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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Nov 14. 2022

5년 공황의 시작과 끝. 고속도로에서 생긴 일

공황 극복 선언

모처럼 출근 비슷한 것을 하게 됐다.


모대기업으로부터 책 내용을 바탕으로 조직문화 워크샵을 진행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무려 4일간이다. 꿈꿨던 순간인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아니 무언가 불안했다.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3년 만에 대중 앞에 선다는 두려움? 내 책의 핵심 컨셉(밑MEET 빠진 회사에 열정 붓기를 멈춰라)이 먹힐까? 라는 불확실성? 물론 그 역시 한몫 단단히 했지만, 진짜 걱정은 정작 엉뚱한 곳에 있었다.


운전을 해서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는 두려움.

서울에서 약 1시간 30분가량 떨어진 한적한 시골마을에 위치한 연수원, 버스나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어려워 자가운전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에헤이 운전 초보인 모양이로군? 그렇다면 그 심정 이해하지..."


글쎄?

운전면허를 2000년에 땄고 그 이후로 쭉 운전을 해왔으니 초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고속도로도 곧잘 탔고 운전 자체를 즐겼다. 서울에서 부산, 서울에서 완도까지 수백 킬로를 거침없이 홀로 운전해 다녔으니까...카레이서급은 아니어도 못하는 축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약 5년 전쯤 난데없는 공황 증세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 시작이 하필이면 고속도로 위였다.


모든 기업의 일이 다 그렇겠지만, 유독 사람과 직접 관련된 일(인사, 교육, 조직문화 등)은 신체적 힘듬보다 정신적 데미지가 쭉쭉 쌓인다. 그중에서도 포커페이스에 능한 서비스직군 사람들을 사내 고객으로 상대하는 일은 정말이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부나방의 운명에 다름 아니다.


정제된 가면 위 미소, 그 이면에 어떤 민낯이 숨겨져 있는지 알게 된 것은 무려 5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앞에서 웃고 돌아서서 쌍욕을 내뱉던 그 실체를 목도했을 때 느꼈던 충격이란. 문제는 시간이 흐른다고, 어떤 기법에 숙련된다고 해결될 성격이 아니란 것이다.


B급 코메디 영화 [위대한 유산]에서 창식(임창정 분)은

"저, 심리학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런데! 한 사람 속마음도 모르겠더라고."

라며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지 않았던가?


사람의 일에 정답이란 것이 있을 리 없고, 한 사람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힘든 것이 진리라면 가면을 쓴 수백, 수천의 마음을 읽고 움직이는 일의 어려움은 오죽할까? 조직문화 담당 14년 차에 이르러 어떤 임계점에 도달했던 것 같다. 일 자체의 어려움, 앞에서 웃는 사람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 개인적인 구설수 따위 온갖 데미지가 축적되어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렸던 모양이다. 좀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 말했다.


비로소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몸무게가 빠지고, 얼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밥을 먹을 때 식은땀이 줄줄 났다. 문득 무조건 쉬어야겠다 싶었다. 딱히 워커홀릭도 아닌데 3일 이상 휴가를 내본 적이 없었으니 이 무슨 미련한 짓인가? 싶기도 했다.


그해 여름, 직장생활 14년여 만에 난생처음 5일 휴가를 냈다. 마침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이때 아니면 가족 여행을 갈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남도 맛집 여행을 가기로 했다. 광주로, 나주로, 완도로 그렇게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고속도로를 누볐다.


장흥의 한우 삼합을 끝으로 2박 3일간의 가족여행을 마치고 올라탄 귀경길 고속도로. 노을이 빨갛게 물들며 어둠이 서서히 내리고 있었다. 고속도로에 올라온 지 10분이 지났을까? 속이 더부룩하더니 왼쪽 가슴 바로 윗부분의 혈관이 '울컥' 쥐어짜듯 3~4초 정도의 통증이 밀려왔다.


"어, 왜 이러지? 체했나?"


통증은 금세 사라졌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운전에 집중할 찰나,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변하고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극한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심장 박동 역시 빨라지며 손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왜 그래?"

뒷자리에 앉은 아내와 아이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말을 걸었지만 대꾸를 하지 못하고 서둘러 갓길에 차를 세웠다. 잠시 밖으로 나와 뜀박질도 하며 호흡을 고르자 다시 상태가 좋아졌다.


"아까 뭘 잘못 먹었나 봐. 이젠 괜찮아."


약 10여분 휴식을 취하고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그렇게 5분여 운전을 했을까? 또다시 같은 증상이 시작됐다. 이번엔 강도가 더 세다. 마치 고장 난 엔진의 RPM이 급격히 치솟듯 심장 박동이 요동치며 멈출 것 같은 공포감.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머릿속은 빙글빙글 돌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분에 근처에 있던 간이 휴게소로 급히 핸들을 돌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급체라고 생각했기에 소화제를 사려고 했다. 그러나 편의점도 없는 소규모 간이 휴게소였던 탓에 주차된 차들을 돌며 어렵게 소화제를 구해 먹고 30분여를 쉬었다.


"이젠 정말 괜찮아졌어."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다시 고속도로로 올라섰지만 혹시나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그렇게 10 여분이 지나고 정말 괜찮아졌구나 마음을 놓으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같은 증상이 또 시작됐다.


'이거 큰일이구나!'

난생처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110키로미터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내 실수로 가족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까스로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다행히 근처에 톨게이트가 보였고 허겁지겁 빠져나왔다. 전주였다. 톨게이트 근처에 병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응급실에 누워 있고 아내와 아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피로가 누적된 모양이라며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날 낯선 고장의 이름 모를 응급실에서 밤을 새우고 대리 운전으로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것이. 시내에서 운전을 하더라도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처럼 고속도로 형태로 보이는 곳에서는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실제 비슷한 증상이 오기도 했으므로 운전 자체의 두려움에 핸들을 잡지 못하는 시간이 늘었다. 급기야 출고 후 고작 6만 키로에 불과했던 차도 팔아버렸다.


그 이후 1년여간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운전하는 중이 아닌데도 시도 때도 없이 심장이 멈출 것 같은 증상이 찾아왔다. 길을 걷다가도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생각에 응급실을 찾았고 사람들이 북적대는 전철도 타지 못했다. 수개월에 걸쳐 심장, 뇌, 혈관 검사 등 거의 모든 검사를 다 받았지만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정신의 문제, 말로만 듣던 공황 증세였다.


회사를 그만두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고 말하긴 뭐하지만, 한때 심각했던 공황 증세는 회사를 그만두고 급속히 좋아졌다. 1년여간 수시로 찾아오던 공황 증세가 어느 순간부터 생기지 않았다. 퇴사 후 2년쯤부터는 간간히 운전도 시작했다. 시내 주행은 다시 할 수 있게 됐지만 고속도로와 비슷한 환경은 여전히 두려웠다.


그런데 4일간 고속도로를 홀로 왕복해야 하는 일정이라니...

처음엔 못하겠다! 고사를 하려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가 어이없지 않은가? 까짓 거 못할게 뭔가? 기껏 해야 최악의 경우 도로 위에서 죽기밖에 더하겠나? 오기가 생겼다. 두 번째 책의 출간 이후 언론사와의 인터뷰, 방송 출연까지 이전의 나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도전과 극복의 연속 아니던가? 걱정과는 달리 생각보다 잘 해내지 않았던가?


결정적으로 처음 증세가 시작된 고속도로위에서만이 비로소 최종 극복이라는 결자해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냈다. 쏘카를 이용해 일정에 맞춰 4일간 사전 렌트를 했다. 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10월 말의 어느 날, 난생처음 허 번호판이 달린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연수원의 위치를 네비에 입력했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약 1시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서서히 액셀을 밟고 익숙한 도심을 지나 마침내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순간 호흡이 가빠지는 듯했다. 심호흡을 하고 '괜찮아. 아무것도 아냐!' 주문을 외우듯 읊조리기 시작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가기 전까지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서 차들이 쌩쌩 달기 시작했다. 어느순간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심장의 두방망이질도 서서히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주변의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름보다 높아진 하늘, 한결 너그러워진 아침 가을볕이 따사롭다 느낄 때쯤 노랗고 빨간 늦가을이 나를 반겼다.


흠흠흠...콧노래도 나왔다. 그렇게 1시간이 훌쩍 흐르고 어느새 나는 연수원의 정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라는 네비의 음성이


"공황 극복에 도착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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