯했어요. 그리곤 환히 웃으시며 그대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저는 오늘까지 여전히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오늘 길가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가까스로 재회한 듯 있는 힘껏 서로를 껴안고는, 눈물을 흘리며 서로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었습니다. 연신 반복해서 무언가를 말하는 듯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입모양과 같았어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제게 해주신 말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다가가 제 귀를 가리키며 지금 들을 수 없다고 몸짓으로 시늉하며, 방금 서로 무슨 말을 했는지 물었어요. 그들이 제 손바닥 위에 글로 써주더군요. 사랑해.라는 말이었습니다.
당신은 한 번이라도 더 호흡하려 숨을 들이켜시는 데에 쓰지 않고,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한다는 그 말을 다 전하시기 위해 당신의 남은 숨들을 당겨서 사용하셨어요. 제 손을 잡으시곤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며 웃어주셨지요. 아버지, 당신은 당신의 마지막 숨을 그렇게 사용하셨습니다. 죄송해요, 아버지. 아버지를 묻어드리는 오늘, 당신이 떠나시는 순간에 그토록 좋아하시던 팬지꽃 한 송이조차 들려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어떤 꽃집도 더 이상 문을 열고 있지 않고 있어요. 날아온 폭격들에 나라 온 곳곳이 불에 타고 있어요. 죄송해요, 아버지.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시던, 저희 집 앞마당 화단도 결국 지키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부디 하늘에서 아이를 지켜봐 주세요. 그 아이와 함께 해주세요. 저도 당신의 나라를, 우리의 나라를 지키겠습니다. 꼭 지키겠습니다. 당신께서 한평생 온 마음 다해 사랑하셨던 이 나라를, 여전히 우리나라이기 위해 꼭 지키겠습니다. 태양은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럴 겁니다. 우리는 태양을 꽃피우는 민족입니다. 우리는 결코 지지 않는 민족입니다. 당신의 손녀가 커서도 당신의, 우리의 나라를 이야기할 때, 변함없이 우리나라라고 말할 수 있도록, 당신과 아이의 국적이 변치 않도록 이 나라를 꼭 지키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아버지 아이를 지켜주세요. 그리고 인사가 늦어서 죄송해요. 저도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아버지.
우리는 태양을 꽃피우는 민족입니다.
(We are a nation that blossoms the sun.)
우리는 결코 지지 않는 민족입니다.
(We are a nation that never loses.)
#PrayForUkraine #PrayForPeace
cf. 우크라이나의 국화로는 해바라기꽃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