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람!” 나는 허공에 손을 휘적이며 람에게로 달려갔다.
람은 첫날 만났던 그 모습대로 그 웃음대로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디 갔었어!” 내가 물었다.
“그냥 좀.. 일이 있었어…” 손으로 풀밭을 쓸며 람이 말했다. 어색할 때면 괜히 고개 숙이곤 손으로 풀을 쓰다듬는 버릇은 여전했다.
“나, 너 엄청 찾았어. 근데 그러고 보니 우리는 그렇게 매일 만났는데 서로 정확한 집도 모르고 몇 반인 줄도 모르고 있었더라. 그날 못 나와서 미안해. 독감 걸려서, 외출 금지당했었어. 그래도 나 너한테 배운 거 매일 같이 연습해서 이제는 잘 던지면 열 번도 넘길 수 있어! 다 네 덕이야. 스승님.”
람은 잔잔히 일렁이는 물결처럼 은은하게 웃으며 “잘했어.” 답했다.
“너는 무슨 일 있었어? 매일 너 기다렸는데…”
“기다렸다고..? 나를? 왜..?”
“왜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잖아.”
“……”
대답이 없길래 옆을 보니 람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었다.
“야.. 너 왜 울어..!”
람은 쉼 없이 흐느끼고 나는 곁에서 어쩔 줄 몰라 한참을 쩔쩔매다 보니 푸르고 붉은빛이 한 데 어우러지며 어슴푸레했던 하늘은 어느새 캄캄해져 있었다.
“미안…”
람의 목소리에 채 마르지 않은 울음이 묻어 있었다.
“아냐, 미안하긴…”
“그리고,” 손등으로 코밑을 쓱 닦으며 람이 말했다. “고마워.”
“어..? 뭐가..? 난 한 게 없는…”
“기다리는 거. 그거 절대 쉬운 거 아니잖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고 기다려줘서 고마워.”
“……”
“널 처음 만났던 날, 그 전으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날에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 댁에서 지내기 시작하던 때였어. 마음에 뭔가 큰 구멍이 나서, 거기로 내가 다 빠져나가 버린 것만 같았어. 다시 학교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는 데도, 이전의 나 같을 수 없었고 친구들도 이전과 다른 나를 낯설어하는 눈치였어. 마치 나는 여기 있는데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못한 것 같았어. 지금의 내가 아닌 이전의 나를 찾는 시선들 앞에서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것만 같더라. 고마워. 나를 찾아주고 나를 나로 봐주어, 고마워.”
그날 우리는 그동안 열심히 물수제비만을 던지느라 미처 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람의 물수제비 실력은 람의 아버지께서 전수해주신 거라고 했다. 나는 축제가 끝나고 내일 열 번 넘기는 걸 보여주겠다고 그리고 성공한 기념으로 내가 쏠 테니 함께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말했고, 람은 그저 은은히 웃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람을 다신 볼 수 없었다. 매번 만나던 장소인 강가 옆 경사진 잔디밭 위에 앉아 아무리 기다려도 람이 나타나질 않아, 가르쳐주었던 집을 찾아가 보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두 번을 더 찾아가고 나서야 알게 된 건 그곳에 할머니와 한 손자가 살았는데 연탄가스가 새는 사고로 그만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올해 축제에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노란색 등불들이 하나둘씩 하늘로 떠오르고 있다. 꼭 별이 떠오르는 모습 같다. 초등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하늘에서 별들이 반짝이는 건 사람들이 서로의 안녕을 담은 소원의 자그마한 기도가 공중으로 올라가 다른 행성에 닿아 심기고 자라나 빛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행성은 우리의 행성보다 앞선 시간을 살고 있어서, 미리 미래를 알 수 있는데, 미래에서 그 소원들이 가장 좋고 알맞은 모습으로 이뤄졌음을 반짝이는 별빛들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아무리 캄캄한 밤이더라도,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단 한 시도 알 수 없는 내일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건 줄 알았다. 당신의 염려와 별개로, 당신의 내일들은 잘 흘러가고 있다고, 때로 내일들이 걱정되어 잠 못 이루는 세상 저마다의 두려움들을 가만가만 다독여 주는 신호일 거라고.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가 과학 시간에 별에 대해 배울 때, 별은 돌덩어리일 뿐이고, 스스로 빛낼 줄 모른다고 말하는 선생님께 잘못 알고 계신다고 대들었다가 혼도 났었다. 어린 마음에 어찌나 서럽던지. 괜히 오기가 발동한 나는 속으로 아무것도 모르면서를 연신 외치며 선생님 몰래 과학책에 유성 팬으로 과함책이라고 낙서를 해놓기도 했다. 그날은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돌을 던졌다.
사실 여전히 그때의 과학선생님의 말을 반만 믿는다. 별의 전부가 사람들의 소원으로 이뤄져 있지 않을 수 있지만, 별의 일부에는 분명 사람들이 소원이 담겨 있고, 먼 우주에 있는 별빛이 무사히 지구까지 닿는 건 서로가 서로의 밤이 안온하길 마음 깊이 바라고 있기 때문에, 비 오는 밤에도 아랑곳 않고 구름 저편에서 어김없이 떠올라 반짝일 수 있는 거라고.
나는 지금도 강가에 가면 돌을 던져 물수제비를 뜨곤 한다. 어릴 적만큼 잘 던지진 못하지만, 이따금 열 번을 넘길 때면, 람이 잠시 왔다 간 걸까 생각하곤 한다.
직접 등불을 만들 수 있게 된 때부터 나는 종이에 은람이라 적어 등불에 묶어 하늘로 보낸다. 한참을 올라가던 등불이 이만 타오를 때, 이따금 그 너머의 별 하나가 어김없이 반짝이는 건 람의 인사였을까.
-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물결처럼 잔잔히 (serenely lika waves)
https://soundcloud.com/aizjt4pbopgf/serenely-like-a-wave?si=dd3ef76cfa014d8ba5bc96eeed0ff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