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찾은 건 '용기' 입니다
어떤 책을 읽다가 아래와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
"가장 좋은 것은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 겁니다.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만, 일단 자기계발서에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분들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아쉽게도 자기계발서는 심리학 서적이나 명상집이 아닙니다. 위로와 위안의 코드를 읽고 싶다면, 굳이 읽고 나서 허탈한 기분을 맛보는 자기계발서를 읽지 마세요. (중략) 사실 자기계발서들이 위안을 준다는 건 크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남이 힘들게 이룬 것을 손쉽게 취하는 것만큼 쉬운 위안이 어디 있겠어요"
이 책도 자기계발서이다. 자기계발서에서 자기계발서를 읽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는 우스운 상황인거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내 입장에선 우습지만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상처받은 느낌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 나에게 손가락질 하면서 면박을 주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학창시절 선생님께 혼나는 기분과도 비슷했고...그렇게 잠시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그 감정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직장 생활한 지 지금은 벌써 15년째. 내겐 한창 회사 욕하고, 팀장 욕하던 시절이 있었다. 직장 생활한지 2~3년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내 잘못에는 분명 이유가 있고, 정당한 사정이 있었지만 팀장은 왜 나만 못살게 굴까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럽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열등감 반, 방어기제 반 정도가 뒤엉켜 있었던 것 같다. 나에 대한 실망이 컸지만, 그렇다고 내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루저같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준 책을 만났다. 오그 만디노가 쓴 '아카바의 선물'과 이지성 작가의 '27살 이건희 처럼' 이다. 위 글의 작가가 그렇게 까대던 자기계발서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건 그저 잠시간의 위안이나, 손쉽게 성공으로 이를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바로 용기였다. 이것도 저것도 맘같지 않던 시절에 '나도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면 뭔가 이룰 수 있겠구나' 란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허무맹랑한 꿈이든, 작가들의 거짓이든 간에 용기를 갖게 된 후의 삶과 그 전의 나의 삶은 무척이나 달랐다. 스스로를 절제하게 되고, 회사 일을 열심히 해봐야 할 이유가 생겼고, 무엇보다 자기계발을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의 나는 일년에 책 한권 읽지 않던 직장인이었지만, 나중엔 매달 2권씩은 읽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 때부터 시작한 독서와 각종 학습은 내게 책을 출간하게 하고,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하나씩 이뤄가다 보니 용기는 더 커져갔다. 냉소적이고 비관적이던 사고방식도 차츰 여유롭고, 긍정적으로 바뀌어 갔다.
다른 사람의 성공 방정식을 싼 값에 취하려고, 그저 잠시나마 위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를 찾을 때는 뭔가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라고 생각한다. 잘하고 싶긴한데 자꾸 스스로에 대해 의심이 가고, 걱정이 들 때 말이다. 요즘처럼 삶이 퍽퍽한 시기에 아마 많은 직장인들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을까? 직장생활 경력이 꽤 되었는데 왠지 이뤄놓은게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자기계발서를 적극 권하고 싶다. 100미터 달리기 하다가 넘어진 사람을 일으키는 느낌보단, 장거리 달리기를 하다가 주저앉은 사람에게 슬며시 손을 내미는 느낌으로 말이다. 나름 잘해 보려고 하지만 맘 같지 않아 힘든 사람한테 "넌 뭐하느라 아직도 그러고 있느냐?" 고 호통치는 건 좀 아닌 듯 하다. 안 그래도 채찍질 하는 사람 넘쳐나는 요즘인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위에서 말한, 지쳐있지만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직장인들을 위해 글을 쓰고자 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위해서 글을 써내려 가고자 한다. 같이 공감하면서 조금씩 서로가 용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by 젊은꼰대 흡수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