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쉽게 '그에 대해 알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얼마 전 '82년생 김지영' 이란 소설을 읽었다. 소설이라곤 하지만 실제 82년생 여성들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는 82년생 여성이 태어나고 학창 시절을 거쳐 직장생활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성장과정을 통해 여성들이 느꼈을 사회적인 차별, 폭력에 대한 두려움(예를 들면 밤길에 누군가 뒤를 밟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느껴진 여고생 시절의 두려움)을 그려냈다.
내 주변에도 82년생 김지영들이 많다. 아내 또한 비슷한 나이이고, 직장 내에도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성들과 일을 하고 있다. 솔직히 책을 읽기 전엔 주변에 그런 여성들을 가까이하고 있기 때문에 뻔한 이야기겠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적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란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글을 읽어갈수록 그런 나의 생각은 점차 멋쩍음으로 변해갔다. 특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김지영의 남편의 모습을 보고 그랬다. 글 속의 남편은 아내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거야 본인의 생각인 것이고, 실제로는 무심한 말로 아내 김지영 씨에게 상처를 줄 때가 많다. 나 또한 아내에게 그런 말들을 무심결에 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실제로 그랬음직한 말들을 했던 기억에 부끄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내에 대한 생각은, 회사에서 만나는 여자 동료들에 대한 생각으로 옮아갔다. 나름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한다고 생각했지만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나서의 느낌은 달랐다. 남성 중심의 의사결정, 여성들에 대한 편견들을 10여 년 넘게 겪으면서 살아왔을 것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런 직장 생활을 하기 전부터 훨씬 오래전부터 겪었을 차별들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화를 내고,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만 그랬을 때 돌아올 불편한 시선들이 걱정되어 참아야만 했던 순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감정들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일종의 '학습된 무기력' 이 몸에 배이게 되고, 그것이 때론 '남자로선 이해할 수 없는' 여자들의 행동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여자 동료들의 표정, 말들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결국 또 이런 식으로 소외되는구나' 하는 표정이랄까? '그래, 남자들은 늘 그런 식이었지 뭘 어떻게 바꾸겠어?' 하는 표정인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이라고 분노를 느끼지 않았을까? 그들이라고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을까? 아닐 것이다. 이렇게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겪어왔을 일들을 생각하다 보니 묘하게도 그간 그들에게서 느껴졌던 서운한 감정이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바라기 전에 그들이 느낄 두려움이나 부당함을 먼저 이해해 줘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말이다.
이처럼 누군가와 진심으로 소통하고 팀을 이루기 위해선 먼저 상대방의 삶, 그리고 처해진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의도한 바는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특히,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사람일수록 말이다. 강자일수록 약한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쉽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 있는 사람들의 무감각함이 지속되면 힘없는 사람들의 소외감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할 것이다.
이것을 조직의 리더들에게 적용해 보면 어떨까? 리더가 팀원들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만의 가치관만 내세운다면 결코 팀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밀레니얼 세대들과 함께 일하는 환경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팀원들을 이끌고 싶다면 먼저 그들의 삶과, 지금 처해진 상황, 원하는 바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가 아닐까? 그런 이해가 깊어지면 자연히 그들에게 어떤 행동과 말을 보여야 할지 좀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팀원들에게도 해당된다. 팀원들 역시 지금 리더가 처해있는 상황이 어떤지, 그가 느낄 감정이나 두려움 등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줘야 한다. 이렇게 서로가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려는 진심이 통할 때 서로 마음을 얻게 되고 신뢰하는 팀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by 젊은꼰대 흡수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