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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Nov 15. 2022

"다녀오셨어요?" 3년 만에 퇴근 인사를 받았다

세상으로 나가다

"다녀오셨어요?"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아들 녀석이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한다. 3년 만에 듣는 '퇴근 인사'에 마음속 한 구석이 '꿈틀' 일렁였다. 


'위대한 스토리텔러'가 되겠다는 꿈을 그렸다. 어쩌면 [원피스]의 루피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끝없이 성장하는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되고 싶었을지도...누군가는 '나이 마흔 중반에 그 무슨 허황된 소리냐?' 비웃었을 것이다. 스스로도 '이게 될까?' 반문했다. 


2년간의 노력 끝에 첫 책이 나오던 그날 카톡 프사와 메시지를 바꿨다. '세상으로 나갈 준비' 


그 세상은 냉정했다. 첫 책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여기저기 강연 요청, 독자와의 만남 따위 황금빛 미래를 꿈꿨지만 끝내 어디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주제가 낯설어서, 출판사 홍보가 없어서 따위 자기합리화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분명 내 실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었다. 부족하고 부끄러운 민낯이 더 도드라졌다. 나는 결국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한동안 깊은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잠시 앓았던 듯싶기도 했다. 그즈음 소설가 김연수의 에세이를 읽었다. 글을 쓸 때 '이미 돌아갈 다리는 불타 없어졌다.' 라는 각오로 쓴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난 소설가도 이런 자세로 글을 쓰는데 난 뭔가? 싶었다. 


기운을 차려 두 번째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내 주무기인 '조직문화' 에 대한 이야기다. 다행히 이 일이 마음에 들었다. 일이 쉽고 재밌고 성공의 경험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어려워지기만 하는 이 일에 오기가 생겼다. "그래 누가 이기나 끝을 보자." 


'밑(MEET)빠진 회사에 열정 붓기를 멈춰라' 라는 컨셉으로 원고를 완성하고 투고를 했다. 다행히 복수의 출판사에서 출간 하자는 제의를 보내왔다. 그렇게 첫 책 이후 8개월여 만에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책을 내고 나면 왜 미처 보지 못했던 오류나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들이 그렇게도 보이는지. 두 번째 책 역시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상으로 나갈 준비' 따위 낯간지러운 문구도 쓰지 않았다. 첫 책을 내고 연락이 닿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책 냈습니다.' 호들갑을 떨었건만 이번엔 가까운 지인 몇 외엔 출간을 알리지도 않았다.


출간 후 일주일, 놀라운 일이 생겼다. 메이저 신문사에 책 출간 기사가 단독으로 실렸고, 며칠 뒤 인터뷰 요청도 왔다. 부담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은 잠시, 뻔뻔해지자 싶었다. 그렇게 인터뷰를 수락하고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엔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다. 북토크 영상을 찍자는 요청. 인터뷰야 그럭저럭 하면 그만인데 얼굴 팔리는 방송이라니, 


"PD님, 고민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책의 완성도도 그렇고 방송에 누가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이번엔 출연을 사양해야겠네요."


고심을 거듭하다 거절의 문자를 보냈다. 책은 제대로 읽고 섭외가 온건지도 의심스러웠다. 30분 후 답문자가 왔다.


"작가님, 저도 MZ세대로서 책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여기 스탭들 모두 구매해서 읽고 한 번 모셨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부담 갖지 마시고 방문해주세요."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부족한 책을 스탭들이 모두 구매해서 읽었다니 없던 자신감이 생겨났다. 물론, 빈말일지라도 인상 깊게 읽었다는 대목에서 마음이 동했다. 이 짓하자고 회사도 때려치웠는데 뭔들 못할까? 싶었다. 가까운 지인은 '왜 기회를 제 발로 차느냐'며 호통 아닌 호통을 치기도 했다.


9월 말, 가을이 짙게 내린 종로거리는 활기로 넘쳤다. 점심으로 먹은 콩나물 해장국은 절반 정도 남겼다. 14년 적을 두고 다녔던 회사의 본사 건물도 보였다. 무수한 인파 속에 낯익은 얼굴도 보였다. 분명 눈이 마주쳤음에도 서로 어색해 고개를 돌렸다.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간 사이 세상은 여전히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은 두려움인지 기대감인지 알 수 없었다. 부러 한 정거장 전에서 내려 종로 거리를 걸었다. 한걸음 한걸음, 속도를 늦추고 사람과 건물과 하늘과 가을의 나무들을 느꼈다. 어느새 방송사 건물 앞에 도착했다. 괜한 위압감에 몸이 움츠러드는 듯했다.  


난생처음 방송사 스튜디오를 구경했다. 수대의 카메라가 놓여 있고 진행자와 주거니 받거니 책과 요즘 세대, 회사의 문화에 대해 1시간 반가량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편한 상태로 할 말이 줄줄 나와서 놀랐다. 방송 그까짓 거 별거 아니구나! 싶기도 했다. 하긴, 이날을 위해 얼마나 연습을 했던가? 잠시 오만해졌던 마음이 거북이 목처럼 쑥 들어간다. 


촬영을 마치고 방송사 건물을 나오니 어느새 퇴근 시간, 거리는 퇴근하는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출퇴근과 상관없어진 실직자, 어딘가에 적을 두지 않은 이방인. 오늘만큼은 퇴근하는 기분을 느껴도 괜찮으리라. 난생처음 출연료를 받는 방송을 찍지 않았던가?


생각 같아선 누군가를 불러 축하주라도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동굴 속으로 깊이 들어간 곰을 만나줄 인간이 퍼뜩 생각나지 않았다. 붐비는 전철을 타고 집으로 들어갔다.


"다녀오셨어요?"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아들 녀석이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한다. 3년 만에 듣는 '퇴근 인사'에 마음속 한 구석이 '꿈틀' 일렁였다. 


"그래, 다녀왔어 아들!"

어쩌면 이 말이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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