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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Nov 16. 2022

이봐, 바닥까지 내려가 봤어?

두 락커의 부활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라는 경연 프로그램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프로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순위를 매겨 1등과 탈락자를 정하는 경연프로의 시초쯤 되지 않을까? 


[나가수]는 시작 전부터 말이 많았다. 그저 재미로 즐기는 예능으로 봐야 하느냐? 최고의 프로 가수들이 자존심을 걸고 출연하는 만큼 진지한 대결로 봐야 하느냐? 로 시끄러웠다. 조용필을 비롯한 많은 가요계 인사들이 반대의견을 공공연히 내비치기도 했다. 이미 프로 반열에 오른 사람들을 어떻게 순위를 매기고 탈락을 시킬 수 있느냐는 논지였다. 


스타일과 취향의 문제이지 어떤 기준으로 순위를 매길 것인가? 의 문제도 있었다. 청중평가단을 초청해 공연을 본 후 점수로 순위를 매기겠다는 것인데,  '음악에 전문성도 없는 일반 관객들이 감히?' 라는 가요계 인사들의 오만함도 묻어 있었다.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나가수]는 대성공을 거뒀다. 첫회부터 김건모의 탈락을 두고 재도전이라는 룰 브레이크로 이슈화가 크게 되었기도 했고, 그 이후로는 무엇보다 가수들의 진정성 있는 역대급 무대들이 쏟아져 나오며 흥행몰이에도 성공했다.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경연 예능을 화려하게 열어젖힌 셈이다. 


10년도 더 지난 [나가수] 이야기를 뜬금없이 꺼낸 이유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우연히 그들의 공연을 다시 보게 되면서부터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서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적어도 수십, 수백 번은 서봤을 무대. 그 일로 밥 먹고 사는 프로들이 신인이나 아마추어의 심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 불안에 시선을 피하고 입술을 바르르 떠는 장면이 무척이나 생경했다.


그렇게 프로들을 떨게 만드는 경연의 중압감과 그 중압감을 이겨내고 최고의 공연을 만들어내는 진짜 프로들의 각본 없는 이야기에 속절없이 끌리고 말았다.


그중에서도 남자다움의 대명사 락커 두 사람의 반전 이야기에 꽂혀 버렸다. 바로 김경호와 박완규. 김경호가 누군가? 전성기 시절 악마 라커라 불릴 정도로 초절정 고음을 내지르며 지금도 명곡으로 사랑받는 수많은 히트곡을 낸 전설이 아니던가? 


그런 그에게 치명적 시련이 찾아왔다. 성대결절. 그는 다시 노래를 할 수 있을까? 헤비메탈 사운드를 내는 락커를 다시 할 수 있을까? 라는 좌절감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커리어 바닥까지 떨어졌던 그가 나가수를 통해 복귀했을 때 평론가들을 중심으로 우려하는 시선은 명확했다. 과연 전성기가 지난 락커가 몇 라운드를 버텨낼 수 있을까? 그 우려를 알았던 것일까? 새 가수로 첫 등장한 무대에서 긴장한 티를 역력히 보이는 그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그 우려는 기우가 됐다. 역시 프로는 프로. 왕년의 솜씨는 녹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성대결절이라는 아픔을 자신만의 특색으로 만들어 공연을 열정적으로 끝마쳤다. 관객들은 환호했다. 락의 전설의 부활을 격하게 축하해주었다.


김경호는 감격한 표정으로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나도 좋아." 라고 했다. 김경호는 나가수의 최다 1위, 최다 득표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1기의 5명뿐인 명예졸업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저 예능 한편에 출연한 것이 아닌, '다시 노래할 수 있을까?' 한때 바닥까지 떨어져 본 프로 가수의 부활을 생생한 기록으로 남긴 셈이 됐다.


"어떤 마음으로 들으면 좋을까요?"

또 다른 새 가수에게 제작진이 물었다.


"뭘 어떻게 들어요? 그냥 들으세요.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저는 아무도 찾아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바닥끝까지 떨어져 본 사람에게 이 무대는 행복 자체예요."


또 다른 락커 박완규의 등장이었다. 자못 건방져 보일 수도 있는 결연한 표정으로 그냥 들으라 했다. 기회가 주어진 그 자체가 행복 아니겠는가? 라며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거머쥐려는 한 마리 흑표범 같았다.


그는 첫 무대에서 故 김현식의 <사랑했어요>를 열창했다. 절규와 한이 느껴졌다. 노래가 끝나고 관객들은 바닥까지 떨어져 본 또 한 명의 락커를 열렬히 환영했다. 역시 박완규의 완벽한 부활이었다.


바닥까지 내려가 봤는가?

아니, 그전에 어딘가에 오를 정도로 프로의 실력을 갖기 위해 노력해 봤는가? 정상에 오른 적도 없다면 바닥까지 떨어져 봤다고 할 수 있을까?


16년의 회사 경력은 아무리 봐도 정상에 오른 경험이라고 할 수 없다. 좋게 봐줘도 세미 프로도 못된다. 그런 회사를 나와 지난 3년간의 시간은 아무래도 바닥에 가까웠다. 오른 적도 없는데 저 밑바닥까지 급전직하 떨어진 격이다.


바닥부터 먼저 찍은 나는, 한 번도 오른 적 없는 프로의 산을 오르기 위해 하루를 온전히 쓴다. 그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그 흐름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다시 떨어질 여지가 있더라도 프로라는 정상에 오를 수 있으리라. 바닥까지 떨어지는 일에도 어쩌면 자격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직문화라는 소프트웨어를 글이라는 하드웨어에 담는 일,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가 되어 언젠가는 이렇게 물을테다.


"바닥까지 떨어져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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